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점에서 - 05년

제06장: 2005년

by 수연

청계천 복원

2005년 10월 3일 중앙일보 보도
2005년 10월 3일 조선일보 보도
3일 오전 10시에는 1만 5000여명이 참가하는 청계천 시민 걷기 대회가 열린다.

우리 가족 4명이 저 1만 5000여명 안에 들어 있다. 그리고 이날 나는 청계천에 푹 빠지게 되고, 시사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원래 2001년,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2005년 5학년때까지 일기를 꽤 오랜 기간동안 유실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는데, 2010년대 후반에 유실해버렸다. (2006년부터의 기록은 보관하고 있다.) 지금 이 브런치북을 연재하는 시점에 그 일기들이 유실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면 생생한 기록들을 통해 더 심층적인 서술을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여하튼 2005년 10월 3일 일기는 무려 10페이지를 쓰면서 청계천 예찬을 했던 기억이 난다. 청계천 다리 중에 나래교라는 다리가 있다. 이 때쯤부터 연필 대신 샤프를 즐겨 썼는데, 샤프 뒤에 있는 샤프 클립을 양쪽으로 붙여놓은 다음 '나래교 샤프' 이러면서 다니기도 했다. 4차원 그 자체였다.


지난 해(2004년)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가 4학년 수련회 기간이었는데, 중간 날짜였던 7월 1일이 바로 서울 버스 전면개편이 있던 날이었다. 7월 2일 서울로 복귀하면서 수련회 버스가 서해안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서울 경계 안으로 들어오자, 바로 뒤를 돌아보며 서울 버스가 도대체 어떻게 바뀌었을까 살펴보던 내가 생각나는데, 1년 텀으로 청계천까지 직접 내 눈으로 보게 되면서 이게 '모던 서울'이구나! 느끼게 되었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조선일보 보도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그 때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언론사와 서울시청에는 시민들의 폭발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1일 복원 기념식 때 지상파 방송들은 한곳도 생중계를 하지 않고 케이블방송인 YTN만 생방송 했다는 항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사실 청계천 추억에 화룡점정을 찍은건 10월 첫주에 가족과 함께 참가했던 청계천 걷기대회를 넘은, 05년 10월 29일 토요일날 즉흥적으로 친구들과 501번 버스를 타고 놀러갔던 날의 기억이다. 종이배를 하나 가져가서 청계천 위에 띄웠고, 그 애는 은근히 잘 떠내려가더니 청계광장에서 오간수교까지 천천히 항해했다.


이 날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이 날이 처음으로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 등 인솔자 없이 친구들끼리 '봉천 신도시 생활권' 밖으로 떠난 날이었기 때문이다. '봉천고개 정류장에서 501번이나 506번 버스를 타고 서울신문사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우리들끼리의 첫 모험이라 이렇게 신신당부를 하셔서 이상하게도 '서울신문사' 정류장 이름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청계천 가는 것도 그렇고, 다음 해에 강남에 있는 학원에 가기 시작했을 때도 그렇고, 환승이 필요없이 다이렉트로 하나만 타면 바로 갔다는 점도 포인트. 이 경험은 4달 뒤, 다음 해부터 본격적으로 내가 경험하는 세상이 넓어지는 직접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봉천동-상도동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지 않고, 너무나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게 되었으니. 이때 직후로 서울 여행에 재미를 붙여서 이후 친구들과 경복궁, 뚝섬유원지 등으로 놀러가곤 했다.



티머니를 구입하다

저렇게 나의 생활 반경이 넓어진 건 이 때쯤 5학년이여서 나이가 어느정도 찼기 때문도 있었지만, 보통 어른들의 전유물이었던 '카드'를 비록 교통수단 한정이지만 어린이, 청소년용으로도 쉽게 쓸 수 있는 '티머니'가 도입됐기 때문이기도 했다. 2004년 7월 서울 대중교통 대개편을 하면서 '환승할인' 제도가 새로 생겼는데, 이 때 함께 도입된 것이 바로 '티머니'였다.


다음 해부터는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학원 등을 다니게 될 거라는걸 암시하는 것이었을까, 05년 8월 10일 나도 '티머니'를 가지게 되었다. 그때까지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카드를 찍고 타는 어른들을 보면서 어른들은 저렇게 타는구나 하고 경외(?)를 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나도 이제 대중교통 이용 시 한정이지만 카드를 찍고 다니게 된 것이다. 처음 도입 때는 지금처럼 '삑'과 '삐빅'으로 구분한게 아니라 '어린이입니다'라고 멘트가 나왔었다.


