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간 여자

낯선 도시, 낯선 남편, 그리고 한 사람의 소멸과 탄생

by seoul

4부. 서울로 간 여자_

낯선 도시, 낯선 남편, 그리고 한 사람의 소멸과 탄생


“아빠는 엄마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대.”
엄마는 그렇게 시작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결혼까지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니,
그럼 왜 했을까.

“그 안에는 모순이 있지.” 엄마가 웃었다.
“처음엔 아빠가 오지말라고 했데, 엄마가 결혼하기 싫다고 해서.
그 말을 들은 아빠가 오기가 생겼대.
‘뭐? 내가 싫다고? 그럼 더더욱 해야지.’”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게 말이 돼? 좋으니까 그랬겠지.”
“쳇.”
“하하, 그러게 말이다.”

엄마의 웃음에는 쓸쓸한 여운이 섞여 있었다.
그 결혼은 사랑이라기보다 오기였고,
운명이라기보다 선택을 강요당한 생존의 형태였다.

엄마는 그날, 그 길로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아버지가 사는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고 한다.
“들어오란 말도 안 하고, 가란 말도 안 하더라.”
그래서 그냥 서 있었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문틈 사이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빠의 어린 동생들,
키득키득 웃으며 엄마를 쳐다보는 얼굴들.
“가라니까, 왜 안 가고 있어?”
“못 가요. 아버지가 가서 오지 말라 하셨어요.”
“허, 들어와요 그럼.”

그 한마디에 엄마는 조심스럽게 문턱을 넘었다.
그게 엄마의 서울 생활의 시작이었다.

결혼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치러졌다.
“앞으로 같이 살아야 하니까, 뭐… 그렇게 됐지.”
엄마는 담담히 말했다.

그때 엄마의 나이는 스무 살,
아빠는 서른이었다.
그 집에는 어린 동생들이 여럿 있었고,
시어머니도 함께 살았다.
“어떻게 이 많은 식구를 만드셨는지 신기했지.
그냥… 살았어. 그게 그때의 결혼이었지.”

엄마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말 속엔 버거움이 묻어 있었다.
결혼은 ‘가정의 시작’이 아니라
‘노동의 연장선’이었다.

“아빠는 성실했어.”
엄마가 말했다.
“일도 잘하고, 노래도 좋아하고, 춤도 좋아했지.
쉬는 날엔 꼭 영화 보러 가자고 했어.”

“좋았겠다, 데이트도 하고.”
“아니야, 귀찮았어.”
“왜?”
“그런 거엔 흥미가 없었거든.
노래도, 춤도, 영화도… 다 피곤했어.”

“그럼 아빠는 서운했겠다.”
“그랬지. 삐지고 화내고… 그런 일 자주 있었어.
그땐 그냥 안 맞았던 거야.

아빠와 엄마는 10살 차이였다.
아빠는 세상을 즐기고 싶었고,
나는 세상을 견디고 있었으니까.”

엄마의 말이 내 안에 오래 남았다.
‘세상을 견디던 여자’라는 말.

그건, 단 한 문장으로도 그녀의 삶 전체를 설명했다.

나는 그날 밤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엄마는 서울로 갔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가야 해서 갔다.
그 문턱을 넘은 순간부터,
한 여자는 며느리가 되었고,
한 사람의 꿈은 잠들었다.


그때의 엄마를 상상해본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집의 문 앞에 서서,
가라고 해서 왔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조용히 손끝으로 문턱을 더듬던 그 스무 살의 여자.

그녀의 이름은 노귀자.
서울로 간 여자.
그리고 그 문턱에서부터
나의 이야기 역시 시작되었다.


그 당시가 재밌었는지, 세월이 훌쩍 넘고 넘어도

고모들 사이에서는 웃음거리였다.

"우리가 꺼꾸리라고 불렀지.

하도 꺼꾸로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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