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병원 방문, 동네 2차 병원
종이를 들고서 방문한 첫 병원은 차로 10분 걸리는 종합병원이었다. 전남의 작은 도시에서 살고 있던 터라, 어느 병원이든 크게 다를 게 없겠다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졸졸 따라갔다.
진료 시작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한 뒤, 전형적인 절차에 맞추어 움직였다. 접수를 하고, 약간의 대기를 한 뒤, 정형외과 전문의의 건너편에 앉았다. 종이를 건네받은 그는 우선 엑스레이를 보자며 나를 옆 파트 영상의학과로 안내했다.
100걸음도 채 안 걸리는 거리에 위치한 촬영실에서 찍는 흉부 X선 사진은 여타 특별할 게 없었다. 병원 대기 중 풀었던 수학 문제를 떠올리며 크게 숨을 들이쉬고, 2-3초 참았다, 다시 내뱉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다시 진료실로 들어와 의사 선생님의 맞은편에 앉은 뒤,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모니터 속 마우스 커서에 집중하다 마주한 나의 사진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어머니의 ‘헉’하는 소리와 함께 진료실은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상냥하지도 냉랭하지도 않은 목소리로 의사는 입을 뗐다.
대학 병원 가셔야겠는데요?
새하얘지는 머릿속에서 정신을 붙들고, 난생처음 마주하는 척추 엑스레이 위에 cob angle을 측정하기 위한 막대 선이 그어지는 것을 빤히 쳐다보았다. 몇 번의 딸깍 소리 후 측정된 숫자, 38˚.
이 숫자의 심각도를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숫자를 이해하지 못했더래도, 당장 눈앞에 놓인 커다란 커브를 가진 내 척추는 충분히 충격을 주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 거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의사는 말을 이었다. 적어도 보조기 치료, 심하면 수술까지 해야 될 거라고 말이다.
그동안 아프지는 않았냐는 말에, 통증은커녕 생리통 하나 없었다고 답했다. 혹여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쉬기 힘든 적은 있느냐는 말에도 그다지 떠오르는 통증의 기억은 없었다.
신기한 투를 내비치던 그는 신촌의 한 대학병원을 권하며, 병원 예약을 잡은 후 다시 오면 상급 병원으로 가기 위한 진료 의뢰서와 필요한 자료들을 준비해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이걸 왜 이제야 알게 된 걸까.
언제 알 수 있었을까.
일찍 알았더라면 무언가 바뀌었을까.
착잡한 마음을 안고서 진료실을 나왔다.
진료실 안에 있던 5분이 갑자기 내 세상을 바꾸었다. 엑스레이 사진이 나온 후 줄곧 말이 없던 어머니와 함께 무슨 정신으로 수납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묵묵히 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