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빛 Jul 25. 2023

서서히 그림일기 9

네모난 틀거리 속 안정감

서서히 그림일기 9, <네모난 틀거리 속 안정감>


그리기 수업으로 학생들 만나가며, 또 대안 그리기 교육에 대해 연구하며, 그리기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나날 보내고 있다. 최근에 마을에서 함께 살고 있는 4, 5, 6학년 아이들과 그림 그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지난 학기 어땠는지 두런두런 이야기 나눴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다가도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다가 다시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순수하고 자유하다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그리기가 참 좋다고 느꼈다. 그리기는 늘 곁에 있었던 익숙한 존재인데, 우리 사이에 어떤 부분이 새롭게 건드려진 걸까 궁금했다.


‘그리기’를 통해 복잡한 우리의 존재가 단순하고 투박하게 펼쳐지는 것이 좋다. 그런 투명하고 정직한 면모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 깨달았다. 어쩌면 나를 둘러싼 이 세상도 내 마음도 알 수 없었지만 스케치북 위에는 그것들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그리기’는 밝다. 혹 어두움이 그려진다 하더라도 표현됨으로써 이미 밝다. 그런 밝음에 숨 트였던 것 같다.


나를 통해 펼쳐지는 투박한 선들은 그럼에도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네가 너여도 괜찮다고, 네 안엔 너를 이끌어갈 힘이 있다고 말이다. 그 시절 생채기 같았던 폭풍 속에서도 그리기는 늘 내 곁에 있었다. 어디서도 느끼기 어려웠던 안정감이 종이라는 네모난 틀거리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안정감은 지금의 내가 될 수 있도록 나의 곁이 되어줬다.


그리기에 대한 고민이 짙어질수록 한동안 마음이 뒤숭숭했다. 나는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걸까,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할 수 있는 걸까, 하고 말이다. 이 날, 그리기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생동하는 아이들의 푸르른 기운이 내 안에 있는 반짝임을 일깨워주었다. 너희들과 함께 채워갈 빛깔들이 기대된다. 왜인지 거뜬할 거라는 믿음 샘솟는다. 이젠 우리들이 빚어내는 놀라운 어울림 속에 안정감 누려간다.

작가의 이전글 글을 쓰듯 내 마음을 그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