8월에 티머니를 사고 가장 먼저 실험해 본건 역시 4장 말미에 언급하였던 동작도서관 왕복이었다. 지금은 불가한지 꽤 됐지만 대중교통 통합환승제 도입 초기에는 똑같은 버스를 30분 이내에 다시 타도 환승할인이 됐었다. 그러니까 동작13번 버스를 타고 동작도서관에 갔다가 30분 안에 책을 대출해오던지 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동작13번을 타면 환승할인이 되어서 1번만 요금을 지불하면 되었다는 뜻이다.


서울시 교통카드인 기존 '티머니(T-money)'보다 한층 업그레이된 마일리지형 '스마트(Smart) 티머니' 카드가 오는 15일 출시, 판매에 들어간다.
6일 서울시 교통카드 사업자인 (주)한국스마트카드에 따르면 이번에 출시하는 '스마트 티머니(마일리지형) 카드'는 국제 기술 표준에 부합하는 스마트칩을 탑재, 국내 교통카드로는 최초로 교통마일리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중략)
특히 어린이카드와 청소년카드의 경우 승용차요일제 홍보 캐릭터로 선정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둘리'와 '인라인을 타는 마이콜' 등으로 디자인한 카드를 선보일 계획이다.

머니투데이 2004.12.06. 「마일리지형 교통카드 '스마트 티머니' 15일 출시」


나의 첫 티머니는 '스마트 티머니' 도입 당시 배포되었던 보도자료에 명시된 것처럼 어린이카드인 '둘리 티머니'였다. 이 당시에 카드에 생일 등록을 하고 만13세가 되는 날에 자동으로 청소년 요금으로 올라간다는 그런 얘기가 있었다. 그걸 진짜 확인하고 싶었는데, 다음 해가 되고 그 다음 해가 되어 드디어 그걸 실험할 수 있는 때가 왔을 때, 만13세 생일 겨우 4일 전에 이 둘리 티머니 카드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둘리 카드는 만13세가 넘으면 자동으로 청소년 요금이 찍힐까?'라는 의문점은 풀지 못하고 청소년으로 진입하게 된다.



엄마의 공인중개사 도전

조선일보 2005년 3월 8일 보도
여성들의 중개업계 진출이 급증한 것은 부동산업이 지난 3~4년간 호황을 누린 데다 맞벌이가 가능하고 창업이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오현숙(54) 사장은 "중개업소가 가장 많이 취급하는 주택은 여성들이 가장 익숙하고 잘 아는 분야"라며 "특히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창업을 할 수 있고 출퇴근 시간 조절이 가능해 여성들이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05.03.08.「부동산 중개사 26%가 여성」
공인중개사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자격증을 따겠다는 이들이 줄을 섰다. 게다가 올해는 시험이 두 번 치러진다. (중략) 진씨는 공인중개사가 되려는 목표가 확실하다. 중개법인에 취직해서 경험을 쌓은 후 직접 운영을 해볼 생각이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남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부동산 지식 없이 부자가 될 수 있나요? 실생활에 꼭 필요한 게 부동산 지식입니다. 특히 주부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는 자격증이잖아요.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할거예요.” 학원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여성 비율이 큰 폭으로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안 한국법학원 원장은 “공인중개사 공부를 위해 노량진에 출퇴근하는 사람이 하루 3,000명 정도 될 것”이라며 “특히 여성이 60% 이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한경비즈니스 2005.04.17. [COVER STORY] 공인중개사, 제2밥줄?
메가스터디가 만든 자격증 전문사이트 패스메카는 공인중개사 시험에 도전하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총 15명의 주부 장학생을 선발할 것이라고 14일 밝혔다. 최종 선발된 주부 장학생들은 공인중개사 시험 1차 과목인 부동산 개론, 민법 강의는 물론, 2차 시험과목인 중개업법령, 공시법령, 세법, 공법 강의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패스메카 관계자는 "최근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생의 25% 이상이 주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새로운 사회진출을 준비하는 주부들을 응원하기 위해 이같은 이벤트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2005.12.14. 「패스메카, 공인중개사 도전 주부장학생 모집

사실 이 브런치북을 쓰기 시작할 때는 우리 엄마도 맞벌이였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연재를 하면서도 여러가지 자료들을 계속해서 수집하고 읽고 있는데, 조주은의 『기획된 가족』을 읽다가 우리 엄마가 2005년도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기억이 났다. 우리 엄마는 원래 정훈장교였다. 학사 졸업 후 학사장교로 1990년도에 지금은 사라진 육군여군학교에 입소하였고 1993년 말까지 복무하셨다.


1994년에 내가, 1996년에 동생이 태어나고 10년간 전업주부로 생활하시다가, 내가 5학년 동생이 3학년이 되던 이 해에 공인중개사 준비를 시작하셨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육아 부담이 줄어드는 40대부터 다시 늘어나기 시작하는데 2005년은 엄마가 40세가 되던 해였다.


