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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우 Aug 05. 2023

라디오 좋아하세요?

내 학창 시절의 유일한 스트레스 창구는 라디오였다. 라디오 방송을 처음 입문했을 때는 윤종신이 DJ였던 <우리는 하이틴>이었다. 언니가 가끔씩 라디오를 들었었는데 그때 라디오 방송에서 윤종신이라는 DJ를 처음 알았다. 지금은 무척 유명한 연예인이 되었지만 그때는 그분도 신인이었던 시절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공부를 하다가 힘들거나 잠시 쉬어갈 때면 항상 밤 10시 프로그램을 즐겨 들었다. 특히 유영석의 <FM 인기가요>는 나의 최애 프로그램이었다. 항상 공부할 때 워크맨 이어폰을 양쪽에 낀 채로 두 눈은 책에, 두 귀는 라디오에 쫑긋 귀를 세우며 2시간을 꼬박 그렇게 매일을 보냈던 시기가 있었다.


한 번은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친구와 함께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역시나 그때도 내 귀에는 워크맨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유영석의 FM인기가요를 한참 듣고 있었는데 아마도 게스트가 나와서 한참을 DJ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웃긴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한창 모두가 공부하고 있는 그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그만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내 주위에 있던 친구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 옆에서 공부하고 있던 전교 1등을 했던 친구가 와서 조용히 물었다.


"라디오가 그렇게 재미있어?"


"응. 너무 재밌었네. 그만 나도 모르게... 너무 크게 웃었지? 미안해..."


"나는 공부할 때 노래나 라디오 들으면 공부가 잘 안 되던데. 너는 괜찮니?


"응. 나는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은 거 같아. 이제는 라디오 안 들으면 뭔가 허전해."


민망함에 친구가 물어보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을 하고 말았다. 아마도 친구는 조용히 해달라고 내게 주의를 주려고 했던 것 같았지만 내가 기분 나쁘지 않게 질문을 하고서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 라디오를 들을 때면 주위를 살피며 혹시나 큰 소리를 낼까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정말 노래를 들으며 공부를 하는 게 가능했던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DJ가 이야기하거나 사연을 들려주거나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당연히 공부에는 집중을 전혀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꼬박 10시부터 12시까지 라디오 방송을 듣고 나면 그 이후에는 라디오방송 때문에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공부를 메꿔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우리 동기들 사이에서는 항상 내가 마지막으로 취침을 하는 사람이 되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의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다른 친구들은 내가 가장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으로 오해를 했었다.




나의 라디오 사랑은 방송반 오디션으로 이끌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나의 시선을 잡아 끈 것이 있었으니 바로 학교 방송반을 모집한다는 기사였다. 우리 학교에는 점심시간과 청소시간 하루에 딱 2번 방송을 해주었는데 그 시간이 참으로 좋았다. 방송반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내 목소리가 각 반의 스피커를 타고 전해질 것이라는 상상에 들떠서 오디션날이 어서 오기만을 바랐다. 방송반 오디션에 지원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거의 50명 넘게 지원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거의 10대 1의 경쟁을 뚫어야만 가능했다. 그런데 오디션을 며칠 앞두고 나는 목감기에 들어버렸다. 꼭 방송반에 들어야 하는데 하필 목감기가 들다니 정말 울고 싶었다. 드디어 오디션 당일날이 되었다. 여전히 나의 목상태는 좋지 않았고 최대한 예쁜 목소리로 위장하여 글을 읽어보려 했으나 내뱉어지는 목소리는 쇳소리였으니 오디션을 보지 않아도 나의 목상태는 이미 탈락감이었다. 드디어 내 차례. 방송반 담당 선생님이 읽어보라고 주신 종이쪽지를 받아 들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마이크 앞에 섰다.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가 '내 목소리는 꾀꼬리 목소리다'라고 생각하며 몇 문장을 읽어 내렸다. 그러자마자 선생님은 "그만. 됐습니다."라며 오디션의 끝을 알리셨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탈락이었다. 내가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 했던 방송반은 같은 기숙사 안에 있는 다른 친구가 선발되었다. 방송반에 합격하고 기뻐하던 그 친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참으로 슬펐지만 축하해줘야 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한편으로는 질투가 나더라는. 그렇게 한순간의 꿈이 사라져 가고 난 후 방송반 입성은 실패했지만 나는 우리 학교 방송반의 애청자가 되었다. 빗자루로 먼지를 쓸다가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흥얼거리기도 하고 슬픈 노래가 나오면 비가 오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였다. 가끔은 마지막 노래를 남겨두고 클로징멘트를 하는 DJ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만약 DJ라면 어떤 노래로 오늘의 클로징을 할까라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항상 라디오 방송을 들을 때면 나는 시그널 멘트와 클로징 멘트를 유심히 잘 듣는 편인데 내가 DJ의 입장이라면 청취자들에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을지를 생각하며 작가는 오늘 이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구나라고 혼자서 음미해보곤 한다.




요즘에도 나는 가끔씩 라디오를 듣는다. 예전처럼 방송시간을 기다려서 매일 듣는 청취자는 아니지만 주말마다 듣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김창완 아저씨의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이다. 아침 9시에 흘러나오는 시그널 음악, 그리고 이어지는 김창완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내 마음도 편안해진다. 그리고 선곡되는 노래도, 들려주는 사연도 참으로 따뜻하다.


자동차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파랗다. 밖은 여전히 폭염으로 인해 체감상 35도를 육박할 거라고 하는데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차 안에서는 김창완 아저씨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더위는 온데간데없고 내 마음을 울리는 노래와 사연이 김창완 아저씨의 목소리로 채워져 가는 평온한 여름날 아침이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제 학창 시절 유일한 스트레스 창구는 라디오였습니다. 제 친구들은 TV음악 프로그램을 좋아했지만 저는 라디오가 제 취향이었어요.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요즘도 라디오를 좋아한답니다. 자주 듣지는 못해도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있답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저처럼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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