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커피 없으면 못살아"와 같은 의미
** 본 글은 최근 2주 동안 커피 섭취량을 하루 0잔~0.5잔으로 줄여본 경험을 담은 글입니다.
나를 포함하여, 밤에 커피를 마셔도 잠자는 데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본인의 그러한 특성을 보통 아래와 같은 상황에서 드러낼 기회를 얻곤 한다.
(오후 세시 이후의 어느 시점에 친구들과 카페에서 메뉴를 고를 때)
친구 A :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친구 B: 여기 디카페인이 없네. 난 오늘 이미 커피를 한잔 마셔서.. 음.. 자몽 에이드 하나 마셔야겠다.
나 : 아 나는 밤에 커피 마셔도 잘 자는데...
이를 표현할 때 보통 "커피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깔려 있고, 실제로 커피를 'one of many 음료수'라 여기는 마음으로 멘트를 치곤 한다. 딱히 특별할 게 없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정 반대다.
"커피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가 아니라, "커피 없이는 못 사는 삶을 살고 있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루에 3잔 4잔을 마셔도, 늦은 밤 시각에 마셔도 잠이 잘 오는 이유는 카페인에 내성이 생길 대로 생겨서 더 이상 카페인의 힘이 대단하게 작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커피를 아무렇지 않게 벌컥벌컥 마시고 있기 때문에, 커피를 대단한 존재가 아닌 것처럼 취급하고 있지만 커피 섭취를 끊거나 줄여보면 바로 실상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본인에게 커피가 정말 대단한 존재라는 사실을.
매일 2.5잔 이상의 커피를 대수롭지 않게 마시던 사람이 커피를 1잔 이하로 줄이게 되면 곧바로 무지하게 졸림을 겪게 된다. 마치 무슨 중요한 영양제를 끊은 것처럼, 몸에 에너지가 솟지 못하고 흐리멍텅한 상태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하긴 커피를 3잔 4잔 마셔도 잠을 잘자던 사람이니, 1잔 이하의 경우에는 잠이 쏟아지는 것도 당연하겠다. 그제야 깨닫게 된다. '아, 커피가 내 삶에 별다른 의미가 없던 게 아니라, 내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나는 커피에 종속된 삶을 살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평균 입면 시간이 1분을 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베개에 머리를 대는 순간 거의 바로 잠드는 사람이다.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나는 베개에 머리를 대면 바로 잠들 수 있었다. 커피를 줄이자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베개에 머리를 대기 전에 잠드는 것이다.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다가 잠들고, 식탁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잠든다.
수면 퀄리티를 정량적으로 측정한 적은 없지만, 커피를 줄곧 마시던 시절에도 딱히 수면의 질이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냥 나는 나 자신을 잘 자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커피를 줄이고 나니, 정말 잘 자고 개운하게 일어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별도의 수면 관성 없이 너무 개운하게 잠이 깨고, 정신도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그간 그리 깊게 자던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이와 별개로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매일 겪고 있다. 항시 각성 상태를 유지시켜주던 커피가 없으니, 참 당연한 현상인 것을 - 그간 커피의 힘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했던 것이다. 정신이 자꾸 산만해져서 의미 없는 서성거림이 잦아지고 멍 때림이 빈번해진다.
그리하여 야심 차게 하루 0잔으로 시작했던 이 프로젝트는 0.5 잔까지 오르게 된 것... 주중에는 그래도 일을 해야 하니 상대적으로 의지력에 의존하여 산만함을 눌렀다면, 토요일이 되니 연거푸 낮잠 + 이른 저녁잠을 자는 것이다. 카페인 의존도를 낮춰가는 과정에서는 그래도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기 위해 하루 커피 1잔까지는 허용해야 될 것 같다.
커피를 마셔도 밤에 잘 잔다는 것은 무슨 특별한 능력도 아니고 자랑할 특징도 아니었다.
그냥 커피 없이는 못 산다는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던 것이었다.
아 하루빨리 커피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지금 디카페인 커피 마시며 글을 쓰면서도 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