이 시기 공인중개사 열풍이, 특히 여성 주부층을 중심으로 불었다는 것은 이번 연재를 위해 자료를 수집하면서 알게 되었다. 특히 2005년은 타 해보다도 공인중개사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해였는데 이는 전 해(2004년)의 시험에서부터 시작된다.


2004년 제15회 공인중개사 시험은 합격률이 0.7%에 불과하였다. 추후에 내가 전설의 합격률을 보였던 제10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2010년 10월)을 실제로 응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합격률이 4.5%였다. 0.7%라니 상상의 영역을 벗어난 합격률이다. 이 시험은 괴랄한 합격률뿐만 아니라, 5문항 복수정답까지 인정되는 등 문제가 많았다. 이 때 여파가 얼마나 컸던지 2005년 1월 27일, 공인중개사 시험 탈락자들이 정부 과천청사로 무단 진입해 농성을 하는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결국 2005년 시험은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년 2회 치뤄지게 된다.


내 기억에 엄마는 5월 시험을 봤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더욱더 아래에서 언급할 3월 부회장 당선 때 그런 기억이 남아 있겠지. 엄마는 이 해에 공인중개사에 합격한다. 그리고 이 해 말인지 다음해부터인지 신대방동 쪽에서 공인중개사 업무를 보기 시작하셨다. 창업을 하신 건 아니었고 다른 분과 공동으로 뭘 하셨는데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다만 이 때쯤부터 엄마도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 정도만 기억한다.



회장단

5학년 1학기 나는 부회장이 되었다. 사실 예전부터 회장단을 한 번은 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이 때 당선이 된 것이다. 그런데 신나서 집에 도착해 엄마에게 부회장에 당선되었다고 말하니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


"???" 물음표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 때의 마음이었다.


엄마는 나중에 이 날에 대해서 사과하시긴 하셨다. 원래 그렇게 사과하시는 분이 아니신데 말이다. 나중에야 엄마가 공인중개사 시험을 치르기 직전에 내가 회장단이 되어서 회장단 어머니로서 여러 일을 맡아야 하니 그런 반응이 나왔음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때 나는 어렸고 엄마가 공인중개사를 준비한다는 사실 자체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 상처를 입긴 했다.

해당 학기에 회장단이었던 덕에 이 행사에 회장단 자격으로 참석했다. 당시 김희철 관악구청장, 공정택 서울특별시교육감, 호복순 교장선생님 등이 보인다. 초등학생은 전교회장으로 추정.

출처


물론 시작은 집에서 축하는커녕 호되게 혼나는 날벼락으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시기의 회장단 기억은 긍정적인 편이었다. 그리고 엄마도 결국 이 해에 합격했으니 해피엔딩이고 말이다. 가장 처음으로 그 해 3월 21일부터 22일까지 있었던 임원수련회. 서울시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간 걸로 기억하는데 전 해 전체수련회에서 충청도 만리포수련원으로 수련회를 가서 전형적인 2000년대 초반식 '학교 수련회'를 겪고, 둘째날엔 아마 비가 왔나 했던 그 기억이 있는 상황에서 이 임원수련회라는 곳을 갔더니 완전 고급스럽고 우아한 프로그램들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같은 '수련회'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이게 맞나? 싶었다. 그렇게 시작되었던 나의 5학년 1학기, 나는 또 '비효율적인 동선'과 '이유없는 출입금지 구역'부터 보였다.


봉천3동(현 청림동) 현대아파트, 상도5동(현 상도1동 통합) 삼호아파트 아이들의 매우 불합리한 등하교 동선 (위성사진은 2005년 당시 사진이다. @국토정보플랫폼)

우리 학교는 모든 동선이 굉장히 비효율적이었고 심지어 막힌 곳들도 많았다. 고개 꼭대기에 위치한 입지상 여러모로 위험한 공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봉천3동 현대아파트와 상도5동 삼호아파트는 봉현초등학교 학군이었는데, 학교를 코앞에 두고 삥 돌아가는 동선으로 등하교를 해야했다. 사실 관악로 상으로 바로 나가는 후문을 개교 당시부터 만들어 놨었지만, 개교 이래로 딱 하루만 빼고 단 한번도 연 적이 없다. 2005년 6월 1일 수요일에 한번 개문을 시도하였지만 결국 너무 위험하다는 결론 아래 다시 폐쇄되었다.


그리고 성실관(성현로변 건물, 저학년 건물)과 건강관(뒤편 건물, 고학년 건물)을 이어주는 경사로 '램프' 라는게 있었는데, 초등학생들에겐 굉장히 신비로운(?) 장소였는데 여기도 1~2층 구역을 폐쇄하고 못 들어가게 했다. 성실관 아래쪽의 길도 출입 금지였다.


