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지만 감사하지 않습니다.

feat 명절선물

by 그레이스


일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노란 테이프로 칭칭 감긴 커다란 아이스박스가 있었다. 오는 길에 박스가 부서지지 말라고 저렇게 감겨왔겠지만 테이프를 뗄 생각을 하니 조금 귀찮기도 하다. 생물, 취급 주의란 빨간 스티커와 함께.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열어보니 커다란 비닐봉지에 해초, 얼음과 함께 담긴 전복, 그리고 머리가 그대로 달린 갈치 10마리가 있다. 상당한 양의 초록 해초 더미와 있어서 마치 바다를 보는 거 같았다. 손질해서 맛있게 먹으라는 문자는 감사하지만 감사하지 않았다.

요새 이래저래 바빠서 여유가 없었지만, 생물이라 더 미룰 수는 없다. 자려고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서 손질을 시작해 본다. 먼저 전복을 꺼내고 솔을 준비했다. 살짝 반짝이면서 녹색빛이 보이는 전복껍데기가 손질하려는 내 손을 머뭇거리게 한다. 본격적으로 솔을 꺼내서 전복껍데기를 깨끗하게 닦기 시작하자 조금씩 하얗게 되어간다. 끓는 물에 데쳤다가 하면 더 쉽게 분리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건만 급한 마음은 숟가락으로 껍질을 분리하다 손을 베게 했다.

다음은 갈치 손질이다. 제주 직송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머리 위쪽과 아래쪽에 칼집을 넣고 내장을 빼주고 가위로 지느러미를 자른 후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온 집안에 생선 비린내가 가득하다. 비누로 손을 다섯 번 이상 씻었지만 비린내는 가시지 않는다.

생각해서 주신 선물은 감사하나 주신 선물을 손질하고 나니 피곤함에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쓰레기 집화장에 나가보면 박스와 포장이 뜯긴 게 얼마 안 돼 보이는 박스들이 널브러져 있다. 박스는 이리저리 쌓여 어른의 키를 넘겨 작은 동산을 이룬다, 심지어 어떤 박스 안에는 뜯지도 않은 샴푸와 린스 선물세트가 보인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선물을 주고받을까? 하기사 이런 추석을 통해 공식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기회를 얻어 기쁜 사람도 있을 테고 기업이나 자영업자들도 생산을 증대하고 소비자들은 구매함으로 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물을 줘야 하는지는 받는 사람의 취향도 고려하면 좋으리란 생각은 내 욕심일까? 손질 안된 해산물은 감사하지만 감사하지 않은 선물이다. 적어도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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