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엄마 취향을 저격한 곳은?

엄마와 영국 여행-10 : 리젠츠 공원, V&A뮤지엄, 더 월리스 컬렉션

by 세런 Seren

모녀의 영국 여행 마지막 날, 우리는 일찍이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긴 뒤 공원 산책부터 시작했다. 패딩턴 역에서 북쪽에 위치한 리젠츠 공원(The Regent's Park)으로 향했다. 고급 테라스형 주택단지에서부터 걸어 들어가다 우리처럼 산책 나온 웰시코기를 만났다. 목줄 없이 앙증맞은 다리로 주인과 함께 걷는 중이었다.


리젠츠 공원에서 만난 웰시코기


큰 나무, 작은 나무, 그리고 장미꽃과 함께 찍은 엄마

우리는 퀸 메리스 로즈 가든(Queen Mary's Rose Gardens)으로 갔다. 이곳은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장미 정원이라 불리는데, 5월 말에서 6월 중순이 절정기라고 한다. 우리가 간 8월 말에도 다채로운 장미들이 피어있었으나 지거나 상한 꽃 잎이 많아 아쉬웠다.

한편, 정원을 걷다 엄마 아빠 나이대의 중년 부부를 만났다. 이른 아침 사람 없는 공원에 등산복을 입고 부지런하게 나타난 모습에 한국인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르게 한국인이었다. 두 분이 먼저 한국어로 알은체를 해주셔서 잠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오늘의 일정을 서로 공유하다 두 분은 오늘 런던에서 에든버러로 이동한다고 했다. 즐거운 여행 되길 바란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우리 엄마 아빠도 외국에서 자유 일정을 보낼 수 있도록 분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V&A뮤지엄에 오면 카페 방문을 추천한다

산책을 마친 뒤, 우리는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Victoria & Albert Museum)으로 향했다. 이곳을 가기 전에 영국 드라마 빅토리아(Victoria)를 보고 가길 추천한다. 18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영국 최전성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을 조명한 작품이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풋풋한 로맨스와 두 사람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모습이 인상 깊은 드라마다.


드라마를 보면 앨버트 공은 예술, 과학, 산업 진흥에 관심이 많은 진보적 인물로 그려진다. 대표적으로 앨버트가 빅토리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시 신문물이라 할 수 있는 기차를 탄 뒤, 두 사람이 크게 다투는 에피소드가 있다. (빅토리아는 기차 사고로 갓난아이를 두고 죽으면 어떡할 뻔했냐며 앨버트에게 무책임하다고 화를 낸다) 하지만 이후 빅토리아가 변화와 혁신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기차를 타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처럼 매 편마다 빅토리아가 당시의 수동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통치자로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킴과 동시에 때로는 본인의 부족함과 실수를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V&A 뮤지엄의 안과 밖

한편, V&A 뮤지엄은 앨버트 공이 주도한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의 흥행 이후, 빅토리아 여왕이 이를 후원하여 만들어진 산실이라고 한다. 예술을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화시켰다는 점에서 이곳은 19세기 공공 예술, 교육 정책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한다.

내부의 수많은 예술 작품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고풍스러운 건물 인테리어를 보는 것도 의미 있다. 특히, V&A 뮤지엄 카페를 꼭 가보면 좋겠다. 웅장한 기둥부터 유리창, 천정까지 단 하나도 허투루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곳에서 라테와 함께 영국의 디저트, 스콘을 먹었다. 마침 피아노 연주를 수준급으로 해주신 분이 있어서 라이브 공연도 즐겼다.

뮤지엄 외부로 나오면 넓은 중앙 안뜰의 한가운데 있는 수심 얕은 인공 연못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이 물놀이하는 모습을 보며 여전히 영국에는 빅토리아와 앨버트의 시대정신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첼시 동네를 걷다가 찍은 사진

V&A 뮤지엄을 나와 첼시 지역으로 이동했다. 첼시(Chelsea)는 런던 서부에 위치한 고급 주거지이자, 문화 중심지로 유명한 곳이다.

엄마는 시원하게 뻗은 가로수 길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여기서 왜 찍는 거냐고 웃으며 물었더니, 엄마는 '특별하지는 앉지만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영국스러움이 느껴진다'라고 답했다. 사진을 찍고 보니 그런 거 같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국립 육군 박물관(National Army Museum)이었다. 바로 옆에는 로열 호스피탈 첼시(Royal Hospital Chelsea)가 있었는데, 이곳은 고령 참전용사들에게 의료,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라고 한다. 두 장소가 이런 부촌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영국 사회의 진정한 보훈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런던 국립 육군 박물관


월리스 컬렉션의 외관과 내부

런던 시내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첼시 지역을 구경하고 난 뒤, 런던 중심부 메리본(Marylebone)에 위치한 월리스 컬렉션(The Wallace Collection)으로 갔다. 공항으로 가기 전, 우리가 들른 마지막 명소였는데 엄마 마음에 쏙 든 곳이었다.


이곳은 우리가 방문했던 여타 박물관과 달랐다. 왜냐하면 이곳은 4대 허트포드(Hertford) 남작을 비롯해 리처드 월리스(Sir Richard Wallace)가 수집한 예술품을 레이디 월리스가 국가에 기증하면서 박물관이 된 곳으로, 과거 귀족의 삶과 예술 문화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건물 외관과 달리, 내부에는 화려한 인테리어와 회화, 공예품으로 가득하다.

프랑스 로코코 회화의 대표작 <The Swing>

나는 첫 영국 방문 때 이곳에 와서 감동했는데 엄마 역시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내 예상보다 더 좋아했다. 안 그래도 거리를 걸으며 저런 집에 귀족들이 살았을 거 같은데, 내부가 궁금하다고 여러 번 얘기했는데, 이곳에 오니 그 의문이 해결된 듯했다. 엄마는 감격해서 '당시 귀족들이 이런 곳에 살았겠구나'하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한편, 모녀가 신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인상 깊었는지 경비하시는 분이 우리에게 와 저기 유명한 작품이 있다고 했다. 바로 프랑스 로코코의 대표작 중 하나인 <The Swing>이었다.

한 벽면을 차지한 이 그림은 딱 보는 순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네 타는 귀족 여인에게 조명이 집중된 구도와 살구색의 풍성한 드레스가 그네를 타면서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18세기 귀족의 삶을 상상했다.


월리스 컬렉션 내부

끝으로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 캐리어를 챙겨 나와, 다시 패딩턴 역에서 히드로 익스프레스(Heathrow Express)를 탔다. 마켓에서 산 그릇, 컵, 거울 등등 골동품과 영국 비스킷 덕분에 올 때보다 캐리어가 더 무거워졌는데, 떠나는 아쉬움에 발걸음은 더 무거웠던 거 같다.


엄마는 30여 년 전에 간 태국 신혼여행 이후 이렇게 먼 곳에, 이렇게 길게 떠나는 게 처음이라 사실 걱정이었다고 고백했다. 사흘을 지내고 난 뒤에야 서서히 적응되어 집에 돌아갈 날을 손꼽아 세지 않았다면서, 그동안 TV로 보던 여행지를 실제로 볼 눈물 나게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한편, 그동안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엄마 아빠가 항상 생각났는데, 비록 이번에 아빠는 못 왔지만 엄마와 단 둘이 모녀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뜻깊고 행복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영국을 엄마도 좋아할 수 있게 도와준 '날씨 요정'과 엄마 취향에 맞는 일정을 고민하느라 애쓴 '과거의 나'에게 감사하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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