몇 년 전부터 옆의 아파트 놀이터도 비효율적으로 가게 만들어놓은 동선을 파괴하며 다녔던 나 아니랄까봐, 이번에도 저런 '폐쇄 구역'을 일방적으로 정하는 학교에 반발심이 든 나는 "왜 램프 1~2층 구역을 폐쇄하냐, 왜 성실관 아랫쪽 길을 폐쇄하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을 계속 제기했다. 아이들을 모아서 '램프군단'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만든 다음 램프로 다니는 운동을 하기도 하고 전교어린이회의에 가서 '램프 개방의 건'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내가 봐도 후문은 위험해 보여서 후문 개방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진 못했다. 살피재 꼭대기에 초등학교를 세워놔서, 그것도 개교 직후 시기를 다녔다보니 재밌는 일이 많았다.


개교 22년, 단 하루를 제외하고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관악로변 후문

2005년 9월 1일 목요일 오후엔, 지형 상 상권 하나도 들어올 수 없는 학교 정문에 '병아리 아저씨'가 왔다. 내 기억 상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학교가 위치한 장소 환경 상 이런 일이 자주 있을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날 '병아리 아저씨'의 등장은 그날 초등학생들에게 공전의 이슈였다. 우리 집은 엄마의 반대로 동물을 키우지 못했고 대신 아빠는 어항을 하나 사놓고 물고기를 키웠는데, 그 때 병아리 아저씨는 워낙 이슈였고 그 때 병아리를 사 온 건 그냥 그러려니 하셨다.


병아리 집을 지어서 거실 발코니에 두었다. 저렇게 학교 교문 앞에서 파는 병아리는 병 든 병아리라서 일찍 죽는다느니 하는 루머가 돌 때였다. 나는 그런 루머와 상관없이 병아리가 너무 귀여웠고 4일동안 거실 발코니에서 최대한 키웠는데, 9월 4일 밤 유독 병아리가 새벽까지 삐약삐약대더니 결국 9월 5일에 하교해보니 병아리가 요단강을 건넜던 기억이 있다. 그게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집 안 동물의 경험이다. 나중에 누가 병아리를 닭까지 키웠다더라, 하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내 고향 집, 본가 등은 현재 전부 소위 '서울 대단지 아파트'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외부인 임장러'들이 찾아와서 온갖 평을 블로그나 관련 커뮤니티 등에 올리고 다니는 걸 볼 수 있다. 그 아파트들이 '신축'이던 시절에 자란 나는 그런 글들을 보면 헛웃음이 나올 때가 많다. 이 당시 실제 입주일자와 준공일자가 심한 경우 거의 3년까지도 차이나는 경우가 있었는데 준공일자를 입주일자로 표기해 놓는다거나 하는 경우를 보면 그렇다. 그 '임장러' 중에 한 명이 '초등학생들 언덕 올라가다 지쳐 쓰러질 듯' '이 초등학교가 에러다' 등 말도 안되는 혹평을 써 놓은걸 보고 어이가 없고 화도 나고 해서 댓글을 달고 온 적도 있다. 애초에 그 초등학교에 배정되는 학생들은 이미 고개 중턱~꼭대기에 자리잡은 아파트에서 오는 학생들이었다.



'국민 게임' 크레이지 아케이드와 메이플스토리

이 당시에는 인터넷을 컴퓨터에 연결하려면 하나로통신이라는 아이콘을 클릭해서 일일히 연결을 한 다음에 사용을 했어야 했다. 2003년 1.25 인터넷 대란이 있었던 그 순간에 크레이지아케이드를 하고 있다가 서버와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팝업창이 나오고 갑자기 인터넷이 먹통이 되던 순간을 기억한다.


크레이지아케이드는 2001년 하반기에 런칭한 온라인게임으로 200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렸고, 그 뒤를 바로 2003년에 런칭한 메이플스토리가 이어 받았다. 딱히 게임을 즐겨 하지 않은 나도 2000년대 중반의 크레이지아케이드 - 메이플스토리의 추억은 있다. 컴퓨터 사용 시간을 주말 1시간 등으로 엄격하게 제한하여 크레이지아케이드는 소위 '금달', 메이플스토리는 레벨 26까지밖에 못 찍어봤지만. 크레이지아케이드는 당시 '2p 지원'이 되어서 동생과 동시에 즐길 수도 있었다. 그 외 우리 집에는 CD게임도 많았는데 대부분 짱구게임, 비엔비 어드벤처 등등 우리 세대 국민 만화나 국민 게임에서 차용된 CD게임들이었다. 그 외 교육게임 비슷한 게임들이 있었는데 레이맨 영어교육 버전하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재밌게 했던 영어 게임이 하나 더 있었다.


