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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찬 Dec 15. 2023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 <사건반장>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 JTBC <사건반장>을 보면서 느낀 점 몇 가지.



1.

몸과 마음을 지치게, 혹은 병들게 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주원인. 뭐 누구나 알만한 상식이지만, 드라마는 그것의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유년 시절 어머니의 잔소리처럼 질릴 정도로 주입시킨다. 마치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처럼.


과거 '미친듯이' 일했던 기억이 났다.

전화기를 양귀에 대고 일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마는, 난 그랬다.

그래도 번아웃은 오지 않았고, 일이 즐거워 당시에는 피곤한 줄도 몰랐다. 회사 가는 것이 즐거울 정도였으니까.

건강검진 결과는 항상 '정상'이었고, 키와 몸무게도 항상 정상 범위에 있었다.


그러다 나이가 드니 몸은 하나 둘 고장 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정신이 살짝 '갈'뻔 했지만 가지 않았다.

갈 뻔한 것을 잡아준 것이 어린 시절에도 그랬듯이 '운동'이었다


드라마에서도 '정상' 범주에 있을 법한 인물들의 정신병원 입원기를 그렸다. 길에서 뻔히 만날만한 사람들이다. 겉으로봐선 모른다.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안으로 곪았다. 



딱딱한 콘크리트에 말랑한 마음들이 콕콕 찍혀나간 것이다. 
핏줄이 선명히 드러날 때는 이미 늦었다.



2.

JTBC <사건반장>을 종종 보곤 하는데, 참으로 '쓰레기 집합소'란 생각이 든다.

앵커도 "왜 매번 같은 얘길 반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푸념한다.


이 프로그램은 세상에 온갖 쓰레기들을 모아놓고 잘잘못을 따지고 설명하는 자리다. 어떻게 이렇게 많을까. 


버스를 하면서도 느끼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면 더더욱 실감나게 느낀다. 숨어있는 쓰레기들, 잠재적 쓰레기들 '잠쓰'가 우리 주위에 널렸다. 난 이들이 전 인구의 30%는 된다고 생각한다.


평소엔 드러나지 않지만, 누군가 '버튼'을 눌렀을 때 변한다. 다른 사람으로. 다른 인물이 되어 거침없이 폭력적으로 변한다.


한 데 모아놓고 싶을 정도다. 끊임없이 나온다. 진짜 끊임없다.

무한횡단 쯤이야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선을 넘는 중이시다.



3.

중장년, 특히 노인들의 '뻔뻔하고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들이 교통질서를 바라볼 때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할 정도다.


"나이가 들었으니 이 정도 질서쯤이야 안 지켜도 돼."


그들의 핵심 마인드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나 하나쯤이야'를 넘어선 파괴적 몽상이다. 엄청난 후폭풍은 생각지도 않는다. 이 지구상에 지금 이 순간에는 나만 존재할 뿐이라는 생각인 걸까.


그들을 쓰레기라 부를까. 학창시절 '도덕'시간에 배운 것들이 아까워 부르지도 못하겠다.

도로에 나가보면 사실상 '정신병동'이라 할 만한 것들이 많고 '사건반장'에 나올 법한 것들도 넘쳐난다.



그들이 제발 '당당한 쓰레기'로 남지 않게 하소서...
'공경'하는 마음을 사라지지 않게 하소서... 
매일 기도하는 제목이다.




4.

"내가 왜 정신병원에..."

"날 어떻게 보고..."

"선생님, 저는 정상이에요."


나도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딱 한 번 있다.

결혼 전 이성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적이 있다. 물론 정신적으로.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에너지가 내 머리를 휘감아 정신을 못차렸다.

수면제도 처음 먹어봤다.

끝내줬다. 침대에 눕기 직전 먹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수긍이 갈 만큼 효과는 강력했다.

평생 불면증이라고는 몰랐었는데 그랬다. 

누우면 3분 안에 잠이드는 나로서는 당시 나의 행태가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3분 취침이 재가동 됨)


정신이 신체를 파괴하는 것도 경험했다. 무시무시하다.

정신과는 감기걸렸을 때 내과 가듯이 가야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정신이 무너지면 신체는 아무것도 아님을 느꼈기에.



5.

"너 그 사람이 왜 좋아?" "그냥"

"너 그 사람이 왜 싫어?" "그냥"

"왜 그거 하기 싫어?" "그냥"

"내가 왜 좋아?" "그냥"


세상에 '그냥'이란 단어는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다. 완전 중의적 표현이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경제적인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은 잔뜩 있는데, 귀찮거나 하기 싫거나 하면 '그냥'이란 단어로 모든 것이 무마되고 함축되어 의미 전달된다. 상대방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대답안하면 그 뿐이다.



그래서 난 '그냥'이란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부정적 대답의 '그냥' 의미는, "이런 점이 맘에 안 들지만 그것을 굳이 말로 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고, 말로 한다고 해서 바뀌지도 않을 것 같아서..."라는 의미가 대체로 내포되어 있다.


물론 긍정적인 대답을 할 때의 '그냥'에도 많은 의미가 포진돼 있다.


"그런 점이 너무 마음에 들지만 말을 하면 내가 괜한 말을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런 말을 해서 별 이득이 될 것도 없을 것 같고, 자존심도 지키고 싶고, 내가 먼저 낮추는 것도 싫고 해서..." 정도의 의미.


그냥 사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냥 이라는 말은 참 섭섭할 수 있다. 긴 대답을 바랬는데, 돌아온 대답은 짧은 한 마디뿐이니.


조금 내 마음을 길게 표현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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