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러의 잡다이어리] 비수기를 견디는 법
2019년이 끝을 향해가던 지난 12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해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바빴다. 그러나 지난 해 상반기 그렇게도 혹독하게 겪었던 비수기의 늪을 너무 쉽게 간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연이나 수업, 행사 모두 분명히 성수기가 존재하고, 변수가 많은 분야다. 그러다보니 상반기에 부진했던 수익과 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하반기에 과도하게 많은 일들을 맡아 혹사하면서 '이러다 죽겠네!'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갑자기 부어오른 눈 때문에 앞이 안 보일 지경인 날도 있었는데, 병원 갈 시간도 없어 약국에 갔더니 이건 약으로 치료될 일이 아니니 안과에 가보라 했다. 무리한 탓에 눈가에 고름이 생겼다는 결론이었는데, 그 몇 십 여분의 시간에도 전화기는 계속 울리고 있었다. 잠시동안에도 나를 찾는 곳은 너무도 많았고, 아프다는 사실도 잊을 정도로 마음이 타들어갔다. 고름을 짜내고 나오는 길에 눈물이 뚝 떨어졌다. 워낙 야근이니 잔업이니 겹치는 여러 일들에 익숙해 몸이 버텨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행사와 교육이 몰린 후반기의 일정을 멀쩡한 체력으로 소화해내기엔 한없이 무리였다. 그때마다 내가 한 선택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버텼다. 퇴사한 것을 후회하고 싶지도 않았고, 혼자 힘으로 당당히 서겠다던 결심을 꺾고 싶지도 않았기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프리랜서이자, 1인 개인사업자로서의 불안감을 억누르기 위해 희망찬 계획으로 새해를 시작했지만, 올 겨울도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혹한기를 보내는 중이다.
우선 겨울에는 행사가 많지 않아 기획자가 할 수 있는 일거리도 많지 않을 뿐더러 통역할 행사도 거의 없다. 학교는 방학을 맞이한 상황이라 교육도 휴업 상태다. 그 와중에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몇 가지 일들이 지연되거나 아예 취소되어버렸다. 가뜩이나 비수기인 시점에 몇 가지 되지 않는 일들도 갑자기 공중으로 사라져버리면서 마음이 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허탈한 마음으로 어영부영 하루를 보내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기로 결심했다. 재단이나 기관의 지원사업을 열심히 뒤져 지원서와 제안서를 작성하고, 주변 지인들을 만나 앞으로의 일들을 도모했다. 이 과정이 가장 힘든 순간이다. 아이디어를 짜내고 글을 쓰기에 마냥 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내놓거나 시행하는 것도 아니니 일을 한다고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나날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무언가를 시도하고 노력한다는 사실이 하루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원동력이다. 명색이 기획자인데 그간 다른 이들의 작업물을 보고 무언가를 느끼는 일에 게을렀다는 반성이 일어 공연이나 전시도 많이 보러 다니는 중이다.
불안정한 여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대단한 결과가 아닐지라도 꾸준히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춥다고 웅크리고만 있으면 이 무기력한 날들은 더 길게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지금의 강제휴식을 전전긍긍하면서 보내기보다 앞으로 할 일을 계획하고,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내는 시기로 보내려고 한다. 상황을 탓하기보다 그 어떤 위기를 다 이겨내고서도 당당히 설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