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채 봉투
“가난한 사람이 많이 걸리는 암이 뭔지 아나?”
“글쎄요?”
“그럼, 부유한 사람이 많이 걸리는 암은 뭔지 아나?”
“…”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식사를 하는데, 선배가 뜬금없이 물었다. 선배는 수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이후 직장을 나와 조그만 개인 사업을 하며 지내는데, 큰 수술을 받았던 만큼 건강 정보에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침술과 민간 치료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관심 속에 얻은 정보를 가지고 물은 듯했다. 대답을 못하니, 선배가 답을 알려 줬다. “가난한 사람이 많이 걸리는 암은 위암이고, 부유한 사람이 많이 걸리는 암은 폐암일세.”
폐암은 차치하고, 위암이 식습관 – 맵고 짠 음식을 많이 먹고 또 급하게 먹는 – 과 관련이 깊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선배의 말은, 그것이 경제적 지위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었다.
선배의 말은 어렵지 않게 수긍되었다. 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마음이 조급하고, 마음이 조급하니 음식 맛을 음미할 여유가 없고, 음식 맛을 음미할 여유가 없으니 빨리 먹게 되고, 그때의 음식은 아무래도 심심한 것보다는 자극적인 음식이 주가 될 수밖에 없지 않나 싶었던 것. 그리고 그것의 결과는…. “마음이 없으면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는 『대학』의 말은 빈곤 계층의 식습관을 대변하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을 듯싶었다. (경제적 지위가 낮다고 꼭 조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인 경향을 언급한 것뿐이다.)
사진의 한자는 ‘진미(眞味)’라고 읽는다. ‘참된 맛’이란 뜻이다. 그냥 ‘맛’이라 해도 될 것을 ‘참’이란 말을 덧붙인 것은 ‘거짓 맛’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테고, 자신들이 만든 음식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 걸 것이다. 보태어 이 음식물의 맛을 제대로 알려면 급히 먹지 말고 천천히 먹어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겨있다고 보인다. 급하게 먹는 음식에서 맛을 음미하기란 쉽지 않잖은가? 오징어 채 봉투에 쓰여있는 것을 찍은 것이다.
천천히 먹어 참맛을 알 때 진정으로 그 음식을 먹는 것이고, 이는 병을 예방하는 지름길이기도 한 것 같다.
한자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자.
眞은 匕(化의 변형, 화할 화)와 目(눈 목)과 ㄴ(隱의 옛 글자, 숨을 은)과 八(기초의 의미로 쓴 글자)의 합자이다. 눈에 보이는 기본적인 모습을 변화시켜 하늘로 숨어버린 사람, 즉 신선이란 의미이다. 신선을 진인(眞人)이라고도 한다(육신의 거짓된 모습을 벗어 버려야 참된 사람이 된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지금은 주로 '참되다'란 의미로만 사용한다. 참 진. 眞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眞珠(진주), 眞善美(진선미) 등을 들 수 있겠다.
味는 口(입 구)와 未(아닐 미)의 합자이다. 입을 통해 느끼는 맛이란 의미이다. 口로 의미를 표현했다. 未는 음을 담당한다. 맛 미. 味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調味(조미), 吟味(음미) 등을 들 수 있겠다.
낮은 경제적 지위와 위암 발병률의 상관성이 깊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일하는- 특히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분들에게 적정 식사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더불어 일하는 분들도 자발적으로 '천천히 식사하기' 습관을 들여야 할 것 같다. 적정 식사 시간이 확보된다 해도 '천천히 식사하기' 습관이 돼있지 않으면 '후딱' 먹어치우고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 마시기 혹은 밀린 일 하기 등으로 시간을 흘려(?) 보낼 것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식사를 위한 적정 시간 확보가 무의미해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