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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엄마가 성당엘 다녔던 이유

1부. 나의 유년 시절의 봄

by 김혜정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엄마는 서른셋이었다. 엄마랑 나는 스물일곱 살 차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무렵 엄마는 갑자기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가 성당을 나가게 되자 나는 자동으로 성당에 다니는 아이가 되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저 엄마가 하는 행동은 법이었다. 지켜야만 하고 또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을지도 모르는, 하늘에 계신다는 하느님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이 엄마였다. 죄악과 징벌에 관한 모든 권한은 엄마에게 있었다.



성당 안은 고요하고 엄숙했다. 누구라도 큰 소음 하나 내는 법이 없었다. 아줌마들은 죄다 하얀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그 하얀 두건은 다 똑같지 않았고 무늬가 저마다 달랐다. 아주 단순한 무늬부터 복잡하고 화려한 무늬까지 그 하얀 두건의 무늬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 두건 때문에 얼굴이 가려져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는 어려웠다.



맨 앞에선 사람들을 향해 손을 든 채, 커다란 가운을 입은 아저씨가 굵고 큰 목소리로 주문 같은 말을 외웠다. 그 아저씨가 주문 외기를 마치자, 모든 사람이 짠 듯한 목소리로 그 말을 따라 외웠다. 그 목소리는 천장을 뚫을 듯 울려 퍼져서 정말로 하늘까지 닿을 것만 같았다. 저마다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의 목소리는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었다. 웅장했다. 굵은 목소리의 아저씨는 신부님이라고 했다. 신부님은 아주 지루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들려주었는데,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찌나 고저장단 없이 한 톤으로 읊어대는지, 졸려서 죽을 뻔했다. 졸면 벌을 받을까 봐 무서운 마음에 주변 사람들을 곁눈질하며 필사적으로 꾹 참았다.



그때쯤이었다. 성당 안에 앉아 있던 아줌마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들의 한가운데 난 길로 촘촘히 줄을 서더니 앞으로 나가 뭔가를 하나씩 받아먹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이마, 가슴, 왼쪽 어깨, 오른쪽 어깨를 차례로 찍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머리에 쓴 수건을 잘 매만지고는 앞으로 나가 하얗고 동그란 무언가를 받아먹고는 손가락으로 자기 이마, 가슴, 왼쪽 오른쪽 어깨를 찍고는 내 옆자리로 돌아왔다. "엄마, 뭐 먹었어?" 나는 속삭였다. 엄마는 대답 대신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쉿'하고 작게 말했다.


뭘까? 왜 어른들만 주는 걸까? 나도 한 번 먹어보고 싶은데.



미사가 끝나고 성당 문을 나서자, 바람이 청명했다. 조용하던 사람들은 계단을 내려가며 환하게 웃고, 손을 잡고, 떠들어댔다. 안에서는 숨죽이던 그들이 밖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성당 안에서는 자기 본모습을 감춰야 하는 걸까.



그날 이후 우리는 일요일마다 그 성당엘 나갔다. 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엄마는 성모마리아 상 앞에 서서 손가락으로 이마와 가슴, 왼쪽 오른쪽 어깨를 콕콕 찍고 고개를 숙였다. 나도 엄마를 따라 그 동작을 흉내 냈다. 그리고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 미사를 보고 또 아줌마들이 줄을 서서 하얗고 동그란 것을 받아먹는 그 뒷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것은 첫영성체를 한 사람만이 먹을 수 있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첫영성체는 열 살이 되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어서 열 살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길다란 책상 밑 길다란 무릎받침에 무릎을 대고 기도할 때면 나도 거기다 무릎을 꿇고 속으로 기도를 했다.



"하느님, 저도 열 살이 빨리 돼서 그 하얗고 동그랗게 생긴 거 먹게 해 주세요. 과자도 아니고, 사탕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어른들만 주나요? 뭔가 신비한 맛, 저도 빨리 먹을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멘."



나는 성당에 갈 때마다 빠짐없이 기도했다. 그리고 일곱 살이 되었을 때는, 그 성당 바로 옆에 있는 '새싹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곳에는 수녀님들이 많이 계셨고 분위기는 성당처럼 차분했다. 성당처럼 기도도 했고 찬송가 같은 것도 불렀다. 과자도 주고 달콤한 간식도 줬지만 하얗고 동그란 건 끝내 주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살짝 실망했다. 나는 빨리 열 살이 되고 싶었다.






성당에 다닌 건 엄마, 오빠, 나 셋이었다. 우리 셋은 세례명을 받았는데 내 세례명은 '그리스비나'였다.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엄마가 성당엘 왜 갑자기 나가기 시작했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모른다. 성당이 코 앞에 있었던 것도 아닌데, 엄마는 왜 그 먼 길을 매주마다 걸어갔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때 엄마는 너무 지쳐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자신의 삶이 너무 고단해서, 스스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산다는 게 너무 고역 같아서, 그래서 하느님 앞에서만큼은 간청하고 울고 기도하면서 잠시 내려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십자가가 조금이나 가벼워지지 않을까 하고.



아빠는 일하느라 일요일에도 집에 없었다. 바빠서 그랬다지만 아빤 성당에는 관심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집에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는 벙어리였고 동네에서도 무섭기로 소문난 분이었다. 엄마는 그 누구의 돌봄도 받을 수 없는 처지였다.



엄마는 외로웠다. 서른셋의 엄마는 끝없는 외로움을 견디어 내고 있었다. 내가 서른이 되었을 때 교회를 그렇게 열심히 다니며 기도하고 찬양하기 시작했던 것도, 엄마가 우리 손을 붙잡고 성당 문턱을 오르내렸던 것도 단지 신앙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차마 덜어낼 곳이 없어서 그랬던 거였다.


오십을 바라보는 내 눈에 이제야 엄마의 서른셋의 외로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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