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잉레터 <회사를 떠난 지금,> 커리어 인터뷰 회고
2024년 1월부터 4월까지 리드앤두의 두잉레터로 소개된 커리어 인터뷰 <회사를 떠난 지금,>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레터를 준비하고 연재하는 동안 배우고 느낀 점을 회고하는 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한 2022년 겨울을 보내며 무계획 퇴사를 결심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이직을 결심하고 설레던 전과는 달랐다. 하고 싶은 일도, 가고 싶은 회사도 없이 깜깜하기만 했다.
하루가 온전히 내 것이 되고 가장 열심히 했던 일은 식후땡 산책. 나무에 매달려 최선을 다해 피어나는 꽃들을 구경하면 에너지가 전해지는 듯했다. 목련, 벚꽃, 꽃복숭아, 사과나무, 때죽나무, 이팝나무… 시기마다 이어지는 꽃행렬에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다. 강아지마냥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사진에 담았다.
사진첩이 초록으로 촘촘해지는 동안 급속 충전이라도 된 듯 번뜩! 만나고 싶은 이들이 떠올랐다. 나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쉬기도 하고,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채 일하기도 하는 사람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 궁금해졌다. 이왕 이렇게 이야기 나눌 거라면, 인터뷰를 해서 기록으로 남겨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메모장에 다다다 적어내려갔다. 제목은 ‘프리워커 인터뷰 프로젝트’ 인터뷰이 리스트의 첫째줄에 적힌 이름을 카톡에서 검색해 메시지를 보냈다. 한산한 평일 낮의 카페에서 첫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이 리스트에 있는 또 다른 지인과는 데이트가 예정되어 있었다. 달콤한 평일 낮맥을 즐기고, 남산공원을 산책하며 인터뷰를 제안하고자 배경 설명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이 분은 인터뷰 뉴스레터를 기획 중이었고, 인터뷰를 진행할 인터뷰어를 찾고 있던 중이라 했다. 그렇게 개인 프로젝트라 생각했던 인터뷰는 리드앤두의 뉴스레터 <회사를 떠난 지금,>으로 이어졌다.
자기만족을 위해 시도하는 인터뷰를 누군가에게 소개한다고 생각하니 기대와 동시에 책임감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경험해 본 적 없는 연재라는 부담이 컸지만, 쉬는 기간이니 자발적인 마감을 만들어 오히려 좋은 자극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너무나 귀한 기회였다.
2023년 가을쯤 시작되겠거니 예상했던 이 프로젝트는 사정상 해가 바뀌어 발행되었고, 그렇게 봄부터 겨울까지 예상보다 긴 시간 함께했다. 그 사이 나는 프리랜서로 몇 개의 프로젝트를 하다가 에디터로 일하게 되었다. 인터뷰부터 기사 발행까지 취미로 쓰던 글이 일이 된 만큼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회사를 떠난 지금,> 프로젝트를 제대로 회고하고 싶은 이유가 여기 있다. 인터뷰 콘텐츠를 소비하는 독자로서 독학하듯 시작했다가, 에디터 선배에게 배운 것들을 하나둘 접목해 갔다. 3개월 동안 연재된 <회사를 떠난 지금,>에 배우고 느낀 변화가 오롯이 녹아있다.
뉴스레터에 인터뷰를 연재하며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독자가 생겼다는 점이었다. 개인 프로젝트일 때는 그저 내 궁금증을 해소하자는 목적이었기 때문에,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서 내가 궁금한 걸 질문한다는 계획이었는데 명확한 타깃이 생겼다. ‘나답게 일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그를 위해 퇴사까지 고민하는 5~7년 차’ 그들이 뭘 궁금해할지 고민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지 더 명쾌하게 만들기 위해 예상 구독자를 구체적으로 그려보았다.
두잉레터 <회사를 떠난 지금,>의 예상 독자
회사를 떠난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
커리어에서 나아갈 방향성을 잃은 사람
내가 해온 일들을 회고가 필요한 사람
앞으로 어떻게 일할지 모색하고 싶은 사람
커리어 전환점이 필요한 사람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상세페이지를 작성할 때, 메일을 쓸 때까지도 보는 사람을 생각해야한다고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글을 쓸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다. 어쩌면 그래서 독립출판을 했을지도. 에디터로 일하며 독자들이 무엇을 알고 싶을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타인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늘 내 안으로 수렴하던 안테나를 다시 밖으로 돌려세운 느낌.
발행하기 전 미리 작업했던 초반부의 인터뷰 글은 인터뷰이의 커리어 일대기에 가까웠다. 서너 명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정리를 반복하며 문제점을 알게 되었다. ‘추구하는 가치관과 고민과 시도가 비슷비슷하네?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조금씩 겹치네?’ 모두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다 전하는 게 아니라, 인터뷰 글에도 콘셉트가 필요했다. 각각의 인터뷰이의 캐릭터를 대표하는 키워드를 뽑고, 각 키워드를 잘 살릴 수 있는 히스토리와 고민과 도전을 선별하고, 과감하게 덜어내고, 압축했다.
