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구와 순심이
지난 일요일, 아빠 생신을 맞아 본가에 다녀왔다. 지난 설날 때는 집에 혼자 있을 힝구가 걱정돼, 하룻밤 자고 가라던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는데, 그 사이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 엄마 밥과 옛집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는지, 이번에는 못 이기는 척 오랜만에 본가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오빠는 집 인근 청계천으로 걷기 운동을 매일 같이 나가는데, 그곳에서 만난 고양이 두 마리의 밥을 챙겨주고 있다고 자주 말했었다. 안 그래도 세상물정 모르고 마냥 사람을 좋아하는 그 고양이가 신경 쓰였는데, 지난겨울 잦은 눈 소식에 걱정이 더해져 더 마음을 줬다는 것이다. 오빠는 매일 늦은 저녁 운동을 나가서도 먼저 그 아이들이 지난밤을 잘 버텨냈는지를 확인하는 게 일과가 돼버렸다. 종종 오빠가 보내오는 두 고양이의 영상이나 사진을 봐와서인지 나도 궁금해졌고 만나고 싶었다.
본가를 가는 날이면, 다시 문정으로 돌아오기 전, 청계천으로 그 아이들을 만나러 간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만날 수가 없었다. 늦은 저녁이 돼야 만날 수 있다는 오빠 말을 들었지만, 그 시간까지 있을 수 없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 본 것이다.
그러다 지난 일요일, 엄마는 오빠가 예뻐하는 두 고양이, 앵구와 순심이를 매번 못 만났는데, 오늘 자고 가면 그 애들을 만나볼 수 있지 않겠냐며, 이번에도 나를 꼬시기 시작했다. 그즈음 여러 가지 이유로 지쳐있던 마음이 엄마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였다. 뒹굴뒹굴 이보다도 더 편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9시가 되자 청계천으로 향했는데, 앵구와 순심이라 불리는 그 두 고양이가 있어야 할 장소에 도착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오빠가 고양이의 사료와 물을 챙길 동안 계속 주변을 둘러봤지만, 고양이가 보이지 않아 '오늘도 못 보는구나' 실망감이 찾아왔다.
다행히 근처 트럭 짐칸에 실린 의자 위에서 사이좋게 자고 있던 고양이들을 찾을 수 있었다. '앵구다' 이보다 더 반가울 수 있을까. 오빠의 부름에 하얀 고양이 순심이가 뽀로로 뛰어 내려와 오빠에게 향했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다는 말을 듣고 조금 떨어진 곁에서 쭈뼛거리며 서있다가 나도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는데, 오빠와 함께 온 사람이라 그랬는지, 내 몸에서 힝구 냄새가 나서인지, 나에게도 자신을 허락했다. 그런데 나에게 몸을 맡기면서도 작은 소리에 깜짝 놀라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오빠에게 언제나 힝구보다 더 애교가 많다는 말을 들었던 앵구는 여전히 졸린지 뒤늦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찌 된 일인지 이 녀석의 표정이 좋지 않다. 오빠에게도 선뜻 다가와 안기지 않아 오빠도 당황하던 차에 아차 싶었는지, 뒤늦게 한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줬다. 일단 앵구에게 10분 정도는 먼저 관심을 보이고 쓰다듬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지금 살짝 기분이 언짢아 보인다는 것이다. 주의 사항을 미리 숙지하지 못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앵구와는 살짝 데면데면한 만남으로 끝이 났다.
개구쟁이 그 자체인 수컷 고양이 힝구의 힘찬 발걸음과 움직임만 봐왔던 나는 오늘 만난 두 고양이의 사뿐사뿐 걸음걸이와 움직임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무 힝구만 바라보고 살았던 걸까. 암컷 고양이의 움직임은 정말 달랐다. 구름 위를 걷는 듯, 저렇게 가볍고 조심스러운 움직임은 낯설면서도 매력적이었고, 살짝 안아본 순심이의 체형은 분명 힝구의 1.5배는 될 중량을 예상하게 했지만, 마치 가벼운 동그란 공을 안은 듯했다. 고양이에 대한 것들은 힝구가 기준이 되다 보니 그날의 두 고양이와의 만남은 마치 아들만 키우던 엄마가 딸을 키우는 집에 갔을 때 맞닥뜨릴 수 있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길 위에서 사는 고양이의 고단함을 잠깐의 만남으로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너무 고되지 않기를 바라며, 일방적이었던 그날의 방문이 혹 상처가 되지는 않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