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배려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당당해지기로 했다

by 김혜정


10~20년 전만 해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지만 요즘엔 아빠들이 육아를 위해 휴직계를 쓰는 일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꼭 휴직계를 쓰거나 전업주부화 되지 않더라도 퇴근 후나 주말을 아이들과 보내려고 노력하는 아빠들의 모습은 흔한 풍경이 되었다. 일을 하든 안 하든 아이를 전적으로 키우고 돌보는 사람은 우리 때만 해도 당연히 엄마였는데 이제는 아빠들도 발 벗고 아이들과 씨름하며 추억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개념 있고 육아에 진심인 아빠들이 있기에 부부 공동 육아가 제 이름을 찾아가고 있지 않나 싶다. 이제는 사랑만 무한대로 퍼주거나 억압하고 통제하는 일방향적 양육이 아니라 아이들과 뼛속까지 소통하며 올바른 인격체로 키우는 동시에 같이 성장하는 쌍방향적 양육이 대세인 것이다.



내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를 생각해 보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였다. 요즘 유행처럼 번졌던 말처럼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 생소한 것들 투성이었다. 아이를 낳았던 곳도 타지였던지라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다. 다행히 친구를 사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는 성격이라 동네 젊은 엄마들을 사귀고 교회에 다니며 구역 식구들도 만나면서 육아의 고통을 나눌 수 있었다. 우리 신랑은 그 당시 나만큼 어리바리해서 아이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목욕시켜주는 것 이외에는 거의 삼촌 같은 존재였다. 남편에게 도움받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주말에는 더 바쁘고 퇴근이 밤 12시~1시였던 탓에 나는 독박 육아를 해야만 했다. 그런 이유로 사랑스럽고 귀여운 내 아들과 24시간 마주한 육아 생활이 고통과 외로움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가끔씩 꺼내 보는 일기장에도 아이와의 사투에 대한 은 흔적이 남아 있으리만큼.

나에겐 아들이 둘 있지만 내 육아의 기억은 거의 큰아들에게 세팅되어 있다. 둘째 아들에겐 미안할 정도로 둘째는 모든 걸 알아서 척척 잘해 주었지만 큰아들은 떼도 많이 썼고 언어 발달도 미숙했기 때문이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던 옛말은 틀린 말이었다. 나는 아팠다. 유독 큰아이는 내가 잘못 키운 것 같아서, 임신했을 때 우울하고 외로웠어서, 그게 내가 큰아들을 그렇게 만든 이유라고 생각하며 늘 아픈 손가락이 더 아파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해서든 훌륭하게 키워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때 육아 열풍으로 크게 주목받았던 프로가 있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이걸 보면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하는 원인이 거의 다 부모의 양육 방법에 있었다. 이 때문에 나는 강박을 더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아이가 큰 잘못을 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훈육을 한답시고 아이의 기를 너무 억눌렀다. 아이를 생각 자리에 앉히고 꼼짝 못 하게 했고 울면서 소리치는 아이를 방 안에 가두고 생각이 끝나면 나오라고 했다. 모든 아이들에게 통용되는 가장 중요한 훈육법인 줄 알았다. 나는 전문가의 권위에 힘입어 똑똑한 방법을 사용하는 현명한 엄마라고 여겼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후엔 그것이 개인적으로 무지했던 엄마가 부분적으로 잘못 선택한 방법이었음을 깨달았. 우지 못한 채로 곪아 상처로 남았다.


내가 이 프로만큼 좋아했던 또다른 프로그램은 <영재 발굴단>이었다. 똑똑한 아이들의 영재성을 보면 입이 떡떡 벌어졌고 박차를 가할 육아에 동기 부여도 되었다. 내가 갖지 못한 걸 타고 난 어린아이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그 아이들의 마음과 심리를 들여다보는 것이 나한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아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순수한가를 보며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내 마음도 보았고,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노력하는지를 보면 안쓰럽고 측은해서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내 몸이 힘들다고 아이한테 짜증내고 혼자서 좀 놀라고 떼어냈던 내 행동에 우리 아이는 얼마나 슬펐을까,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생각하고 반성하면서 눈물 젖은 일기도 많이 써내려 갔다.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해야지 하면서 우리 아들들을 꼬옥 안아주곤 했다. 이제는 양육의 긴 터널 끝 언저리에 와 있어서 일부러 떠올려야 생각나는 일들이긴 하지만 좋은 기억, 가슴 아픈 기억 모두 그러모아 나만의 기억 보따리를 만들어 나가려고 한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값진 시간은 우리 아들들과 보낸 16년의 시간이다. 아들들 덕분에 내가 어른이 되었고 진정한 사랑을 알았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앞으로도 다음 생에서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 터지도록 사랑했다. 얼룩지고 상처 투성이인 일들도 많았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 없고 감사하다. 진정한 마음으로 아이를 키운 부모의 심정은 모두 다 그럴 것이다. 더 많이 주지 못해 미안하고 더 잘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다. 지금도 미안한 일이 많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당당하기로 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잘 키웠으니 너희가 인성이 좋은 거라고, 세상에 나가서 인성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아들들에게 호언장담하면서 말이다.

이제는 머리도 굵어지고 제법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궁리도 하는 나이가 되었다. 질문도 많아지고 대화거리도 풍부해졌다. 그래서 즐겁다. 외롭지 않다. 앞으로 내 곁을 훌쩍 떠나갈 때가 오겠지만 그래도 난 외롭지 않을 것이다. 아들들이 독립할 때까지는 나와 인생을 함께 할 거니까. 그 추억으로 살아갈 테니까.



망각의 강을 건너기 전에 내가 우리 아들들을 키우면서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일이 가치가 있었는지 기록하고 싶었다. 브런치에 입문하면서 가장 쓰고 싶었던 글이 육아 글쓰기였는데 고민이 많아서 시작을 못했었다. 이미 많은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고 TV 방송, 유튜브 채널, 지역 카페 등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플랫폼도 넘쳐 나는데 내가 무슨 깜냥으로 쓸 수 있을까 했다. 그리고 아직 큰아이가 중3이라 다 키운 것도 아니고 내가 전문가도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소심해지기도 했다. 게다 더 발목은 잡은 것은 남편이 개인의 사생활을 유출하고 공유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아들의 이야기라도 사생활라며 노출하는 것은 꺼려했다. 남편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 레이더에 걸렸다. 하지만 내가 애초에 계획한 글쓰기 대주제가 이건데 남편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이 시간이 갈수록 불편했다. 그래서 이 참에 말했다. 그냥 구독을 취소해 달라고. 그냥 들여다보지도 말라고. 이기적인 나는 결국 남편을 배려하지 않기로 했다.

육아의 현장에 있는 많은 부모들에게는 지금이 육아 지옥을 건너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어떤 게 좋은지 갈피를 못 잡고 힘들어할 때도 분명 있을 것이고, 아이에게 무언가 미안해서 죄책감이 들 수도 있다. 남편과의 공동 육아가 뜻대로 잘 안 돼서 힘들 수도 있다. 그런 시절을 거쳐 왔기에 고민의 깊이를 이해한다. 방송과 책을 통해 큰 위로를 받고 양육을 통해 이제 세상을 좀 더 현명하게 살아갈 용기가 생겼기에 나도 누구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작은 몸부림이라도 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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