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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나 Jan 06. 2021

이제는 정말, 보내주어야 할 나의 한해

일상 한 단락 여섯, 조금 늦은 한 해의 작별인사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에게 새해 복많이 받으라는 말을 해도 될까 살짝 망설여지는, 2021년 새해의 세번째 날.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으레 이런저런 생각들을 긁어모아 쓴 글을 SNS 에 남기곤 하는데, 이번엔 어쩐 일인지 다른 사람들의 한해 정리와 다짐들에 하트를 두 번 누르는데서 그쳤다. 그래서일까, 왠지 열심히 글을 쓰고 마지막 한 문장을 남겨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조금 늦게나마 해보는, 한 해와의 작별인사.



#백수생활을 하며 찾은 나의 데일리 루틴

작년 11월 말, 퇴사를 하고나서 올해 2월까지 네 달간 휴식기 아닌 휴식기를 가졌다. 쉬는 기간을 그다지 즐기지 못하는 편인지라, 퇴사 전부터 입사 2주쯤 전까지 채용공고 찾기와 이력서 제출, 면접의 반복이었다. 불확실함에 갇혀 답답하게 느껴지는 일상 속에서도, 나만의 루틴을 찾은 것이 백수생활 최대 수확이다.


오전에는 유튜브와 영어회화 어플로 영어공부를 했다. 시험을 위한 공부만 해왔던 나였는데, 그저 '더 알고 싶어서' 하는 공부의 힘은 꽤나 단단한 습관으로 자리잡아주었다. 시간여유가 생기자, 본격적으로 운동을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1시간 30분 통근러였던지라 운동은 커녕 집에 도착하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는데, 백수가 되며 평일 오후 3시에 PT를 받았다. "역시 돈있는 백수가 최고야."


27년 인생 난생 처음으로 규칙적인 운동, 그것도 나한테 가장 부족한 근력운동을 하면서, 3개월만에 근육이 2kg 이나 늘었다. 매일 집에 혼자 있다보니 좀처럼 대화할 일이 많지 않았는데, 트레이너 쌤과의 수다시간도 소소한 즐거움이 되어주었다. 시작은 쉽게 해도, 꾸준히 하는걸 어려워하는 나였지만, 지속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던 나의 짧고도 알찼던 백수생활.


#새로운 직장에서의 시작 (부제 : 일, 일, 일... 일의 끝을 찾아서)

퇴사 후 또다시 막막한 재취준 생활이 시작되었고, 수많은 회사에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러다녔다.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서 면접을 볼 수 있었고, 4개월만에 다시 새로운 회사로 취업을 했다.

문과생이지만 조금 더 전문성이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퍼포먼스 마케팅 직무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직장생활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업무는 처음이라 모르는것 투성이에, 또 왜 이렇게 어려운 용어가 많은지..


허둥지둥하던 입사 초기를 지나니 매일같이 업무가 몰려들어왔고, 퇴근길 지하철대신 택시를 타는날이 빈번해졌다. 업무시간에 다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주말에도 밤낮없이 노트북을 켜곤했다. 그래도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만 남는다고 했던가? 좋은 사람들 덕분에 많이 배우고, 함께 웃으며 한 해를 지나온것만 같다. 물론 이 선택이 최선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어떤 선택을 했건 후회는 하지 않았을까?


새로운 회사로의 출근 하루 전날,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셨던게 생각이 난다. 기대반 설렘 반이라기보단, 그냥 갑자기 만사 제치고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었던 그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불안했던 백수생활을 청산하고 수입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주머니 사정에 여유가 생기자, 드디어 나도 가족들에게 베풀 정도의 여유가 되었다. 올해는 엄마, 언니와 함께 세모녀가 처음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13년만에 제주행 비행기를 탄 엄마의 설렌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잠잠해질만 하면 다시 심해지는 코로나 때문에 그 이후론 다시 멀리로 여행가지는 못했지만, 반 강제로 집콕생활을 시작하며 가족들과 부대끼며 보내는 시간은 더 많아졌다. 밤늦게 퇴근해 집에서 잠만 자고 다시 출근하는 일상에 지쳐있었기에, 재택근무를 시작하며 가족들과 함께 저녁밥을 먹는 일상이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해가 갈수록, 변함없이 내곁에 있어줬던 건 어쩌면 가족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속되는 집콕 생활에 가끔은 투닥거릴 때도 있지만, 언제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주는 가족들과 올해도 소소한 추억들을 더 쌓아나가고 싶다.




최근에 우연히 읽은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사람의 뇌는 무의식 중에서 쉴틈없이 일하고 있어서, 어떤 말을 하기까지 속으로 수십번은 반복해서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툭 뱉는 말조차, 속으로 몇번이고 되뇐 후에야 뱉어진 말이다."


사실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며 올해도 별거 이룬게 없다고 생각하며 후회만 가득했다. 그런데 찬찬히 되돌아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결과물이 내가 처음 생각했던것과 똑같지 않은 탓이었다. 결과가 상상과 다르다고 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것은 아니다. 사실은 하루하루 치열하게 고민하고, 바쁘게 살았던 한해였다. 한 해가 지나버린 지금은, 정말 애썼다고, 앞으로 더 잘해보자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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