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며 시간을 건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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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원의 나이테’라는 제목을 가진 짧은 다큐멘터리 영상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 내가 어떤 종을 저만큼 이해하는 게 참 좋을 것 같다. ‘나도 정말 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거 하나만 알고 죽어도 행복하겠는데’ 그런 생각?”
나는 이런 생각한 적이 있던가, 의문이 들었다. 정말 해보고 싶은 것. 이것 하나만 알고 죽어도 좋은 것. 그러다 반짝이는 눈동자들이 떠올랐다.
호기심 많은 사람이 신기했다.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더 알고자 하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자기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그 주제에 관해 이야기할 때 말이 많아지고, 눈이 반짝였다. 난 한동안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가지는 그 반짝이는 눈동자를 조금 흠모했던 것 같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음이었다. 책은 아주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다. 책에는 세상 모든 주제가 있었고, 책방은 핑계를 가지고 만날 수 있는 그럴듯한 공간이 되었다. 나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멋지고, 개성 넘치는 한명 한명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책방을 떠올리면 여전히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책방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고민, 살아왔던 인생, 여행, 연애, 중요한 선택 등.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관해 이야기할 때가 좋았다. 애호의 이야기를 들으면 세상엔 좋아하고 사랑할 것들이 넘쳤다. 사람들은 사람을 좋아했다. 특정한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신기한 일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에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비타민 같은. 좋아하는 대상이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이 주체적으로 만드는 생기였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의 우주는 넓었다. 새를 좋아하고, 공연장을 좋아하고, 게임을 좋아하고,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세상 모든 것에 비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보이차,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이어리 꾸미기, 건축물 탐방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세상에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은 이유는 좋아하는 마음이 보태지고, 쌓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때로는 좋아하는 마음이 사람을 대변하기도 했다.
나는 크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 쪽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깊이 알고자 하는 게 거의 없었다. 호기심 어린 마음이 잘 발동하지 않았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좋아하는 게 많지 않았다. 한 발자국 물러나 좋아하는 것들이 분명한 사람의 곁에 머무는 걸 더 좋아했다.
함께 사는 짝꿍을 보면 늘 재미났다. 그는 좋아하는 것들이 많고, 넓어지고, 깊어지는 사람이었다. 그의 관심 분야만 나열하자면 항공, 과학, 역사, 우주, 음식, 음악, 친구, 책, 그림, 문법, 술이 있다. 그의 책들만 봐도 재미난 책들이 많다.
맹랑한 국어사전 탐방기 / 엔진의 역사 / 라면요리왕 / 서양미술사 / 창백한 푸른 점 / 일본제국 패망사 /
대멸종 / 비행의 발견 / 맥주 바이블 /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 /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 재즈 플래닛 …
책만큼 다양한 그의 관심사는 유튜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철학과 과학 유튜브를 찾아보고, 요리하는 유튜브를 찾아본다. 나는 다만 옆에서 그를 관찰하면서 좋아하는 마음의 위대함을 실감한다. 같이 살면서 그의 좋아하는 마음에 기대어 여러 혜택도 받는다. 음식을 좋아하는 그를 따라 맛집을 가고, 근사한 요리를 대접받는다. 최근에는 그를 따라 칼을 갈기 위한 숫돌을 사는 여정을 함께했다. 숫돌을 사고, 무를 사고 칼질 연습하는 그를 보면서 귀엽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를 빛내고 있었다.
“고래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다큐멘터리 같은 데 고래가 나오면 거의 대부분 보는데 고래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 애만 쫓아다니면서, 걔네들이 하고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걔네들이 뭘 하는지 알고. 나도 내가 사는 동안에 어떤 다른 한 종을 저렇게 오롯이 이해해보고 싶다.”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진원은 말한다. 나무의 시간은 한 인간의 시간보다 길어서 살아가는 동안 다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그럼에도 그는 한 종을 이해하기 위해 산을 오르고, 측정하고, 알아보고, 기록한다. 비록 당장 눈앞에 결과물이 보이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없어 진로에 관한 고민을 해왔다. 어른이 되면 고민은 끝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살아가는 동안 계속 스스로 고민하고, 물을 것만 같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뭐지? 이게 맞나?
나는 자연을 좋아하고, 책과 글쓰기를 좋아한다. 가끔 떠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열렬한 마음이기보다는 매일 입는 잠옷처럼 늘 함께 있어 편안한 마음이다. 반짝 빛나는 마음보다 은은히 빛나는 마음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다.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없이, 특출나게 잘하는 재능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막막했는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며 시간을 건너왔다. 때로는 직업이 되었고, 때로는 오락이 되었고, 비상구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내 삶을 기쁘게 살아가는 힘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물 마시고,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을 기대하며 잠든다. 이렇게 글 쓰는 순간을. 지금의 나는 앞으로도 평생 읽고, 쓰는 생활만 하다 죽어도 행복할 것만 같다.
함께보면 좋은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W_lFMugoE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