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살아남기
매일의 오늘을 증명
오늘도 나는 '나'로 서기 위해
단단히 마음먹는다.
처음 들어간 팀 회의에서였다.
자기소개가 끝나자마자 돌아오는 눈빛들,
“패션디자인 경력이 있으시다고요?” 라며 묘하게 틀을 잡는 말투.
그리곤 얼마의 경력을 갖고 이곳에 왔는지 물었다.
나는 지나 온 나의 커리어를 인정해 주고 싶었다.
지금껏 노력해서 지나온 길 나 스스로 인정해주고 싶었고, 물론 인정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참 뻔뻔하게도 '네~, 자영업 운영할 정도의 경력을 쌓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나는 자영업 중이다. 경기가 좋지 않아 직장을 구했다.
사람들이 뭐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당시는 조용했다.
나 또한 내가 분명히 해오던 일이 있었고,
그 일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중 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뒤에 흐르는 공기는 하나같이 비슷했다.
"그 경력, 여기선 별거 아니야"라는 비언어적 메시지.
공기에서부터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겸손이 미덕이긴 하나, 나이와 경력 지금껏 지나온 시간을 봐서도,
내가 나를 저평가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존중받지 못할 거 뻔히 알았다.
구태여 나까지 나를 낮출 필요는 없겠다 생각했다.
5시간 근무 파트타임 자리였다.
근무시간도 맘에 들었고, 파트타임이지만 업무는 전 직원과 동일하게 진행되며,
직원과 같은 복지 우대와 직원으로 생각한다고? 했던 점...
게다가 나 역시 꾸준히 직장으로 생각하며 다니려고 했다.
꽤나 거창한 통성명을 거치고,
"오늘부터 잘해 봅시다!." 하고 전체 인사를 마쳤다.
나는 새로운 공간에 갈 때마다
타인의 시선에 재단되는 기분을 느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겪어보기도 전에 겉모습 그리고 자리에
그들은 이미 나를 그들만의 위계에 넣어두고 있었다.
상호 존중의 의미로 '님'자를 사용하면서, 존중은 보이지 않았다.
아, 나는 5시간 짜리구나.
그래도 괜찮았다. 대우받으려고 온 곳은 아니었으니까.
늦은 오후 1시 출근 그리고 정각 6시 퇴근.
삼박자가 맞았다. 나- 아이- 워라밸
그런데, 조금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조용히 업무를 처리해 가면서 이전 경력과 무관하지만
하지 않았던 업무에 대한 호기심과 사무직에 로망이 있었던 터라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훈련한다 생각하고 업무를 해왔다.
나를 설명하는 일은 그만둬야겠다 생각했던 사람이다.
학원강사로 일하면서 겪은 일이었다.
비슷한 나이 때의 학생, 그리고 강사로 만난 일이었다.
학기 초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강사에 대한 호기심에
짓궂은 질문을 하기도 하면서 선 넘는 행동을 서슴없이 했었다.
또 본인이 그저 그런 학생이 아닌 걸 증명하기 위해 계속 전력을 다해 전 이력을 어필했다.
그러지 않아도 충분한 사이에 그들은 성에 차지 않았나 싶었다.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의 고충을 느꼈다.
거기에서 "왜 사람들은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증명하려고만 들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또 귀찮기까지 했다.
"내가 말이야? 나는 말이지?...
네가 생각하는 그 정도의 사람이 아니야!
말하자면 길어~"라고하며 으스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매번 설명은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나를 항상 본인보다 아래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본인은 높지는 않은데 낮지도 않으며, 중간은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그런데, 그 밑에 나라니..." 코웃음이 쳐졌다.
내가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떤 방식으로 일하며,
어떤 생각과 철학으로 버텨왔는지.
그 설명은 나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란 걸 알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를 증명하는 일은 비난과 조롱거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애초에 말을 아끼자 생각했다.
그들의 선입견에 대응하지 않는 것이 ‘방어’였다.
방어는 체력을 소모한다.
자존감도 조금씩 뭉개진다.
“또 이걸 참아야 해?”
회의가 끝나고 나면, 어깨보다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이 사회는 존중이라는 기본값이 없다.
경력자에게 주어지는 ‘믿음’ 대신
"우리 회사는 처음이지? , 우리가 하는 업무는 우리가 최고야!"
‘알아서 기어야 될 거야~’라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최근 출판사를 시작한 영화배우 박정민 님이 유퀴즈에 출연했었다.
새로운 일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자세로 납작 엎드려 배우신다고, 나도 마찬가지다.
모르는데 아는 체 하며 고개 뻣뻣이 세우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그 자세에 존중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경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초년생 같은 위치로 돌아가야 하는 게 영 어색하고, 불편했다.
두 손 모으고 두발 모아 정자세를 유지하며 "나는 당신에게 복종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겸손이고 배우는 자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최하위 알바라는 선긋기가 느껴졌다.
그랬다 나도 알바라는 위치 알고 들어 갔고, 알바의 무게로 일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는데 아는 체 하지 못하는 무력감이 느껴졌다.