메시지는 인터뷰 후 정리하며 발견하는 것이 아닌, 사전에 인터뷰어의 머릿속에 정리되어야 한다는 것. 배운 점 1과 연결된다. 독자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 독자가 필요로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 가장 먼저 필요한 작업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인터뷰의 아이디어는 ‘사람’에서 비롯되었다. 회사를 그만둔 사람. 그들이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지 알지 못하는 채로 일단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서너 명을 만나 인터뷰하며 깨달았다. '나의 궁금증은 해결할 수 있겠지만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때부터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먼저 명확히 설정하고, 이런 메시지를 전하기에 적합한 이들을 열심히 검색했다. 본업과 시너지를 내는 사이드 프로젝트, 무계획으로 퇴사 후 얻은 깨달음, 일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등등. 이런 배경으로 처음엔 인터뷰이가 지인으로 출발했고 중반부터는 섭외한 분들과 진행했다.
메시지를 벼르기 전에는 공통 질문지를 만들어 질문을 던지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의 질문들을 아래에서 참조하면 왜 커리어 일대기가 나왔는지, 왜 인터뷰이마다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지 아마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잘못된 질문의 예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했던 일은? 그 일을 선택한 배경은?
퇴사를 고민한 이유는?
퇴사의 대안이나 시도는?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퇴사자의 기쁨과 슬픔
터널구간의 시도와 고민은?
불안과 걱정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퇴사 후 느끼는 변화는?
앞으로의 계획은?
질문지는 설정한 메시지를 잘 드러낼 수 있도록 방향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섭외하기 전 미리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메시지를 전하기에 좋은 재료로 이야깃거리를 던져야 한다. 추상적인 질문을 던지면 내가 생각한 메시지에 맞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 명확한 답변을 받고 싶다면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적합한 사람이 누구인지 (섭외)
어떤 질문을 던질지 (질문지)
글 정리하기
초기에 인터뷰를 진행한 후, 인터뷰집도 꺼내어 다시 읽고 뉴스레터나 콘텐츠 플랫폼에서 인터뷰를 보면서 좋아보이는 점들을 흉내 내고, 고치고 또 고쳐서 세 편 정도를 완성해 두었다. '이렇게 글을 정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맞나?' 하면서도 시간만 나면 파일을 열어 다듬고 또 다듬었다. 그러다 뉴스레터 발행이 지연되어 잠시 작업을 멈추고 시간이 흘렀다.
에디터로 일하며 인터뷰에 대해 제대로 배우며 시간이 지나 오랜만에 정리했던 파일을 열어본 날. '이렇게 허접할 수가‘. 시간이 많이 지나서 정보 업데이트가 필요하기도 했고, 인터뷰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기만족일지 그만큼 콘텐츠가 더 나아졌을지는 객관적으로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맨땅에 헤딩하듯 독학하고, 제대로 배운 걸 바탕으로 다시 접목해보면서 글을 다듬고 정리하는 시간은 좀 줄어들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성장한 게 아닐까 위로했다.
“한 사람이 한 시기에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오래 고친다고 해도 나아지지 않아요. 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래서 때가 되면 원고를 보내요. 내 능력의 70, 80%를 써야 한다, 그런 철학을 갖고 있어요.”
마감을 어긴 적이 없다는 김영하 작가의 말이다. 글은 퇴고를 거칠수록 좋아질 수밖에 없어서 볼 때마다 부족하고 다듬고 싶지만, 여기까지가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몫이라 생각하고 과감히 멈추고 부족한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 연재이기에 배울 수 있었던 중요한 포인트다.
풀타임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기사 마감과 두잉레터 원고가 겹치는 기간은 엄청 힘들기도 했다. ‘역시 버거운 일이었어. 다음부터는 연재는 다시 하지 말아야지.’ 생각한 적도 있는데, 이 과정을 모두 끝내고 나니 7개의 글이 남았고 그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회고 후 뜻밖의 결과를 얻었다. 셀프 연재를 계속해야겠다. 마침 브런치도 최소 10개는 되어야 브런치북으로 엮을 수 있으니.
혼자 간직해도 되는 회고를 글로 발행하는 이유는 뭘까? 이때만 남길 수 있는 생각을 박제해 두고 싶어서. 앞으로의 새출발에 강제성을 부여하고 싶어서. 무엇보다 이렇게 귀하고 소중한 것들을 얻게 해 준 분들께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아낌없이 시간내고 솔직한 이야기 꺼내주신 인터뷰이에게 감사한 마음. <회사를 떠난 지금,>을 읽는 독자뿐 아니라 나에게도 큰 영감이 되어 이렇게 회고까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건 이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족함이 많은 원고에 좋은 아이디어를 더해주시고, 열어보고 싶은 제목을 달아주시고, 읽고 싶게 예쁜 디자인으로 정리해주시며 매주 연락할 때마다 다정하고 따뜻한 한 팀처럼 일해주신 리드앤두팀에 너무 감사하다.
무기력했던 시절 희망이 되어주었고, 휴식과 충전을 마치고 ‘에디터’라는 업을 시작하며 함께한 소중한 프로젝트, 이렇게 마무리하며 다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