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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서영 Oct 22. 2023

아들의 딸

나의 존재는 남순에게 손녀라기보다 아들의 딸이었다. 나를 보는 남순의 눈빛은 내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나의 아버지라는 존재를 통과한 후 비로소 나에게 닿는 느낌이었다. 내신 시험에서 2등을 해오면 선욱이 당시 인기학과였던 토목학과 편입 허가증을 떡 하니 내놓은 일에 대해 들었고 더러워진 양말이나 속옷 따위를 손세탁하는 것을 미뤘을 때에는 선욱이 일하다 늦게 돌아오는 엄마(남순)를 위해 집 청소는 물론 저녁 식사까지 정성스레 준비해 놓고 기다린 일들에 대해서 들었다.


나의 부족함은 일찍 죽어버린 내 부친의 완벽함을 학습하게 했다. 그의 완벽함은 그것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그의 부모가 내 삶과 연결되어 있는 한 계속될 것이었다. 병철이 나를 볼 때의 눈은 대체로 아버지 없이 태어난 손녀에 대한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었다. 남순이 나를 볼 때의 눈빛은 대체로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한, 그리고 억울함이었다. 바통 터치라도 한 듯 (물론 그 사이 12일이라는 다소 공백이 있긴 하지만) 사라지고 생겨난 선욱과 나의 ‘선수 교체’가 남순의 입장에서는 밑지는 장사(?) 같은 거였을까. 하긴 수 십 년을 함께 살아온 금지옥엽 외동아들을 갓 태어난 낯선 손녀가 무슨 수로 대체할 수 있을까. 충분히 이해하고 쿨하게 인정하지만 그 기분을 매일 느끼는 것은 어린이의 정서 발달에 참 별로였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문제는 어린이로서 그런 상황이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손녀손자들이 존재 자체만으로도 ‘장한 내 새끼'가 되는 것처럼 안타까움과 슬픔의 다리 대신 기쁨과 행복의 종착이고 싶었다. 


눈치를 배우며 동시에 재롱의 기술을 습득했다.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국노래자랑이나 가요무대에 나오는 노래를 외우고 다시 그 노래가 나오면 기깔나게 한 소절 뽑아내면 될 일이었다. 하루는 남순이 자주 불렀던 ‘눈물 젖은 두만강'이 전국노래자랑에 나오길래 따라 불렀더니 남순이 무척 즐거워했다. 나를 바라보는 남순의 눈에 웬일인지 선욱이 보이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고 이때다 싶어 물었다. 할매, 손녀 잘 생겼쟤? 그랬더니 남순이 ‘하모'하고 기꺼이 인정했다. 거기서 끝내야 했지만 기분이 좋아진 나는 욕심을 내고 말았다.


“아빠보다?”


병철, 남순 그리고 혜순의 앞에서 ‘아빠'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직접 내뱉은 최초의 날이었다. 그만큼 기분이 좋았다는 뜻이다.   


“그건 아이지(그건 아니지).”


남순은 고민할 것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 입에서 나온 ‘아빠'라는 음절을 들은 찰나에 남순의 얼굴에는 놀람, 슬픔, 그리고 그리움이 순서대로 스쳤고 그건 결코 손녀를 놀려주려는 농담이나 장난이 아니었다. 순도 100 퍼센트의 진심이었다. 


“지금 한 다리 건넜다고 그라는 기쟤(그러는 거지)?”


머쓱해진 나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한 다리 건넜다'는 표현을 생각해 내고는 섭섭하다는 투로 받아쳤고 나의 기특한 기지 덕분에 병철과 혜순과 남순까지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따라 웃었지만 속으로 후회를 했다. 나는 뭐 하러 물었을까. 그냥 1절만 하고 만족했다면 좋았을 것을. 아무리 재롱을 떨어도 아무리 노력해도 아들의 딸은 결코 아들만큼 사랑받을 수 없었다. 남순이 좋아하는 트로트는 종종 불렀으나 다시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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