이들은 애니메이션, 완구, 팬시상품류로도 진출하여 큰 성과를 내기도 하였으며, 특히 2003년과 2004년 내 일기장이나 필기 노트 등은 전부 이런 류의 '크레이지아케이드 캐릭터 문구(로두마니, 배찌, 우니 등)' 들이었다. 2005년은 은천길변에 있던 문구점에서 'Cookie & Chic'인가 하는 캐릭터 노트를 거기서만 팔아서 동아문구도 안가고 거기까지 원정을 가서 그것만 썼었는데, 그 캐릭터와 그 문구점 모두 서칭하기가 어렵다. 로드뷰 제공이 카카오기준 2008년, 네이버기준 2010년 정도부터 되는데, 3~5년만 더 앞서까지 제공됐어도 그 문구점은 찾을 수 있을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게임업체들이 게임에 등장하는 각종 캐릭터를 애니메이션 완구 팬시상품 등에 활용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캐릭터 사업은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원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 use)의 대표적 사례로 게임 홍보에도 도움이 돼 널리 확산되고 있다.

한국경제 2004.11.25.「게임업체 캐릭터사업 "짤짤하네"」



마지막 전통놀이 세대

출처 - 유튜브 '유후의 피아노래' 유후는 1996년생으로 내 동생과 동갑이다

영상 출처 개인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공감가던 영상이었다.

흔히 요즘 초등학생들은 컴퓨터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만 즐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지 않은 어린이들이 공기놀이, 딱지치기, 팽이치기, 다마고치 게임 등 20~30대들이 즐겨했던 놀이에 빠져들고 있다.

최근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딱지다. 초등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캐릭터들이 플라스틱 딱지로 변신했다. 전통적인 딱지는 종이, 신문지, 다 쓴 공책, 못 쓰는 박스 등이 ‘주재료’였다. 요즘 나오는 딱지의 앞면은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입체적이고 뒷면은 편평해 한 번 뒤집어지면 다시 뒤집기가 힘들다. 딱지의 크기와 색깔도 다양해 수집용으로도 인기다.

또 다른 인기놀이는 공기. 요즘 아이들의 공기놀이는 예전과 그 방법은 같지만 공기 모양이 다양해졌다. 화려한 은색 펄이 들어간 공기, 동물 모양 천에 모래알을 넣어 만든 캐릭터 공기, 돌맹이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알루미늄 공기 등이 등장했다. 여자아이들 뿐 아니라 남자 아이들도 공기 놀이를 즐겨한다는 것도 새로운 세태다.

[출처] ‘업그레이드’ 딱지, 공기돌 인기 몰이|작성자 마리 2004.12.16.


2005년은 메이플스토리 딱지가 대유행하던 시기였다. 그 전해에는 저 사진에서 아래에 있는 플라스틱 딱지가 유행했으며(위의 인용글에 나오는 플라스틱 딱지) 이 때 소위 '지존'이 스톤골렘 딱지였는데, 그 다음 해에 나타난 저 동그란 메이플스토리 종이딱지가 정말 대히트를 쳤다.

출처: 국토정보플랫폼. 2005년(입주 7년차) 봉천동아아파트. 당시의 메이플 딱지존.

2005년 놀이터의 저 '메이플 딱지존'에는 정말 많은 어린이들이 나와서 서로 딱지를 쳤다. 나는 약간 투명한 파란색 통에 메이플 딱지를 모았는데, 한번은 이 메이플 딱지를 모은 파란 수집상자를 SLP에 두고 온 적이 있었다. 나중에야 알아차린 나는 늦은 밤에 서울대입구역에 있는 SLP까지 달려가서 그걸 찾아 오기도 했다. 내 기억상 2005년의 이 '메이플 딱지 열풍'이 최후의 놀이터 전성기였다. 이 때 이후로는 다시는 놀이터에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일두아파트 옆 은천로39길 52 건물 1층에도 옛날식 슈퍼가 있었다. 여기도 Cookie & Chic 캐릭터 노트를 팔던 은천로변 문구점처럼 2008년 이전에 사라진 듯하다. 이 이후에도 1층 특정 면적만 카페 등으로 쓰이는 것을 통해 이전에도 그 곳에 무언가가 있었다는 걸 확실하게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위치와 규모로 볼 때 아마 원래는 일두아파트 상가로 쓰이던 곳 아닐까 추측된다. 그 당시에도 이미 아파트 상가의 기능은 사실상 상실한 상태였다. 내가 그 해 겪은 옛날식 슈퍼가 최후의 아파트 상가 흔적이 아니였을까.

2005년도에 하도 저 길로 뚫고 내려와대서 저기도 막았다. 일두아파트 1동 부근.

