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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Nov 22. 2023

채식하면 채소를 많이 먹을까

하루키가 되긴 어렵네

무라카미 하루키 라디오시리즈처럼 가벼운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태생이 심각한지라 뭔가 계속 주제의식을 가지고 써야 한다는 습관이 쉽사리 없어지진 않는다. 자기 계발서를 좋아하다 보니 뭔가 글에 영양가 아닌 영양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떨쳐버릴 순 없다. 의식의 흐름대로 편하게 쓰는 것도 해보았지만 그마저도 결국은 심각하게 결론이 난다. 그냥 가끔은 좋아하는 채소에 대해서, 일상의 한 조각들에 대해서 가볍게 써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일기 같은 글이 될까 봐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래도 써보는 가벼운 글들.



채식을 하다 보니 즐겨 먹는 채소와 손이 잘 가지 않는 채소가 구분되기 시작했다. 몇 날 며칠이고 매일 같이 먹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의 차이가 있다. 식감의 차이가 있는데 아삭한가 아니면 물컹한가의 차이가 있다. 아삭한 양배추와 양상추, 토마토는 몇 날 며칠이고 매일 매 끼니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특히 레몬드레싱을 뿌려 먹으면 더욱 좋다. 여기에 두부까지 곁들여 먹으면 금상첨화이다. 이렇게 늘 먹어도 살이 안 빠지는 것은 떡볶이와 불닭볶음면 때문이다.


즐기지 않는 채소는 역시 물컹한 식감이 있는 채소들이다. 특히 가지와 버섯. 의외로 내가 버섯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본격 채식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물론 좋아하지 않을 뿐 안 먹는 것은 아니다. 채소도 골고루 먹어야 하니 버섯도 가지도 구워서 먹는다. 튀김으로 먹으면 맛있긴 한데 칼로리의 압박으로 구워 먹는 선에서 합의를 봤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채소를 좋아하긴 했다. 김치찌개에 들어간 돼지고기와 미역국에 들어간 소고기를 너무 싫어했고 중학생이 될 때까지 삼겹살도 잘 먹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키가 나름 큰 것도 (166cm) 다행이다 싶다. 결국 식감이 중요한 것 같다. 고기들도 탕수육이나 구운 고기는 그나마 먹었는데 수육이나 족발은 전혀 먹지 못했으니 물컹한 식감에 결국 자연스럽게 채식으로 향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오늘도 저녁으로 아삭한 채소가 잔뜩 들어간 김밥을 먹었다. 김밥은 채소만 넣어먹어도 맛이 좋다. 오이와 파프리카, 우엉과 단무지, 깻잎과 당근을 넣어서 싼다. 맛의 핵심이 단무지와 우엉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채식 정면까지 곁들이면 (칼로리를 무시한다면) 근사한 채식 한상이 완성된다. 단백질이 부족해 보인다면 라면 끓일 때 순두부를 넣어서 끓이면 된다.


이렇게 먹다 보면 의외로 생채소는 먹지 않고도 채식이 가능하긴 하다. 가지 탕수에 나물반찬에 비건 식품들 ( 비건 텐더, 비건 불고기 등등) 먹으면 충분한 한상이 된다. 물론 건강을 위해 생채소를 먹는 것이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채소 먹기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이렇게 채식 한상으로 한 끼를 먹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 같다.


차요테라는 채소


최근에는 이주일에 한번 어글리어스라는 서비스로 친환경 채소들을 받아보고 있다. 그곳에서 이번에 차요태라는 채소를 보내왔는데 어떻게 먹는 건지 감도 안 온다. 썰어서 무침을 해 먹으면 된다니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채소 앞에서 도전의식을 발휘해야 할 줄은 몰랐지만 일단 썰어서 샐러드라도 해 먹어 보려고 한다. 먹어보지 않으면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여전히 참 많다.



하루키 글을 보면 정말 뜬금없이 글이 끝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는데 뭔가 결말이나 사건에 대한 느낌들을 정리해야 하는 습관 아닌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마무리가 제일 어렵다. 글은 쓸수록 더 어렵고 길을 잃는 느낌이 든다.


하루키의 문장으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갓 튀겨낸 도넛은 색깔이며 향기며 씹었는 때 바삭한 식감이며 뭔가 사람을 격려하는 듯한 선의로 가득 차있다. 많이 먹고 건강해집시다. 다이어트 따위, 내일부터 하면 되잖습니까.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중에서 




사진: Unsplash의 Nadine Prim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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