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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클레어 Feb 09. 2017

#9 늙음을 생각한다

Blog Challenge - Day 9

나는 어린 시절을 외가에서 보냈다.


당시 우리 집은 단칸방에 살며 맞벌이로 가구점을 하던 사정으로, 둘째인 나까지 돌볼 여력이 없던 터라 태어난지 3일 만에 외할머니 품으로 옮겨져 자라게 되었다.


대여섯살이 될 때 쯤엔 유치원을 보내 보려 했지만 하루만에 때를 쓰고 나오는 통에 결국 유치원은 못 보냈다고 한다. 덕분에 나는 한글을 배우기 전에 민화투를 배우고, 외할아버지의 서툰 동요를 배워가며 사랑이 가득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이후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다시 엄마아빠의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나에겐 엄마같은 분으로, 정정하실 때 그 누구보다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풍기시던 분이었다.


노래와 농담을 사랑하고, 동네 친구들을 이끌던 분.

누구에게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고 맛있는 음식을 내어주시던 분.


그랬던 외할머니가 갑작스럽게 쓰러지셔서 뇌졸증 판정을 받은 뒤 죽음의 고비를 가까스로 넘기셨다.

혀가 온전치 않아 원하는 노래도 마음껏 부르실 수 없고, 허리가 온전치 않아 스스로 화장실도 갈 수 없는, 남은 삶을 온종일 병원에서 보내셔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프단 소리 한 번 없으시던 외할머니가

안 되는 노래를 불러가며 눈물 흘리시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한때는 겁 없이 잘나가도 봤다
무서울 게 없던 나였다
실패를 해보고 욕심도 버렸다
이제 마음도 다 비워버렸다
- 송대관 '딱 좋아' 중


이 노래가 이렇게 슬프게 들릴 줄은


가끔 자식과 손자들이 놀러가지만 그 뿐,

왜 사는지 허무하다 하시는 그 말씀에 어떤 대답을 드릴 수 있을까.


정정하실 동안 항상 즐겁고 긍정적인 삶을 사셨지만, 그마저도 건강을 잃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늙어가야 할까. 어떻게 해야 삶의 의미만큼은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솔직한 마음으로 늙음과 죽음을 바라본다.


늙음과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나도, 엄마도,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도

결국에는 나이가 들고 건강을 잃어 뜻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늙음은 당연해 보이는 모든 것을 앗아간다.


그러니까 내 사랑하는 사람들은

설령 몸이 약해지고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까지 오더라도, 의지만으로도 삶이 충분히 의미있을 수 있고 새로울 수 있도록 미리 영혼을 단련해두었으면 좋겠다.


할 수 있을 때 세상의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충분히 느끼고 감사해두고, 결국 이 아름다운 모든 것들도 영원히 가질 수 없음을 기억하면서


그래서 그 때가 오면 진심으로 하늘에게

참 감사했노라고, 아직 가진 것들에도 참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한 생의 끝까지 의미를 잃지 않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이 포스트는 열두달 Life Detox Challenge 중 블로그 챌린지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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