이 슈퍼를 갈 때도 정직하게 돌아서 가는게 아니라 107동 옆 아파트 내부공원에서 담을 넘어 길을 또 창조해서 갔다. 107동 옆 공원은 원래 일두아파트와 같은 봉천2-1구역으로 묶여 있었는데 모종의 사유로 그 당시에 개발이 안되고 15년 뒤 봉천2-2구역 개발 때 우리 아파트로 편입되어 성현동아아파트 내부공원으로 남게 되었다. 최근 성현동 모아타운을 한다고 이 일대 재개발과 일두아파트 재건축을 묶어서 진행한다고 하는데 그 공원이 떡하니 들어가 있는걸 보고 이 계획 정말 탁상공론이구나 싶었다. 성현동아아파트 내부공원으로 멀쩡하게 쓰이고 있는 그 곳을 갑자기 모아타운 사업구역에 집어넣는다고? 그게 가능이나 할까. 여하튼 그 슈퍼 앞에는 정체불명의 뽑기 기계가 있었는데 이 시대보다도 옛날 시대에 유행하던 뽑기 기계로 보였다. 비슷한 보도를 1990년도의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대림3동의 A문방구 앞에는 야구왕이란 이름의 자판기가 있는데 50원을 넣어 아우트가 되면 물건을 얻을 수 없고 돈만 잃는다. 안타가 나올경우 1번에서 7번까지의 숫자 중 하나에 걸리게 되는데 7번이 나오면 토큰 7개가 나온다. 이 토큰은 1개에 50원의 가치가 있어 문방구에 가서 그에 상당하는 장난감을 받을 수 있지만 돈으로 환불되지는 않는다.

매일경제 1990.11.04. 문방구에 번지는「뽑기」자판기 어린이에 사행심조장 말썽

정확히 저 묘사된 '야구왕'이라는 자판기와 똑같지는 않았지만 대충 비슷했다. 뽑기를 돌리면 꽝 비슷한 티켓 하나 또는 10에서 1까지의 숫자와 그 숫자마다 상징하는 무언가가 적힌 교환권이 나왔고, 그걸 문구점의 특정 상품과 교환할 수 있었다. 10은 가장 기본적인 거였고(아마 뽑기 넣는 비용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물품) 숫자가 낮아질수록 가치가 큰 상품과 교환할 수 있었다. 꽝, 10하고 9까지는 꽤 많이 나왔고 아마 최고로 잘 나왔던게 6인가까지 나왔다. 일기가 유실되지만 않았다면 더 기억을 복원할 수 있을텐데 아쉬울 따름.


2000년대식으로 리뉴얼된 딱지도 그렇고, 놀이터 문화도 그렇고, 마지막으로 일두아파트 옆 슈퍼에서 겪었던 뽑기까지, 소위 '아날로그 시대 어린이'의 최후와 '디지털 시대 어린이'의 시작을 함께 겪었던 우리들이었다.

유후 영상 캡쳐에 함께 언급된 '빨간마스크 괴담'은 , 나 역시도 (아마 SLP 셔틀버스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전파되던 저 괴담을 전해듣고 무서워한 기억이 생생하고, 이 시기에 소위 '괴담'들도 많이 돌고 '무서운 게 딱 좋아' 만화책이 대히트해서 몇 개씩 시리즈가 나오기도 했다. 꽤 오랫동안 내 일요일 아침의 루틴이었고 2020년대 현재도 방영 중인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도 이 때는 유독 무서운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경계의 시기이다보니 그랬을까. 소위 '아틀란티스 사고 예언 괴담' 사건도 이 시기에 터졌는데, 나중에 이 작성자가 '탈퇴한 회원'으로 나오는 바람에 괴담이 더 증폭된 사례였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가 2025년이 되어서 당사자가 나타나 글을 남겼고 특히 왜 '탈퇴한 회원'으로 나왔는지 설명을 해 두었는데 이 글을 보면 이 시기에 인터넷을 즐겨했던 사람들만 알 수 있는 내용들이 있다.

해당글이 예전 뉴스자료보니 아이디가 v_v_0_v_v 이걸로 작성이됬고 첫번째 질문글은 밤 11시경 그리고 2월8일 아침에 작성 한게 나오네요! 아침에 작성한거는 원래 기억을하고있었는데. 아이디가 평소에 제가사용하던 아이디가 아니네요. 당시에 네이버 아이디가 꽤많이 가입을 해서 이용중이었고(당시에 주민등록번호 생성기라는게 있어서 프로그램 버튼누르면 주민번호가 무작위로 생성됨) 해당프로그램으로 무한 가입이가능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아이디를 왜이렇게 많이가지고있었냐면 동물농장이라는 주니어네이버 게임 즐기면서 뭘하려면 아이디가 많이필요했었던거같구요.그렇다면 탈퇴는 제가직접한게아니라, 주민번호생성기로 만든 아이디여서 자동탈퇴었던게 아닐까 생각이듭니다. 그때당시에 아시는분들 아시겠지만 네이버 뿐만아니라 웬만한 모든 사이트에서 주민번호생성기로도 가입이 가능했었는데 어느순간 다 막혔거든요~ 여튼 제가 밝힐수있는건 여기까지네요 ㅎㅎ #

