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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부 Aug 26. 2020

존버(?) 정신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2-2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 오성부

서울 생활 10년. 드디어 반 지하에서 탈출해 지상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때쯤 누나도 서울에 올라오게 되었는데, 우리 남매는 열심히 모은 돈으로 보증금 삼천 만 원에 월세 55만 원인 4층 빌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큰 방도 두 개나 있고 거실도 널찍했으며 에어컨까지 있는 집이었다. 무엇보다 베란다가 넓어서 빨래를 널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역세권이라 지하철역도 가까운,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집이었다. 


나는 이사를 한 후에 그동안의 ‘꼬질꼬질했던 월세 살이’에 대한 한을 풀고자 몇 날 며칠이건 파티를 열었다.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집 구경도 시켜주고 밥도 해 먹고. 정말 설움에 북받쳤던 그 서울의 나날들이 한순간에 싸악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언젠가 들었던, ‘삶이 달라졌’ 다고나 할까. 여하튼 나의 ‘제대로 된’ 첫 지상 진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2년쯤 지나고 누나가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집에서 나는 온전히 혼자 살게 되었는데 누나와 함께 부담하던 월세를 혼자 감당해야 하니 또다시 어려움이 찾아왔다.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고, 나는 그때 막 사업이라는 것을 시작하고 있을 때여서 초창기라 돈이 돌지 않았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증금을 빼고 다시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어떻게 올라온 지상인데. 길바닥에서 노숙을 하더라도 두 번 다시 반 지하로는 안 간다.’     


그래서 나는 옥탑으로 이사를 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집. 볕은 잘 들지만 미세먼지가 만연한 날에는 손에서 걸레를 떨어뜨릴 수 없는 집. 매일 밤이면 도심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집. 

나는 지상의 그 집에서 많은 시간들을 견디고 이겨내며 살아내고 있었다.       


온갖 설움으로 가득했던, 꾸역꾸역 살아내었던 20대의 월세 살이. 그리고 여전히 월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30대의 월세 살이. 


내가 서울에서 사는 동안 변한 것은 지하의 그 월세에서 지상으로 점프를 했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렵다고들 한다. 


나는 결혼을 하고 청약주택을 지원한 적이 있다. 그런데 150 대 1이라는 경이로운 숫자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입주에 들어가는 종잣돈이 1억 원 이상. 요즘에 빚 없는 사람이 없고 내 집 마련을 위해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하지만, 정말 빚 없이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역시나 너무나 이상적이기만 한 걸까, 싶어 못내 씁쓸함만이 입안에 맴돌기도 한다.


어차피 대출을 끼고 산다고 해도 갚아야 빚에 허덕이게 될 테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안 되더라도... 서울에서의 집이란? 나에게 끊임없이 도전하게 해 준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그런 내가 내 집이 생기기 전에 포기한다면 서울에서 이 죽을 고생을 하며 사는 게 참 뭐라고 해야 하나... 정말 낙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말인데... 오늘도 존버! 내일도 존버!

우리 같은 존버들에게는 하늘의 별 따기일 수 있지만 내 집 마련을 하는 그날까지,

존 x 버텨볼 생각이다 으랏차차.     


*존버 : 끝까지 버티겠다는 굳의 의지의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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