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9. 잔고 0원에서 살아남다

죽음의 계곡을 세 번 넘은 바퀴같은 생명력

by 글쓰는클레어

2012년 10월.


7년 전을 생각하면 얼마나 내가 나이브하고 아무것도 몰랐는지...

초기 자본금이 총 얼마인줄만 알았지 얼마나 소모된 상태인 줄도 모르고 (많지는 않지만) 피같은 돈을 넣었다.

심지어 초반 한 달 정도는 재무 상태가 투명하게 공유되지 않아 돈이 충분히 남아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정작 초기 공동창업자들이 회사를 떠날때쯤 되서야 회사 재무상황을 제대로 알게 되었고 상황은.... 피꺼솟이었다. 창업자들은 월급도 안 받았고(정부지원금으로 식비만 사용), 서비스는 런칭한지 두 달 밖에 안되었는데 약 3개월 정도의 런웨이가 예상되는 자금만 남아있었다. 뭔가를 준비하기에도 말도 안되게 짧은 시간이었다.


대체 그 돈이 몇 달만에 다 어디갔단 말인가!!!!!


모두 내가 오기 전 벌어진 일이긴 했지만 흔한 실수들로 이뤄진 것이었다.

- 아주 비싼 외주업체를 써서 웹사이트를 개발했고 (결국 나중에 개발자 고용해서 다 뜯어고침)

- 당장 크게 필요하지 않은 고학력 디자이너 두 분 고용해 월급 나가고

- 가구 사는 데 돈 들이고 비싼 회식까지...


나는 그렇다치는데, 최소한 월급 150만원을 줄 수 있다는 조건으로 대표직을 받은 Kevin은 뚜껑을 열어보자 그건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오자마자 당장 투자 유치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전 대표의 지인분 중 엔젤 투자를 하시는 분이 있었고 그 분께서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믿어주시고 엔젤 투자를 결정해주셨다. 급한 만큼 조건을 따질 상황도 아니었고, 감사하게 받아 급한 불을 끄기로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약 6개월의 런웨이가 더 생길 뿐이었다.) 사실 이렇게 3개월 내에 (사실상 거의 1-2개월이었음) 투자를 받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고 정말 정말 적어도 6개월은 남았을 때 다음 투자를 준비해야 하는데, 그 때 살아남은 건 정말 기적이었다.



정말 얼마나 돈이 없던 시절이었나-

상황이 좀 나은 달에는 50만원의 월급을 받았고, 대체로는 월급을 받지 않고 일했다.

다같이 계란을 사와서 계란후라이로 때운 식사가 몇 번인지 모른다 ㅎㅎ


삼각대.jpg 삼각대가 뭐죠 먹는건가요 ft. 빌린 카메라


나는 가끔 들어오는 디자인 알바를 병행해 생활비를 마련하고 대표인 케빈은 일을 마치면 매일 저녁마다 과외를 해서 회사에 넣을 비용을 마련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이 월 400만원 이상씩이었는데 모두 회사에 재투자했다. (덕분에 회사가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실 그 이후에도 정말 여러 번의 고비를 넘겼다. 위제너레이션을 운영하면서 잔고가 0원이 찍히는 일이 총 3번이나 있었는데, 매번 대출도 알아보고 정부지원금도 지원하고 투자도 알아보고 번역일도 해보고 팔찌도 팔아보고... 정말 여러가지 방식으로 극복했다.


하지만 우리의 힘만은 절대 아니었다. 도와준 분들이 정말 너무 많았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맙고 눈물나는 사연 하나.

위젠 초기, 지인의 소개로 몇 명의 인턴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들어와 일을 도와주던 때였다.

자꾸만 줄어드는 잔고로 나와 케빈은 매일같이 돈 얘기를 해야했고, 최대한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어쨌든 좁은 사무실 안에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런 분위기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느껴졌던 모양이다.


어느날은 인턴으로 일하던 세현이와 남주가 찾아와서는 말을 꺼냈다.

"저희 이번 달에 10만원만 받아도 괜찮아요. 같이 극복해봐요"


아, 정말 너희같은 사람들이 있을까. 그때의 내가 너무 부족했던 거였고 그렇게 했어도 안되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는 너희같은 사람들은 없었을거야. 아직도 고맙고 그런 사람들이 곁에 있었고 있다는 것에 대해 너무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런 사람 없고 그렇게 해도 안되니까 창업자분들은 이런 분들을 찾지 마세요....)


wegen2.jpg 진짜 고마워 내 흑역사 사진도 풀 수 있을만큼.


그 외에도 내부적으로는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돈이 아닌 재능으로 도와주신 분들이 정말 많았다.


재능기부또한 절대 강요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CSR이나 사회적기업이 한참 관심을 받던 때였고, 또 나름대로 새로운 모델이라 그런지 정말 각계각층에서 어떻게 아시고 먼저 연락해 도움을 주셨다. 아직 많은 연예인을 섭외하기도 전, 초기 단계에 있던 일이니 그 분들도 정말 순수한 뜻에서 함께 하신 거였다.


무료로 광고를 함께 제작해주신 커뮤니케이션 우디, 광고를 개제해주신 중앙일보, 이벤트를 함께 준비해주시고 운영해주신 써클커넥션 이정우 대표님, 수많은 촬영을 무료로 도와주신 정우람 감독님, 김상준 작가님, 영상 제작을 도와주신 정현수님, 물심양면으로 다양한 도움을 주신 박민정 기자님, 꾸준히 우리 기부에 함께 해주시고 개인적으로도 응원해주신 기부자분들.... 지금 다 쓰지 못하는 게 죄송스러울 정도로 정말 함께 해 주신 분들이 많았다.


솔직히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던 비즈니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많은 사랑과 응원을 받았던 회사였음에는 틀림없고 아직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사실 돈 없던 시절을 생각하면 눈물만 나올 줄 알았는데 적다보니 진짜 세상에 얼마나 좋은 분들이 많은지 감사함에 오히려 행복해진다. 안되는데.. 이거 위기 시리즈였는데...


여하간 어째 저째 죽음의 계곡을 몇번이고 넘고 있던 위제너레이션!

위젠은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갔으며 그 배를 탄 나에게 닥친 두 번째 위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ps.

미국 유학을 가게 되어서 그 전에 시리즈를 마무리 지으려면 사실 훨씬 더 큰 뭉태기로 얘기를 써야 하는데, 또 정작 쓰려니 그 순간 하나하나가 참 소중해서 그렇게 안된다. 그냥 가기전에 최대한 열심히 써야지. 다 너무 소중한 기억이 될테니까.


[스타트업 다이어리 지난 이야기]

EP 01. 여정의 시작 https://brunch.co.kr/@seoyoungcla/18

EP 02. 아무것도 몰라요 https://brunch.co.kr/@seoyoungcla/23

EP 03. 런칭, 그리고 문제에 직면하다 https://brunch.co.kr/@seoyoungcla/26

EP 04. 내가 기획한 첫 번째 캠페인 https://brunch.co.kr/@seoyoungcla/46

EP 05. 서포터즈를 운영하다 https://brunch.co.kr/@seoyoungcla/91

EP 06. 연예인 섭외의 물꼬를 트다 https://brunch.co.kr/@seoyoungcla/93

EP 07. 팀의 와해, 그리고 선택 https://brunch.co.kr/@seoyoungcla/94

EP 08. 야매 디자이너의 비애 https://brunch.co.kr/@seoyoungcla/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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