오로지 아이만을 생각해서 결정한 이사였다. 한편으론 딩크족이었던 내가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한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대구에 계속 살았더라면 친정의 도움을 받으며 일도 하고 육아도 훨씬 수월했을 텐데 아이가 가족과 함께 할 시간만을 우선순위에 두고 결정했다. 당시만 해도 아무 연고 없는 울산에서 전업맘으로 살아야 하는 삶에 큰 걱정이 없었다. 오히려 남편과 함께 육아하게 되었으니 아이에게 더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이사 후 집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변화를 실감했다. 가장 큰 변화는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미혼이었다면 아무 연고 없는 지역에 가더라도 사회생활 하며 일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겠지만, 경력단절에 아무 연고 없는 곳에 사는 애 엄마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7개월 된 아이와 24시간 함께 한다는 것은 외롭고 힘들었다.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라곤 남편뿐이었지만 서로 여유가 없으니 싸움만 늘어갔다. 사람 좋아하는 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를 나갔다. 연고 없는 곳에 사는 전업맘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곤 문화센터에서 만난 엄마들이 유일했지만, 그들끼리 이미 조리원 동기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었다. 내가 들어갈 틈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유모차 끌고 간 공원에서 아이 엄마가 보이기만 하면 “몇 개월이에요?” 일부러 말을 붙이곤 했지만 내 친구를 만들 순 없었다.
지역 맘카페를 검색했다. ‘이사 와서 친구가 없어요. 아이 친구, 제 친구 만들고 싶어요!’ 이 글에 5명의 엄마가 모였고 한 명의 집에서 만나게 되었지만, 각자 아이를 보느라 정신없었다. 아이와 우리 나이가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였고 사는 동네가 달랐기에 만남은 지속되지 못했다.
둘째가 생긴 후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었다. 친구가 절실했던 나는 ‘어린이집 엄마들과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에 설렜다. 감투 쓰기를 좋아하는 성격 탓에 어린이집 운영위원회도 신청하며 관계가 형성되길 바랐다. 이런 내 마음을 무너뜨리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어린이집은 입학한 지 일주일 만에 선생님 퇴사 사건으로 원장과 학부모의 대립이 이루어졌다. 어렵게 입소한 어린이집인데 우리 반이 없어질 상황이 되자 아기 띠를 맨 채 하루종일 단톡방을 들락날락거리며 불안감에 휩싸였다. 결국 우리 반은 없어졌고 이미 입소 마감된 시점인 4월에 갈 수 있는 어린이집은 옆 동네였다. 어린이집 엄마들과 친구 되기는 물 건너가게 되었다.
성격이 활발하고 외향적인 나는 친구 사귀는 건 어렵지 않은 사람이었다. 엄마가 되고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에 한계를 느꼈다. 아이와 함께 1+1로 움직여야 했고 아이 돌보는 게 우선이라 나를 위한 진심 어린 관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괴로웠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이사하지 말걸.’ 왜 앞뒤 따지지 않고 아이만을 위한 이사를 결정한 건지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