그때의 인터넷은 정말 야생이어서 주민등록번호 생성기라는 프로그램이 초등학생들에게도 아주 접근성이 좋게 퍼져 있었고 그걸로 ID를 몇개씩 만들 수 있었다. 네이버 카페 완전 초창기였는데 카페도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고 매니저 위임도 딸깍 한 번에 바로 되고 하던 그런 시기였다. 이 해명문(?)을 보고 '정말 동년배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실제로 그분은 본인을 93년생이라고 밝혔다)



2005년 그 해 사회 이야기, 그리고 플래시 게임

숭실대학교는 우리 아파트에서 워낙 가까웠기 때문에 관련한 기억들이 조금 있다. 뒤의 이야기지만 2006년 동작음악회를 이곳에서 개최해서 선생님하고 같이 간 적도 있고, 2008년 구암중학교 축제 구암제도 여기 한경직기념관을 빌려서 진행했다.


또한 숭실대학교 글로벌미래교육원(구 평생교육원)에서 주관하고 있는 숭실대학교 영어캠프는 지금도 꽤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고 2025년 여름방학으로 제37회를 맞았다. 이 숭실대학교 영어캠프 '1회'에 참여를 했었다. 2005년 7월 26일부터 8월 20일까지, 주 3회 화 목 토였고 이 기간동안 SLP는 잠시 쉬었다. SLP에서 이미 '영어 환경' 자체는 익숙해져 있던터라 크게 기억에 남는 특정 에피소드는 없긴 하나(SLP랑 느낌이 거의 비슷했다. 장소가 대학교로 바뀐 걸 제외하면), 7월 둘째주였나 숭실대에서 레벨 테스트를 보던 장면은 어렴풋하게 기억에 남는다.


이 숭실대 영어캠프 하면 기억나는건 딱 하나다. 캠프에 가서 반일 감정을 굉장히 티를 냈던 것. 그 때 원어민 강사가 그런 나에게 굉장히 negative한 반응을 보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이불킥하고도 남을 기억이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게 이유가 있었다. 이 때쯤부터 슬슬 사회 돌아가는 것에 관심도 가지게 되고 했는데, 2005년은 2019년 다음으로 한국 사회에 '반일 감정'이 가장 크던 해였다. 2019년이 문재인 정권 3년차였고 2005년이 노무현 정권 3년차였던걸 생각해보면 이게 우연인지 필연인지 신기할 지경이긴 하다.


동아일보 2005년 3월 11일 보도. 이게 1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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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해의 시작은 '한일 우정의 해'라고 해서 나름 괜찮게 시작하는듯 했지만 2월 일본 시마네 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상정하면서 트리거가 일었다. 바로 직후 노무현 대통령이 삼일절 기념사로 '과거사 배상'을 언급하고, 한승조 명예교수 망언 사건이 연달아 터진데다 일본 정계도 강하게 반응하면서 3월 들어 전 사회적으로 반일 감정이 더해졌다. 그 해에 여하튼 그 때 어린 나는 사회분위기에 쉽게 휩쓸렸다.


불멸의 이순신 게임.png


심지어 이 시점에 KBS는 '불멸의 이순신' 대하드라마를 방영하고 있었다. 사회적 분위기와 김명민 배우의 연기력에 힘입어 이 드라마는 공전의 인기를 끌었고 이 시절 드라마가 크게 기억이 나지 않는 와중에도 워낙 이 드라마가 사회적 이슈가 됐어서 막판에 나도 부모님과 같이 이 드라마를 시청하기도 했다. 종영 이후 김명민은 2005년 KBS 연기대상을 수상한다. 반일 감정 극대화 사회 분위기와 이 드라마의 흥행이 겹쳐서 만들어진 동명의 플래시 게임도 있었다. 이 게임은 주로 학교 컴퓨터실에서 많이 했다. 대형 온라인 게임과 플래시 게임이 공존하던 시절이었다. 야후 꾸러기와 쥬니어 네이버를 중심으로 많이 존재하던 플래시 게임은 2010년대 2020년대를 지나면서도 우리 세대의 추억의 키워드로 남아 있으며 이 시절 어린이들을 타겟으로 만들어진 플래시 게임들을 다시 플레이해서 유명세를 얻은 유튜버까지 나올 정도였다.


