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 윤 Mar 11. 2020

‘이혼'. 단어의 무게.

타인에게 지금의 나를 말한다는 것.

한창 롱 패딩을 입고 다녀야 했던 날씨의 작년 겨울.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A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통화되냐고 묻는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나는 그 목소리에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했다.

사실 A와 나는 개인적인 통화를 자주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그녀가 문득 밤늦게 전화한 이유는 아니나 다를까, 결혼생활을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A는 내 이혼 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고 그렇기에 자신의 문제를 상의할 사람은 나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작년 가을, A는 결혼식 청첩장을 주겠다며 약속을 잡으려 했다. 나는 결혼을 진행해 본 입장으로서 일일이 만나서 청첩장을 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건 정말 기혼자만이 알 거다.) 알기 때문에 모바일로도 충분하다고 했지만 그녀는 어쩐지 직접 만나야 한다며 강력하게 주장했고, 결국 우리는 어느 날 밤 강남의 한 술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맛있는 안주와 함께 술 한잔을 기울이며  A는 내내


"언닌 그럴 때 어떻게 했어? "

"결혼 준비할 때 언니는...."

"싸울 때 언닌 어떻게...."

"언니 그날 정말 예뻤어. 진짜 행복해 보여서 부럽더라!"


하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사실 그녀가 내 결혼에 대해 계속 언급하는 것도, 결혼식 때 너무 행복해 보여서 부러웠다는 얘기를 하는 것도 너무나 불편했지만 딱히 주변인들에게 내 이혼 사실을 알리지 않은 터라 대충 에둘러서 답해주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A와는 동아리에서 만나게 된 사이로 A는 물론 A의 남편인 B도 동아리에서 함께 알고 지내왔기 때문에 나는 그 둘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했고 기뻐했지만 A의 다음 말에는 기뻐할 수가 없었다.


"결혼식 사회를 봐주었으면 좋겠어. "


당황스러웠다. 내가? 너희 결혼식을? 응. 1부 말고 2부에서 사회를 봐줄 수 있을까? 우리를 잘 알고 말도 재밌게 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언니가 딱이야. 그 자리에는 나 말고도 다른 친구가 앉아있었고 그들 중엔 아무도 나의 이혼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나 곤란해진 나는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거절했지만 A와 B가 함께 꼭 해달라며 부탁을 해오는 바람에 알겠노라 하고 그날 자리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며 고민을 했다. 내가 결혼식 사회자를 맡아도 되는 걸까? 난 실패했는데, 새로 시작하는 커플의 결혼식에서 내가 사회를 맡으면 축복받아야 할 그들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이혼을 하면서 걱정했던 것 중에 하나가 있다. 훗날 내 동생이 결혼하게 될 때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이혼한 누나가 흠이 되진 않을지 하는 것이다. 오래 만난 여자 친구가 있는 동생이 혹여 상견례라도 하게 되는 날에는 나에 대한 물음이 있을 것이고 그렇담 그 자리에서 나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아니, 다 떠나서 이혼을 한 나의 존재가 가족들에게 '흠'이 되어버릴 것 같은 마음이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는 그렇게 말하는 나를 혼냈다. 네가 어떻게 흠일 수 있냐며. 요즘 세상에 이혼은 흠도 아니야. 그런 생각을 왜 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 쓸데없는 생각조차도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틀을 고민하다 A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하지만 난 사회를 봐줄 수 없다고, 다른 사람을 구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자 그녀는 무척 섭섭해하면서 역시나 내가 아니면 안 된다며 재차 부탁을 해왔고 결국 나는 준비했던 말을 해야 했다. 나 이혼했어. 몇 번을 해도 가볍지 않은 말을.

그녀는 순간 굳어버리더니 뒤이어 나를 위로해줬다. 자신은 괜찮으나 언니가 불편하다면 알겠다면서. 나는 정말 괜찮아 상관없어 언니만 괜찮다면.라고 말했다. 아마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정말 내가 사회를 맡을 순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결국 나는 사회 자리를 고사했고 결혼식 당일에 가서 하객으로서 열심히 박수를 쳐주다 돌아왔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지만 여전히 타인에게 내 개인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결혼식에 와서 축하해줬던 지인들, 혹은 축가를 불러줬던 많은 친구들은 그날의 내 모습을 기억한다. 결혼식 로비에 진열된 웨딩사진들과 내가 보여줬던 미소와 화려했던 결혼 행진을 기억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 선택과 정반대 되는 일을 이야기 하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A가 결혼생활을 이어가도 될지 자신이 없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울면서 말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혼이라는 게 어떻게 생각하면 진짜 별거 아니야. 나에게 잘 맞는, 좋은 화장품인 줄 알고 썼는데 써보니 피부 트러블이 나버려서 버려야 했던 것처럼, 그냥 그것처럼 잘못 선택한 것뿐인 실수.  난 그게 이혼이라고 생각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야. "


말은 청산유수처럼, 이혼까지 고민 중이라는 그녀에게 나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떠들어댔다.

정말? 정말 그렇게 생각해? 되묻는 그녀에게 틀림없이 그럴 것이며 네가 무엇을 선택하건 난 너를 응원할 것이란 말로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할까? 그렇다면 나는 왜 사람들에게 내 이혼 이야기를 쉽게 하지 못하는 걸까.

머리로는 알고 있다. 이혼은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수많은 선택들과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 중에 하나일 뿐이며, 그저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실수'와 같다는 걸.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인생에서 이 특별한 실수의 크기는 너무나 커서, 쉽게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어떤 무게를 가지고 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그래서 나는 이 무게가 줄어드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어느 정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로 작아졌을 때에야 비로소 누군가 결혼 생활은 어때?라고 물었을 때 아아, 나 결혼 생활 안 하는데. 이혼했거든 하고 조금은 용기 내서 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크기의 돌이라도 어떤 물속에 던지는지에 따라 튀어 오르는 물의 양이 많고 적고 가 다르다.

깊은 곳에 던져진 돌은 금세 가라앉아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얕은 물에 던져진 돌은 물만 요란히 튀기고 제 모습을 채 숨기지 못한 채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처럼, 나는 묵직한 무게를 가진 '이혼'이란 단어를 상대방에게 던질 때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할지, 혹은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무거운 단어를 잘 받아주고 가라앉혀  많은 물을 튀기지 않고 다시 평온하게 해 줄 거란 믿음을 주는 사람에게만 내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단단한 관계들 속에서 안전하게 말하며 용기를 얻고 나서야 나는 점차 거리가 있는 타인에게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무겁고 투박하던 돌이 끊임없이 물속에 내던져지다 보면 작아지고 둥글게 다듬어지는 것처럼 이혼이란 단어의 무게도 내던질수록 작아져 간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것이 아주 작은 조약돌로, 넓디넓은 해변에 놓인 수많은 돌들 중 하나로,  그리하여 그저 긴 인생에서 있었던 어느 날의 단편으로 작게 남게 되기를 바란다.


사진출처 : Unsplash


이전 07화 가족이란 이름의 안식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