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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렁어슬렁 난바, 도톤보리

2일 차 : 여행은 느리게 걸어야 제 맛

by 서필복 Mar 14. 2025
도톤보리 야경도톤보리 야경


 교토를 갈까 하다가 비 소식이 있어 오사카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우선 조식을 해결하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여행을 하면서 식당을 찾는 것은 큰 즐거움 중의 하나다. 하지만 목표지향주의자인 따님의 발걸음은 다시 이치란 라멘으로 향했고, 첫끼로 기름진 음식을 꺼리는 아빠는 어쩔 수 없이 이치란 라멘으로 끌려갔다. (이후 계속 배가 불편했다.) 식당 오픈 전부터 꽤 많은 사람이 줄을 서고 있었다. 그래도 전날 저녁 살벌하게 길었던 줄에 비하면 짧은 편이었기에 차라리 아침에 미션을 끝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에 없던 오픈런이 되었지만, 덕분에 금방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맛에 대해서 말하자면 요즘 한국의 일본라멘 전문점 퀄리티가 워낙 좋아서인지 큰 감흥은 없었다. 반면 따님은 너무 맛있다고 감탄을 하며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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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 라멘 풍경

 돌이켜보니 어린 딸과 여행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아이의 ‘감탄사’를 듣는 것이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은 뭘 해도 예전과 같은 감흥이 없기에 타인의 기쁨을 통하여 그 감정을 간접 경험을 하게 되는 원리일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쁨을 안겨주고 보람을 느꼈기 때문일까? 여하튼 아이의 감탄사는 끊임없었고 더불어 나의 즐거움도 배가 되었다.

복잡하지만 없는 것이 없어 편했던 우메다 역복잡하지만 없는 것이 없어 편했던 우메다 역

 조식을 해결한 우리는 두 번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GU에 가서 아이의 잠옷을 사야 했다. 아이는 신이 나서 (좀 웃기지만) 귀여운 잠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목표가 명확했기에 쇼핑은 짧게 끝이 났고 덕분에 두 사람 모두에게 즐거운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두 번째 미션까지 수행하고 나니 아이는 흡족했는지 조용해졌다. 드디어 편하게 관광을 해도 되는 타이밍이 된 것이다. 우메다 지역을 벗어나 오사카의 명소 난바, 도톤보리를 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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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던 PORTER 매장 / 구매 안한 걸 후회했던 예쁜 우산 가게 / 파르코 백화점 입구

 신사이바시 역에서 내려 난바역까지 걸어가며 여기저기 둘러보며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신사이바시 역에 도착하니 파르코 백화점이 연결되어 있었다. 도쿄 시부야 파르코 백화점 닌텐도 스토어에 엄청난 쇼핑객들이 줄 서있던 기억이 나서 자연스레 파르코 백화점에 들어갔다. 캐릭터에 관심이 많은 아이에게 IP산업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  역시 지브리 스토어, 포켓몬 스토어 등이 한 층을 전부 차지할 정도로 잘 꾸며져 있었고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별 관심이 없었다. 지브리는 애초에 별 관심이 없고, 포켓몬은 졸업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캐릭터도 넘쳐나고 유행도 너무나 빨리 변하는 시대에 아이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일은 참으로 벅찬 일이다. 그래도 귀여운 캐릭터 좋아하고 예쁜 문구를 좋아하는 취향은 아빠와 딸이 비슷했기에 함께 이런저런  눈요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갔다.


아들이랑 왔으면 좋아했을 거 같은 고질라 스토어아들이랑 왔으면 좋아했을 거 같은 고질라 스토어

 기나긴 쇼핑몰 아케이드를 지나 도톤보리에 도착하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슬비가 내리면 네온사인은 더 예쁘기 마련이다. 특히나 옆에 강이 흐르는 환경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의 인파 속에서 길을 걸어가기도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혹시라도 놓칠까 봐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급하게 산 우산을 나눠 쓰고 글리코 사인을 보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역시나 예쁘긴 했다. 하지만 여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평일 저녁, 그것도 비가 내리고 있는데 그 많은 인파라니.. 급하게 숙제하듯 사진 몇 장을 찍고 근처 스타벅스로 대피했다.


비가 와서 이동은 어려웠지만 사진은 더 쨍하게 나온 듯비가 와서 이동은 어려웠지만 사진은 더 쨍하게 나온 듯

 강이 내려다 보이는 펍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잔하고 싶었지만 어린 딸과 함께라서 선택지가 많진 않았다. 꽤 많은 걸음을 걸어서 다리가 아파왔다. 아이가 힘들지 않을까 싶어 쳐다보니 잘 버티고 있었다. 어느새 이렇게 컸지?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놀랐다.

아이들은 정말 빨리 자란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는 게 더욱 아쉽다.

 이럴 때마다 일분일초라도 아이와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톤보리에서 저녁을 먹고 갈까 했는데 아이는 우메다 역 주변이 몹시 맘에 들었던 모양인지 빨리 돌아가자고 했다. 나 역시 그랬다. 이럴 때마다 DNA의 힘에 깜짝 놀라게 된다. 한국 돌아와서도 우리는 우메다 역에 위치한 호텔과 주변 환경을 그리워했다.


 우메다 역으로 돌아오니 왠지 집으로 돌아온 듯 마음이 놓였다. 이곳에선 아이랑 떨어져도 아이가 숙소까지 찾아올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일 것이다. 숙소 근처엔 어마어마하게 많은 식당이 있어서 아침식사나 늦은 저녁식사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 좋았다. 푸드코트에 있는 초밥집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은 대망의 유니버설 스튜디오 방문일이다. 오픈런을 해야 하니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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