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잃지 않으려는 이들을 위해
도시는 사람을 키우기도 하고, 짓누르기도 한다.
누군가는 도시를 ‘기회’라 부르지만, 나는 ‘구조’라 느낀다.
꿈을 꾸지 못하도록 짓밟는 구조.
하이힐 신고 사막을 걷는 것 같은 하루,
현실은 푸석푸석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나의 꿈을 움켜쥔다.
도시라는 냉정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불안, 생존, 저항, 그리고 꿈을 꾼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이 도시는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며, 어디까지 인가?
사회 구조 안에서 나의 선은 어디까지 인가?
아는데, 모르는 척?
"아... 맞다. 나는 알바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도 멈춰야 하고, 행동도 제어해야 한다.
일단 D 보단 N, 아니 R로 BACK.
누구보다 앞서면 안 되니까.
아이러니하다.
인재를 찾거나, 발굴하거나, 건설적이어야 하는 사회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남아야 한다.
"생각하지 마. 행동하지 마. 그리고 미소 지어"
주문처럼 외워야 한다.
“사용 완료된 품목 리스트업은 알바님이 하시는 거잖아요?"
"......"
그랬던가? 내 전담 업무였던가?
그동안 나는 오더 한 일들을 처리해 왔다.
알바였기 때문에...
과장이 던지듯 묻는다. 말끝엔 힘이 실려 있었고,
내가 뭘 말해도 그건 변명처럼 들릴 거라는 걸 알았다.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말.
‘제가 해야 된 일이었던가요?’
결과적으로 엉망이었다는 말을 하려고 한 것이다.
무엇이 엉망이었는지는 정정 요청을 하지 않고, 전반적으로 엉망이었다고 한다.
업무 차트에는 항상 동그라미 체크가 되어있었다.
나는 비워져 있는 청구서류 업무만 진행해 왔다.
그 말을 꿀꺽 삼켰다.
말을 꺼낸 순간, 나는 또 그동안 당연히 해왔던 일을 안 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냥 "네\에" 하고 말 끝을 내렸다.
자발적으로 내가 안 한 일로 순순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매일 해야 할 업무를 지시했던 건 과장이고 그 업무를 처리했던 게 나다.
어느 날부터는 왜 갑자기 그 일을 안 한 사람처럼 됐는지?
백업 업무였기 때문에 과장, 대리, 사원들이 팔로 업하지 못하는 일들을 해왔다.
따지고 들면 말이 길어지니, 알바가 업무 기량이 부족해서 안 한 일로 마무리 지었다.
그건 과장이 직접 더블체크하고 누락된 것들을 오더 했어야 했다.
그동안에 더블체크 업무를 진행하지 않았던 과장의 과실이 여력이 들었났다.
며칠 전부터, 퇴근하면서 남기고 간 메시지는 반복적이고 무성의했다.
"알바님, 오늘 업무 마감전에 종료일까지 납품 완료하신 거래처는 한꺼번에 남겨주세요.
내일 출근해서 더블 체크 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었다.
하루 이틀 체크하더니, 매일이 된 듯했다. 업무량은 많지 않았다.
틈틈이 일이 없을 때 했던 일이었다.
외부 업무가 맡겨지고, 그 이상 더 체크할 항목도 없었던 업무라 여겼는데...
또다시 체크를 한다.
"어제, 오늘 종료된 건 역시 한꺼번에 남겨주세요!!"
잉... 업무 팔로업 안 하나?
"어제, 오늘 종료 진행 건 없습니다."로 회신했다.
"확인도 안 하고 계속 시키네..." 짜증이 났다.
그리고 다음날, 회의 시간!
"마감 완료된 거래처 리스트는 확인이 되었을까요?"
"다 했는데요?"
"다요?"
"네! 메시지 남겨드린 게 전부입니다."
"그럼, 저희 거래처 전부 다요?"
못 믿는 눈치인지, 그걸 다했다고? 그동안 얼마나 부주의했는지 알려주는 듯했다.
체크 완료는 16일까지 완료했고, 벌써 한주가 지났다.
"그 이후는 더블체크해서 누락된 업체 확인해서 알려주세요.
그럼 누락 건 진행하겠습니다."라고 그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일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초반에는 사무보조를 하다가 마케터 업무까지 맡게 되었다.
그러면서 계약건을 따내고, 인센티브도 받게 되었다. 처음 해보는 업무였고,
분업이 되어 왔던 터라, 당연히 분업이 되어 진행될 줄 알았는데...
혼자 다 해보는 게 좋겠다고 일 전에 없던 룰을 새로 만들어 냈다.
