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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Mar 05. 2024

청계천에 사는 길고양이

앵구와 순심이


지난 일요일, 아빠 생신을 맞아 본가에 다녀왔다. 지난 설날 때는 집에 혼자 있을 힝구가 걱정돼, 하룻밤 자고 가라던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는데, 그 사이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 엄마 밥과 옛집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는지, 이번에는 못 이기는 척 오랜만에 본가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오빠는 집 인근 청계천으로 걷기 운동을 매일 같이 나가는데, 그곳에서 만난 고양이 두 마리의 밥을 챙겨주고 있다고 자주 말했었다. 안 그래도 세상물정 모르고 마냥 사람을 좋아하는 그 고양이가 신경 쓰였는데, 지난겨울 잦은 눈 소식에 걱정이 더해져 더 마음을 줬다는 것이다. 오빠는 매일 늦은 저녁 운동을 나가서도 먼저 그 아이들이 지난밤을 잘 버텨냈는지를 확인하는 게 일과가 돼버렸다. 종종 오빠가 보내오는 두 고양이의 영상이나 사진을 봐와서인지 나도 궁금해졌고 만나고 싶었다.

 본가를 가는 날이면, 다시 문정으로 돌아오기 전, 청계천으로 그 아이들을 만나러 간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만날 수가 없었다. 늦은 저녁이 돼야 만날 수 있다는 오빠 말을 들었지만, 그 시간까지 있을 수 없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 본 것이다.


 그러다 지난 일요일, 엄마는 오빠가 예뻐하는 두 고양이, 앵구와 순심이를 매번 못 만났는데, 오늘 자고 가면 그 애들을 만나볼 수 있지 않겠냐며, 이번에도 나를 꼬시기 시작했다. 그즈음 여러 가지 이유로 지쳐있던 마음이 엄마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였다. 뒹굴뒹굴 이보다도 더 편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9시가 되자 청계천으로 향했는데, 앵구와 순심이라 불리는 그 두 고양이가 있어야 할 장소에 도착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오빠가 고양이의 사료와 물을 챙길 동안 계속 주변을 둘러봤지만, 고양이가 보이지 않아 '오늘도 못 보는구나' 실망감이 찾아왔다.


 다행히 근처 트럭 짐칸에 실린 의자 위에서 사이좋게 자고 있던 고양이들을 찾을 수 있었다. '앵구다' 이보다 더 반가울 수 있을까. 오빠의 부름에 하얀 고양이 순심이가 뽀로로 뛰어 내려와 오빠에게 향했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다는 말을 듣고 조금 떨어진 곁에서 쭈뼛거리며 서있다가 나도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는데, 오빠와 함께 온 사람이라 그랬는지, 내 몸에서 힝구 냄새가 나서인지, 나에게도 자신을 허락했다. 그런데 나에게 몸을 맡기면서도 작은 소리에 깜짝 놀라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오빠에게 언제나 힝구보다 더 애교가 많다는 말을 들었던 앵구는 여전히 졸린지 뒤늦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찌 된 일인지 이 녀석의 표정이 좋지 않다. 오빠에게도 선뜻 다가와 안기지 않아 오빠도 당황하던 차에 아차 싶었는지, 뒤늦게 한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줬다. 일단 앵구에게 10분 정도는 먼저 관심을 보이고 쓰다듬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지금 살짝 기분이 언짢아 보인다는 것이다. 주의 사항을 미리 숙지하지 못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앵구와는 살짝 데면데면한 만남으로 끝이 났다.



 개구쟁이 그 자체인 수컷 고양이 힝구의 힘찬 발걸음과 움직임만 봐왔던 나는 오늘 만난 두 고양이의 사뿐사뿐 걸음걸이와 움직임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무 힝구만 바라보고 살았던 걸까. 암컷 고양이의 움직임은 정말 달랐다. 구름 위를 걷는 듯, 저렇게 가볍고 조심스러운 움직임은 낯설면서도 매력적이었고, 살짝 안아본 순심이의 체형은 분명 힝구의 1.5배는 될 중량을 예상하게 했지만, 마치 가벼운 동그란 공을 안은 듯했다. 고양이에 대한 것들은 힝구가 기준이 되다 보니 그날의 두 고양이와의 만남은 마치 아들만 키우던 엄마가 딸을 키우는 집에 갔을 때 맞닥뜨릴 수 있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길 위에서 사는 고양이의 고단함을 잠깐의 만남으로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너무 고되지 않기를 바라며, 일방적이었던 그날의 방문이 혹 상처가 되지는 않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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