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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정 Mar 15. 2020

회사를 뛰쳐나와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이유

[N잡러의 잡다이어리] 나는 왜 N잡러가 되었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고, 글로 사회를 보다 밝고 건강하게 바꾸고 싶었던 내가 선택한 첫 직업은 잡지사 기자였다. 그러나 오롯이 홀로 결과물을 내야만하는 기자의 삶은 한없이 외롭게 느껴졌고,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커질수록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컴퓨터 모니터만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늘어났다. 내 이름 세 글자가 새겨진 기사가 기록물로 남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부담감과 책임감을 동반하는 일이기도 했다. 자조적인 한탄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커질 때쯤, 진로를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리스트를 적어나갔고, 최종적으로 '공연'이라는 두 글자가 남았다. 공연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 분야였던데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 결과물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더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좋아하는 일을 재밌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직업이라는 생각이었기에 연봉이나 일하는 환경을 세세하게 따질 겨를도 없었다. 


따지고보면 공연기획자로 일하면서 나는 '평범'이라는 단어와 멀어진 삶을 살게 되었다. 일반적인 직장인들의 출퇴근 시간과도 한참 다른 일과 속에서 일했고, 국내와 국외를 오가면서 '역마살의 표본'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휴가 시즌이나 명절과 같은 시기에 공연계는 성수기였던 만큼 나는 친구들에게도 제일 만나기 어려운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지인들과의 약속을 제일 많이 깬 것도 나였고, 만나자마자 급한 일이 있다며 약속 장소에서 제일 먼저 이탈한 것도 나였다. 


요즘도 가끔 공연계의 임금 미지급 이슈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나 역시도 일하던 곳이 어려워 월급이 밀린 적이 몇 번이고 있었다. 일한 만큼의 보수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받았으면 다행이다!'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오가는 곳이었다. 


이처럼 업계가 갖고 있는 불안정성 때문에 나는 역으로 소액이나마 안정적인 부수익이 생기는 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하던 곳이 어려워질 때는 동대문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통역 일을 맡아 하기도 했다. 또 페스티벌에서 일하면서 급여를 벌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모두 일시적인 것들인 경우가 많아서 잡지사에 기고하는 일을 꾸준히 하게 되었다. 이전에 기자로 일한 경험이 있어 생긴 기회였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공연기획자의 일을 병행하기에 그나마 수월했다. 비록 원고료는 많지 않았지만, 매달 꾸준히 들어온다는 점에서 계획적 지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수 년간 여러가지의 일을 하면서 제대로 된 휴일 없이 살았던 나는 때로 안정적인 삶이 그리워짐을 느꼈다. 근무일과 휴일이 나눠져 있고, 일정한 급여가 같은 날 지급되는 그런 직장인의 삶. 그 때문에 로봇회사와 마이스회사에서 일한 적도 있고, 교육회사에서 기획자로 일한 경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번번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일할 수 있는 프리랜서이자, N잡러의 삶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같은 업무에 쉽게 질리고마는 성격인데다 한곳에 매여있으면 어디론가 새로운 도전을 향해 뛰어나가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고개를 들어 결국은 번번이 뛰쳐나가고 말았기 때문이다. 해를 더해갈수록 무언가 그럴듯한 곳에 소속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가 많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진득하게 해야한다'는 사람들의 충고에도 흔들릴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어떤 부류 안에 넣기보다는 내가 하고 있는 일들 사이의 연관성을 찾으면서 꾸준히 확장해나가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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