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하게
우리 집 한쪽은 통창이다. 하지만 열 수 있는 창은 아주 작은 창 2개뿐이다. 오늘 오랜만에 캣타워로 닫아 놓기만 했던 왼쪽 창문을 열었다. 우리 집 고양이가 귀신같이 알고 열린 창문을 향해 오려고 하자, 급하게 방충망을 내리려는데, 마침 훅하고 불어온 가을바람 냄새가 좋았다. 차가운 공기를 품고 있지만, 겨울바람과는 그 결이 다르다. 어디서 단풍 진 나무를 지나쳐 왔는지, 마른 나뭇잎 냄새와 깨끗하면서도 차가운 바람이 집안으로 불어 들어왔다. 한껏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오기를 반복했는지, 오랜만에 욕실의 묶은 때를 닦아내고, 힝구의 화장실도 깨끗하게 씻어, 보송보송 갓 뜯은 모래로 채워 넣는 사이, 집안의 공기도 달라져 있었다. 오랜만에 운동 같은 청소를 끝내고 흘린 땀을 씻어낸 뒤, 나도 평소와는 다른 상쾌함 속에서 늦은 아침을 먹기로 한다.
기분 좋은 허기가 느껴졌다. 노동을 한 후라 그런지, 더 당당하게 그 끼니를 먹어도 될 것 같은 뿌듯함이었다. 매일 글쓰기를 하려고 하다 보니, 글쓰기가 일상이 되어가고 있지만, 어떤 날은 유난히 글이 쓰고 싶어지는 날이 있다. 알 수 없는 내 마음을 알기 위해, 내 마음을 글로 풀어내기도 하지만,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글을 쓰고 싶어질 때도 있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 텅 빈 것 같은 그런 날, 내 마음을 글로 한 자 한 자 들여다보면, 내가 채워진다.
몸도 마음도 갑자기 허기가 질 때면, 따뜻한 한 끼가 필요한데, 그 한 끼가 뜨끈한 밥 한 끼일 수도, 갓 써 내려간 글 한 끼일 때도 있다. 우리를 채워주는 무언가가 필요한 건 확실하다.
요즘에는 마음 한 끼가 필요한 것 같다. 아무리 배를 채워도, 든든하지 않다. 사람들 속에 있을수록, 이 허기는 더 커지는 듯하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순간은 즐겁다. 그 시간 내내, 내 입에서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만남이 끝나고, 문득 돌아본 나는 무언가가 자꾸 허하다.
한동안은 나를 위해 꽤 자주 요리하려고 노력했다. 나를 위한 요리를 하다 보면, 몸은 건강해지고 마음은 뿌듯함에 든든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그다지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항상 정돈된 듯 깔끔하게 유지된 공간이 좋았다. 요리하기 위해 발생하는 쓰레기도, 밥을 먹으면서도 눈에 밟히는 저 설거짓거리들도 자꾸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오히려 식사 후, 금세 정돈될 수 있는 정도의 간편한 식사가 나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준다는 것을 깨닫고, 요리를 그만두었다. 오히려, 내 공간을 깨끗하게 만드는 청소나 빨래가 나에게는 맞았다. 공간이 깨끗해질수록 내 복잡한 마음도 정리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글쓰기는 내 온갖 복잡한 마음과 마주하며 비워낼 수 있고, 페이지를 채워나가면서 나도 단단하게 채워나갈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글 한 끼, 한 끼가 간절한데, 이상하게 요 며칠은 아무리 글을 써도 자꾸 기분이 가라앉고, 허기는 더 심해졌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아 보았다. 어제는 오랜만에 오후 1시까지 잠을 잤고, 그동안 하루 루틴으로 정했던 것들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게으름을 피웠다. 너무 나를 닦달한 건 아닌지, 그것 때문에 지친 건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오늘 청소를 다 끝낸 바닥에 고양이 모래가 새어 나왔고, 모래를 쓸어 담다가 한탄 섞인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오랜만에 흘린 눈물의 이유가 너무 어이없으면서도 그 김에 알아서 그칠 때까지 울어 버렸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나온 한탄 속에 요즘 답답했던 내 마음 상태의 답이 나왔다. 너무 사적이라 이곳에 그 이유를 적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 마음속 이야기를 듣고 나니, 글쓰기를 해야만 했다. 이제 내 마음을 이곳에 써 내려가며, 든든하게 글 한 끼를 해야만 이 마음이 다시 채워질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