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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Oct 30. 2022

혼자 걸을 때 필요한 것들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 티티카카가 있다. S는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멋진 숙소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꼬셨다. S는 페루 쿠스코에서 친해져 마추픽추 여행도 같이 다녀온 사이로 밤낮 할 것 없이 와인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취향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아 왔던 터라 나는 이 꼬심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페루 쿠스코에서 비행기를 타고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에 와서, 버스를 타고 티티카카 호수로 향했다. 버스는 호수를 건너 섬을 뱅글뱅글 돌아 정거장에 내려 주었다. 마치 팽이 위에서 도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내리고도 한참을 올라가야 숙소가 나왔다.


라쿨풀라.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 푯말을 보고 입구에 들어서서도 꽤 들어갔는데 메인 정원처럼 보이는 곳이 보이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넓은 풀밭엔 알파카가 있었고 그 너머로 잔잔하고 커다란 호수가 한눈에 보였다. 정말이지 하나님이 이곳에 평화가 있으라고 말한 거 같았다. 호수는 광활했다. 파도만 없지 않은 바다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렇게 넓은 물이 그렇게 고요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잔잔한 호수 끝에는 작은 배들이 꽤 많이 정박해 있었는데 번잡스러울 정도로 많은 건 아니라 누가 레고 쌓듯이 정갈히 정리해 놓은 것 같았다.


숙소는 끝내줬다. 작고 아담한 일 층 독채에는 거실과 주방, 방이 하나 있었고 작은 정원이 딸려 있었는데 정원에는 해먹이 있고 알파카들이 놀러 왔다. 알파카들은 꽤 사람 손을 타서 책을 읽고 있으면 옆에 오기도 했고 만지거나 껴안아도 가만히 있는 팬서비스가 엄청난 녀석이었다. 나랑 셀카도 정말 많이 찍어 줬다. 알파카한테 팁을 줘야 했을까?



 라쿠풀라 뒤로 보이는 산꼭대기의 십자가에 갑자기 눈이 가서 거기를 올라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밥 먹고 소화 겸 간단히 시작한 산책이었는데 멀리서 봤던 것보다 산이 높은지 산책이 아닌 산행이 되어 버렸다. 어느덧 마추픽추 기념품으로 받은 남색 티셔츠는 땀에 젖어 더 진해지고 있었다. 혼자 헉헉거리면서 올라가 가다. 도저히 힘들 때면 잠시 멈춰서 숨을 골랐다. 숨을 다듬고 고르게 평평해지면 침을 삼키고 정상을 한번 바라보고 다시 길을 올랐다.


헉헉대는 나를 보며 마주 오는 친구들은 거의 마추픽추를 올라가는 것만큼 힘들지 않냐며 농담을 건넸고 진심으로 그렇게 힘들어서 웃음도 안 나왔다. 하하. 농담도 헉헉거리는 숨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 속도로 인생을 사는게 맞는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혼자 올라가면 내가 원할 때 쉴 수 있고 내가 원할 때 달릴 수 있다. 누구와 비교하면서 가거나 같이 가다 보면, 원하지 않는 순간에 속도를 내어 내 상태와 다르게 무리하게 댈 때가 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의 인생이 그랬던 거 같다. 다들 가니까 갔던 대학교. 취직이 잘된다니까 고른 전공. 다들 하니까 했던 취직. 그리고 그래서 그만둘 수 없었던 순간들. 물론 주변과 비슷하게 가면 비슷한 고민을 나누고 또 비슷하게 힘들다는 점에 용기를 얻기도 하고 서로 격려도 할 수 있다. 친구들이랑 함께 가면 같이 초코바도 나누어 먹고 농담도 따먹고 서로 등을 밀어주면서 올라갈 수 있지만 한편으론 앞서가는 친구의 등을 보면서 자꾸 조급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냥 함께 가면서 안 그러면 되잖아? 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게 안 될 때는 아예 혼자가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막상 아예 혼자가 되기도 힘들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다 보면 또 나랑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어디 작은 길에서 튀어나와 갑자기 같이 걷게 되는 경우도 있고, 이미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람이 이미 해냈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하다못해 누군가 있다는 사인을 보내줌으로써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이라는 안심이 주기도 한다. 결국엔 혼자라고 해도 혼자가 아니다. 내 속도로 충분히 함께 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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