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읽으면서 진짜 그런 생각이 든 거야? 아니면 별루 자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야?"
"거기 나왔던 말들이 나하고 비슷한 거 같아."
"오... 신기하네. 맞는다는 것도 신기하고, 자기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신기해. 혹시 그 책에 나왔던 간단 테스트도 해봤어?"
"어."
"오, 진짜? 대박. 그래서 어떻게 나왔어?
"회피형으로 나왔어."
"헉. 으아.. 몇 퍼센트 정도 되는 거 같아?"
"백 퍼센트."
"헐, 진짜야, 거짓말이야~?"
"진짜."
동욱의 목소리에 힘이 없고 흥미도 호기심도 자신감도 걱정도 불만도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정인은 동욱의 말이 그대로 믿겨지지는 않았다. 진짜로 본인이 100% 회피형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건지에 대해서도 믿을 수 없었다. 그 검사 결과가 마음에 안 들었으면 검사 자체가 이상하다고 투덜거리거나 의심스럽다는 반응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정인이 평소 동욱을 향해 회피형이네 어쩌네 하고 운운한 게 그냥 넘겨짚은 말이 아니라 사실에 가까워서 놀랐다거나 짜증났다거나 불만이라거나, 아니면 본인은 아무리 그래도 그 책을 믿을 수 없다거나 억울하다고 호소하거나 했을 것인데, 무슨 사람이 이렇게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반응이라는 것이 없단 말인가. 엄청나게 열렬한 반응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도 저렇게 미덕지근한 동욱이 정인은 못마땅했다. 동욱이 알아서 자기가 어떤 스타일인지 이제야 조금은 알겠다고, 그동안 자기 행동 때문에 니가 고생이 많았다고, 앞으로는 어떻게 하겠다고 이렇게 조목조목 말하면서 정인을 토닥거려 주었다면 아마 정인은 잠자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욱은 꿀 먹은 벙어리여서 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허공에 숨만 쉬어대고 있었다. 답답한 정인은 회피형 인간이랑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문제를 처리하지 않고 빙빙 돌다가 먼 산으로 가버리는 사람이랑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회고하면서, 듣고 싶어하지도 않는 동욱의 귀에다가 넋두리를 쏟아부었다.
언제나처럼 동욱과의 대화에는 강 하나를 건너갔다가 돌아오는 거리만큼의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에 채워야 할 것은 자기 넋두리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었을 텐데, 그게 어렵다면 차라리 '침묵'이었을 텐데, 정인은 공감도 침묵도 할 수 없었다. 공감과 침묵으로 동욱을 그대로 놔줄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밧줄로 꽁꽁 묶어서 360도로 뱅글뱅글 돌려 그가 자주 회피하던 먼 산으로 날려 버리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만, 정인은 자기를 이해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동안 애쓰며 살았다고 토닥여줄 따뜻한 한 사람이 필요했다. 정인은 그런 사람이 동욱이길 바랐다. 하지만 동욱은 아직도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애송이였다. 당신은 이런 사람인 것 같아~ 하고 얘기해 주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라고 조언해 주어도 자기 그림자 속으로 숨어 버리고 마는 그런 사람, 정인보다 더 허약한 사람이었다.
정인은 더 강해져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따뜻한 돌봄을 받지 못해서 한평생이 외로웠고, 그 외로움을 그 누군가에게 보상받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도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그 누구에게도 보상받을 수는 없었다. 정인은 자기 스스로가 돌봄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기로 했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정서적 결핍을 채우려고 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의 일이라는 건 마음먹은 대로 되지도 않을뿐더러 또 마음을 주는 만큼 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결핍이 있는 사람이 자기 마음을 주는 것만으로 깔끔하게 "끝!!!!!!"이라고 외치고 가슴 가득 온기를 채우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시어머니를 받아주기 힘든 것도 생각해 보니 시어머니가 정인을 진심으로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정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사가 뭔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힘든 일은 없었는지, 오늘 무엇을 먹었고 시간을 어떻게 보내며 사는지.. 정인에 관한 그 무엇도 시어머니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남편 동욱도 마찬가지였다. 정인이 혼자 주절주절 말했을 뿐, 동욱이 먼저 궁금해서 물어본 건 없었다. 또 생각해 보면, 정인의 친정 부모님도 그랬다. 정인에게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봐 오는 건 없었다. 그저 다들 정인에게는 으레 본인들의 이야기만을 했다. 정인의 이야기는 들어주는 이는 없었다. 정인은 자기 외로움의 근원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었구나."
깊고 슬픈 깨달음이었다.
시어머니에게 인간적으로 실망하기 전까지 정인은 몰랐다. 어머니가 정인을 붙들고 하소연했던 것도 실은 자기를 궁금해할 사람이 필요해서 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자기를 이해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을. 이제 퍼즐이 맞추어졌다. 가족들이, 자식들이 아무도 자기를 궁금해하지 않았으므로 어머니는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단 한 사람, 막내며느리를 붙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 원래가 그런 걸까? 외로움이란 자기 얘기를 들어줄 한 사람이 없을 때 느껴지는 그런 감정일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고 정인은 생각했다. 정인은 그동안 표류하는 외로운 배를 타고 살아왔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목적지를 정하는 선장으로, 두 쪽밖에 없는 노를 휘휘 저어가며 배를 움직이는 선원으로, 깊은 바닷속에서 가끔 튕겨 오르는 돌고래들의 친구로, 가끔은 폭풍우를 만나 작은 배가 뒤집히기도 하고 가끔은 크고 우람한 범선을 만나 먹을 식량을 얻기도 하면서 숱한 계절을 지나며 살아왔지만,
그 외로운 배는 어느새 외로움을 잊은 배가 되어 있었다. 다시 눈을 들어 바라보았을 때, 하늘엔 조각구름이 떠 있고 그 구름들 사이로 쨍한 햇빛이 자기를 비추고 있었다. 망망대해에서 보낸 사십몇 년의 세월은 외로운 배를 어떤 폭풍우에도 뒤집히지 않을 수 있는 법을 터득하도록 해주었고, 겉으로 보기엔 너무 깊어서 너무 무섭지만 부력을 잘만 이용하면 반짝이는 바다를 오히려 품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해 주었다. 외로운 배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채우면 채울수록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배를 잘 컨트롤하기 위해 최대한 비워내기로 했다. 자기에게 이롭지 않은 것은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태우기로 했다. 가끔은 다른 외로운 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작은 배에 함께 타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으므로 각자의 배에 앉아 풍월을 읊으며 바다를 찬양하고 노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