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와 내 작은 손, 둘의 이야기
그간 불안한 마음의 나는 이 세상에서 내가 사라져 버릴까 두려웠는지 몸무게를 20킬로나 늘렸고, 이에 세상의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 집은 온갖 물건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이런 날들 속에서 내가 이 세상에 나타난 날에 도달했다. 이전 같으면 친구들에게 기프티콘이나 선물을 받고 고맙다고 답하며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을 날인데, 올해는 다르다.
내가 살아온 날들 중 꽤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기에. 그래도 태어났다고, 태어났기에 딸기 케이크를 먹으며 그 달콤 상큼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던, 그렇게 말해주어야 했던 날이었다.
집 앞 백화점 지하로 가서 딸기 케이크가 놓인 진열대를 잠잠히 바라보았다. 흰 크림으로 덮어 공들여 손질한 과일을 올린 케이크 여럿이 조명을 받아 반짝거린다.
지금의 내 상황이나 재정 상태와는 맞지 않지만, 나는 기어코 딸기 케이크 하나를 골랐다.
그중에도 가장 비싼 케이크로.
케이크를 들고 돌아오는 길. 공교롭게도 푸석한 머리를 하고 슬리퍼에 회색 면 반바지를 입은 나는 한껏 잘 차려입고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가는 이들과 나를 비교하며, 다 먹지도 못할 이 망할 케이크는 왜 샀지 하고 백화점 쓰레기통에 딸기 케이크를 처박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아냐, 난 아직 미치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케이크 박스 손잡이를 손으로 단단히 쥐며 집에 돌아왔다.
사실 이 계획 전반은 AI가 짜 주었다.
딸기 케이크 옆에 생명의 원천인 물을 한잔 놓아둬야 한다고 하기에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물 한잔을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여기까지 왔고. 그래서 이 케이크를 먹게 되었다고” 속으로 내게 말해주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며 눈물이 난다면 울어도 좋다고 했다.
쓰라리다 못해 나를 재로 만들어버린 직전 연애 후에 나는 확고한 T가 되었다. 눈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고,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부터 오늘의 생일이 떠오르지 않는 생일을 맞이한다면, 그런 날이 내게 가장 좋은 선물일 거야”
라고 생각하며 나는 세상과 나의 연결을 잠시 끊고 이른 잠으로 향했다.
사람이 왜 잠을 통해 기운을 얻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 나아진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
다시, 새로운 날이다.
5월, 덥지도 춥지도 않으며 종종 시원하고 약간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기이다.
나는 지금의 날씨가 가을 중간 어느 때와 더불어 일 년 중 가장 너그러운 종류라고 생각한다. 나 자체도 버거운 내게 손 선풍기나 우산을 쥐여주지 않는 그런 계절 말이다.
내가 다니는 정신과의 선생님은 나를 채울 수 있는 일을 할 때 내가 회복되기 시작할 거라고 말했다. 처음 들었을 때 그 말의 의미를 나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어 머리가 복잡해졌다.
“일반적임”과 “정상적임”이 어떤 형체를 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를 흉내 내서라도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내게 있어, 나를 채울 수 있는 그 활동을 찾는 것은 어느 정도 간절했다.
그리고 이렇게 나의 말을 쏟아내고 있는 조용하고 메마른 이 시간이 바로 그 순간의 하나임을 안다.
이렇게 나 그대로 온전하기를.
어느 날엔가 내 흩어진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묶고 맨발로 운동화나 구두를 신고선 무던하게 문을 열고 밖으로 향할 수 있기를.
[브런치북 '아니요,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