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선택
첫 직장생활과 첫 번째 퇴사가 남긴 것
1년간 몸담은 나의 첫 직장 공식 퇴사율은 120%였다.
사유는 저연차를 향한 직장 내 괴롭힘.
그나마 오래 버텨주던 한 달 선배의 퇴사를 기점으로 내 차례가 되었다.
바쁜 시즌이지만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로 인해 일주일에 7일씩 근무했고, 앉은자리에서 48시간 동안 내리 뜬 눈으로 업무를 보기도 했다. 새벽 4시에 출근해서 다음 날 새벽 2시에 퇴근하는 날이 반년 가까이 이어졌다.
하루 12시간을 거뜬히 넘기는 업무시간에도 막내라는 이유로 식사, 화장실 갈 시간을 포함한 휴게시간은 단 1분도 제공되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남아서 야근하는 와중에 술에 취해 들른 팀장에게 시비가 걸리지 않으면 무탈한 하루에 속했다. 입사한 지 두 달을 갓 넘긴 상황에서 각종 기피업무를 떠안고, 선배들의 온갖 수발과 짜증, 팀장의 열등감까지 홀로 받아내는 매일은 현실에 구현된 지옥을 사는 듯했다.
부모님이 자랑스러워 한 직업이자 내가 간절히 원해서 들어온 직장을 차마 내 발로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았던 나는 불현듯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다.
'저 사람들의 이름과 문제가 되는 행동을 유서에 쓰고 회사 옥상에서 뛰어내려 이 사실을 널리 알려야겠다.'
마음을 굳게 먹고 올라간 것 치고 옥상에서 내려다본 아래는 아찔할 정도로 무서웠다. 분명 눈에 뵈는 것 없는 상태로 출발했는데도 15층은 무리였다. 고소공포증이 심한 편이기도 해서 조금씩 내려오다 보니 6층에 도착해 있었다. 여기서는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죽지도 못한 채 오래도록 병원신세를 지는 선택이 될 것 같았다. 이도저도 안될 것 같아 그곳에 주저앉던 찰나 머리가 차게 식으며 그만둘 결심이 섰다.
그 길로 사무실에 복귀해서 사표를 쓰고 나왔다.
이미 십여 명을 내보내고도 다시금 마주한 나의 사직서 앞에서 일말의 죄책감도 서리지 않는 그들의 얼굴을 보니 내가 세상에서 사라져도 저들의 시간은 지금처럼 흐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래왔듯이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서겠지.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내 사직서가 수리되는 기간 동안 주변으로부터 이성으로 포장된 현실적인 조언과 버티는 것이 곧 이기는 것 이라며 퇴사를 말리는 말들이 쏟아졌다. 모두가 다 그렇게 산다는 말을 제외하면 대부분 좋은 말이고 새겨들을 법한 말이지만, 그 당시 나에게 필요하거나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위로가 필요했던 것도 아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고요한 시간이었다.
내가 사라진 현실에 남아 슬퍼하는 사람이 누구일지, 이 선택으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이켜보니 옥상이나 퇴사 중 하나를 고른다면 답은 퇴사여야 했다.
생업을 포기하는 결정을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나 그럼에도 스스로를 보호하는 기회가 될 테니.
그렇게 첫 퇴사는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을지언정
지옥에서 나올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