뭐, 보조해 왔던 일이기에 크게 어렵진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다음 단계 진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없었다. 계약서류는 잘 전달되었고,
계약금도 들어왔고, 그런데 과장만 새로운 계약건을 염두하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실시간으로 현황을 보고하고 리스트 업 해왔는데,
이미 발송한 메일 내용의 오타를 가지고 지적을 하는 것이었다.
"왜? 이 시점에 오타를 지적하는지 모르겠네요."라고 김대리한테 하소연을 했다.
다행히, 김대리도 몇 번 겪은 눈치였다.
나는 처음 해보는 일인데 업무 팔로업을 바로 안 해주면 다음 진행은 어떻게 하라는 뜻이지?..
계약 완료 후 업무 진행을 위한 세팅이 필요했다. 그래서 물었다.
"다음은 제가 뭘 하면 되죠?"
그렇게, 업무 팔로업도 안 하면서, 무의미한 지적만 하는 듯했다.
"왜? 내 위에 있다는 거를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 "
알려주지 않아도 안다.
그녀는 불변의 상사,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보스의 딸이다.
늘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중심에 서 있고,
누구도 그녀의 자리를 위협할 수 없다.
나도 언젠간 승진이나 스카우트 같은 단어를 떠올린 적은 있으나,
그건 현실이 아닌 상상의 영역일 뿐이었다.
선택은 늘 다른 쪽의 몫이었다.
그 자리에 가까워질수록, 나라는 사람은 멀어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입장 차이일 뿐이지."
그 말, 맞다.
하지만 그 '입장'은 늘 바뀌지 않는 위치에 의해 결정된다.
김대리가 했던 얘기가 생각났다.
누군가 여름휴가계획을 물었다.
'에... 저요??"
"알바님!~ 알바는 휴가가 따로 없어요! 이전 사례도 없네요. 알바는 달라요."라고 했던 게...
직원과 다르다면서 알바라면서 업무 비중은 동등하다.
알바라 해서 여태 가벼운 마음으로 다니지는 않았다.
동네 마실 나오듯 에코백 들고 떨렁 떨렁 신나게 다닌 곳이 아니다.
......
그런데,
같은 업무를 처리하면서
알바가 처리한 일은 알바급이고
본인이 처리한 일은 상급자급이라는
위치와 가치를 매겨버린다.
게다가 '차원이 다른 일'이다라고 선까지 긋는다.
사회는 묻는다.
너는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너는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너는 시키는 일만 하기를 바란다.
웃기지 않은 농담에도 웃고,
공감되지 않는 남의 험담에도 공감해야 하며,
모욕 같은 말도 ‘배우는 중입니다’라며 넘겨야 한다.
공통된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그렇다.
이게 그들이 말하는 사회성이라고 한다.
문득 내가 지금 하이힐을 신고 사막을 걷고 있는 기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걷는 길마다 푹푹 빠져버리는 허무함...
무언가를 향해 걷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게 어디인지, 왜 걷고 있는지, 도착은 있는 건지 전혀 모르겠는.
우유니 사막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이 구조 안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듯하면서도 뭔가 중요한 걸 맡고 있는 듯한 기묘한 위치에 서 있다.
'나 없으면 안 돌아가잖아.'라는 생각이 스치지만, 낯 부끄럽다. 곧, 그럴 리 없다 생각했다.
동시에 '너 없어도 돌아가긴 해.'라는 현실이 발끝을 잡아끌었다.
언젠가 누가 그랬다.
"너는 거기서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어?"
나는 웃으며 말했다.
“몰라, 아직은 버티고 있어. 조금씩, 푹푹 빠지면서.”
만약, 사회 초년생이 나와 같은 위치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마흔이 어느새 넘어버렸다. 이전 경력과는 무관한
새로운 분야의 업무로 조직생활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네이버 프로필에 검색해 보면 김미경 기업인이라고 나오는데,
방송인 겸 강사로 활동하시는 김미경 강사님이 말했다.
"자존심 상하는 거 참는 게 실력입니다."라고...
이 말만 되새기면서 순간순간을 버텼다고 할 수 있겠다.
나도 언젠간 김미경 강사님처럼... 될 거야.
'흥' 하고, 콧방귀 뀌며 참아댔다.
"그래, 자존심 참는 것도 실력이래... 실력 좀 키워야겠다."
그게 경제적인 이유든, 아이를 위한 일이든, 어떻든
나를 세우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막을 걷는 건 끝이 안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막을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젠가 그 끝 어딘가에
내가 놓아버린 꿈이 묻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일 거다.
아무도 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서, 꿈의 방향을 향해 하이힐을 질질 끌며,
나의 감정과 생각을 매일 포장지에 싸서 서랍 속에 넣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오늘도 '나'로 살아남기 위해서.
by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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