그들의 방식과 맞지 않으면 깎여나간다.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이해받고 싶은 게 아니었다.
침묵은 일하는 직무자로서 존중과 조력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파트타이머라는 보조인력으로 백업 업무를 맡아해왔지만,
인간적 존중은 없었다.
적어도 알바를 대할 때, 인간 존중은 있었어야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쩔 수 없습니다. 알바는 알바입니다. 알바의 위치에 맞게 행동해 주세요!"
라는 조건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거 같다.
상호 존중이 없는 조직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무례하지만 무례하지 않은, 무시했지만 무시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아이러니한 위계.
"불편함을 감수해 보자. 이것까지 내 월급인가?"보다 생각해 봤다.
매일 5시간씩 업무를 익혀나갔다.
긴장감도 누그러들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그때부터 시작됐다.
월, 화, 수, 목, 금 그리고 토, 일
하루 도 빠짐없이 흔들렸다.
휘청, 휘청, 휘청
이게 맞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가 있나?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여기에 버티고 있는 거지?
라는 의구심이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다.
예민해지고, 화도 나도,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들 일 텐데...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없어져 가고 있는 걸 느꼈다.
질문을 던지면서, 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 계산해 보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흔들려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아무것도 아닌 시간,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시간을 지키며 건강하게 일하고 싶었는데, 그건 꿈같은 거일까 싶었다.
"거참, 좀 같이 좀 합시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목이 메어 버렸다.
도대체, 왜지?
하루하루 비참하게 느껴지던 찰나였다.
오늘도 출근길이 가시밭 길에, 제정신으로 나서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나를 위해 주말 동안 만들어 놓은 화이트 셔츠를
기꺼이 꺼내 한 껏 차려입고 출근을 했다.
그런데 너무 튀는 건 아닌가 싶었다.
기쁘지 않은 마음과, 그렇지 못한 옷, "너무 오버인가?" 싶어 내려놓았다가,
그럼 무얼 입고 갈까 고민하다가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은 그 옷뿐이었다.
주말 동안 매칭해서 입을 옷만 생각했던 터라,
다른 옷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니야, 예쁘게 입고 가자." 싶어,
새로 산 베기팬츠와 함께 매칭해서 코디했다. 그레이시한 쿨톤에 코발트블루 컬러의 실로 조개 자수가 있는 지중해 스타일의 팬츠였다. 화이트 셔츠와 잘 어울렸고 시원해 보였다 게다가 속까지 시원해진 느낌이었다.
"좋아, 기분은 좋네. 모르겠다. 가보자~" 하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단장하고 준비해서 나온 덕인가?
이상하게도, 오늘 회사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나를 향한 공격은 멈춘 듯했고, 묘하게 공기가 부드러워졌다.
웬일인지 사무실 기운이 가볍게 느껴졌다.
"내가 만든 화이트 셔츠덕인가? 내 기분 탓인가?" 하고 느껴졌다.
뭐 아무렴 어떤가, 오늘 하루 괜찮으면 됐지... 했는데...
10개월째 되는 오늘 이상한 말을 들었다.
"알바님, 회사 단톡방에 안 계시더라고요! 안계신지 몰랐는데 안 계셔서 제가 초대했어요!"
라는 회사 메신저 메시지를 보았다.
"뭐! 몰랐다는 게 핑계가 되나????"
"다 알면서, 뻔뻔하게 왜 모른 척을 하는 걸까? 그것도 운영 방침인가?"
어이가 없었다.
내 뒤로 2명이나 새로 들어왔는데, 그들은 초대된 단체 톡방에 나만 없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그동안 태도가 어떤 의미인지 되새기게 되었다.
"10개월 동안 몰랐던 게 아니라. 모른 척했으면서... 운영자가 모르는 게 말이나 되나?"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네~ 알겠습니다. 확인하겠습니다." 하고 메시지에 답변을 했다.
이전 같았으면 그동안의 소외가 서글프고 속상했을 법 한데 괜찮았다.
괜찮지 않았지만, 지금껏 그곳에 있건 없건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만들어 입고 나온 옷이 나를 지지하는데 도움이 된 듯했다.
옷 한 벌 만들려면 들어가는 수고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 복잡한 걸 해낸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인정하고 만족했다.
오늘은 내 기분을 꺾으려 해도, 꺾이지 않았다.
시계가 5시를 향해 가면, 조금만 있으면 퇴근이다.
너무 설렌다. 잠시 후면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게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오늘은 지금 까지 만든 옷 중에 가장 숙련된 노하우로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옷도 뽐낼 수 있는 장소에서 근사하게 저녁을 먹고 싶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가장 근사한 음식점을 찾아
저녁을 먹어야겠다.
생각만 해도 설레는 퇴근 시간이었다.
오늘 하루는 정말 조용히 지나가려나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도 '나'를 지켰네 싶었다.
화이트 셔츠의 기적인가?
나의 노력의 기적인가?
나를 꾸미되
가짜 연기는 하고싶지 않다.
by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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