상반기엔 불멸의 이순신과 반일감정이 키워드였다면 하반기엔 서두에 언급한 청계천과 황우석이 키워드였다. 아래의 기사가 그 해의 분위기를 쉽게 요약해준다. 내게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고 존경하는 선생님이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인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이 해는 어린 나이 치고 사회 분위기가 잘 기억나고 내 삶에도 영향을 준 해였다.

연말을 맞아 인터넷 포털업체들이 앞다퉈 2005 최고의 인기 검색어를 발표, 눈길을 끈다. 업체들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게임 연예 관련 검색어가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과학자 ‘황우석’ 박사가 단연 검색어 으뜸 순위에 올라섰고... (중략) 3위는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가결하면서 사이버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독도 분쟁이.. (중략) 올 한해 네티즌의 관심을 가장 끌었던 뉴스로는 ▲10월 1일 개통식을 갖고 전세계를 놀라게 한 청계천 (중략) ▲새로운 역사 편찬이라는 미명 하에 주변국을 분노하게 했던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등이 있었다.

헤럴드POP 2005.12.10. 2005 최고의 인기 검색어


황우석 교수는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였기 때문에 한창 봉천신도시 완성단계였던 우리 동네가 "동네 집값 황우석효과 보나?" 하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 해 황우석 신드롬을 잘 나타내주는 보도기도 하다. 이 계획은 11월 황우석 논란이 터지며 함께 무산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서울시 관악구와 서울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바이오 연구개발 특구조성 계획을 계기로 낙천대, 봉천동 등 관악지역 일대가 주목받고 있다. 특구설립이 본격화될 경우 이 일대 재개발사업과 맞물려 주택 및 토지가치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런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일부 지역의 집값이 상승하고 있으며 앞으로 경전철 건설 등의 각종 호재까지 겹쳐 오름세가 두드러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바이오 연구개발 특구 어떻게 돼 가나=관악산 일대의 주택가치를 결정지을 핵심 요소로 현지 중개업소와 주민들은 현재 관악구와 서울대가 산학공조로 추진하고 있는 ‘관악 바이오 연구개발(EDU·BIO R&D)특구’ 계획에 주목하고 있다.관악구와 서울대측은 최근 특구 신청을 위한 사전조사 단계로 환경영향평가와 단지설계안 등에 대한 외주용역을 마친 후 세부 설립계획 및 자금동원 계획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측과 관악구측은 늦어도 연내 재경부측에 특구지정 신청을 건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구의 핵심으로 황우석 교수의 각종 연구시설과 의과대학 수준의 최첨단 의료시설이 들어선다. 바로 옆에는 이를 지원하게 될 호텔, 컨벤션센터 등 5150여평(1만 7000여㎡) 규모의 편의시설도 건설된다.

현재 서울대 교수아파트와 의학연구단지 중간에 위치한 3만 300여평(10만㎡) 규모의 부지에는 서울사대부설 중·고교를 이전, 신축하고 특목고도 유치할 방침이다. 맞은편에는 과학전시관, 놀이마당 등도 조성할 계획이다.

봉천동에 거주하는 주민 황모씨(45·자영업)는 “관악구는 타구에 비해 관악산과 서울대학교를 제외하고는 내세울 것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현재 진행중인 재개발 계획과 연계해 특구가 들어설 경우 관악구의 위상을 업그레이드하고 국제적 명사인 황교수의 연구개발에도 더욱 탄력을 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황우석 효과로 집값 탄력받아=관악 바이오 연구개발 특구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이 일대 집값도 꿈틀거리고 있다.
(중략)
물론 이 일대 집값이 단순히 특구계획만으로 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진행해온 신림·봉천지역 재개발·재건축사업의 영향이 크다. 또 관악산에 대한 조망권과 함께 풍부한 녹지 역시 최근 웰빙을 중시하는 주택 트렌드와 맞물려 이 일대 주택가치를 급상승시키고 있다.

파이낸셜뉴스 2005.08.15. 「관악구 집값도 황우석효과 보나」


서울대와 관악구청이 추진해 온 '황우석 연구단지' 설립 계획이 취소됐습니다.

두 기관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를 상용화하기 위해 서울 봉천동 낙성대 일대에 '바이오·의학 연구단지'를 만들기로 했지만, 예산이 확보되지 못한데다 황 교수 연구 성과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계획
자체를 백지화했습니다.

두 기관은 계획을 새로 짜, 예정 부지에 서울대 생명공학 연구시설과 국제 연구 기관을 들이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SBS 2006.02.16. 「서울대, 황우석 연구단지 건립 백지화」


이런 흐름 속에 나의 '어린이로서의 마지막 해'가 끝나고, 다음 해부터는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는 청소년기로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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