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를 두들겨 맞고 세상에 태어난 내 아이, 만 아홉 달 동안 내 뱃속에서 꿈틀거리며 인간다운 모습을 갖춘 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지 벌써 16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동안 세상은 변했고 16년의 세월 동안 아이는 세상 속에서 꿈틀거리며 잘도 커왔습니다. 가끔씩 몰아보는 사진들과 동영상, 일기 나부랭이들마저 없었다면 과거 우리 아이의 모습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요. 돌이켜 보면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정말 애썼다고 나 자신에게 칭찬 한 마디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저는 우리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너무 많이 외로웠습니다.
남편의 근무지 변경으로 하남으로 이사를 간 지 몇 개월 안 된 때였습니다. 퇴근길에 음주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전치 6주 진단을 받았습니다. 입원 생활은 어쩔 수 없이 퇴직으로 이어졌구요.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는 저로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난 것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았어요.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목 디스크 판정을 받았으니 몸을 보호하면서 좀 더 쉬기로 작정을 했죠.
그러던 중 임신을 했고 임신 소식이 기쁘기는 했지만 불안과 걱정이 눈앞을 가렸어요. 내가 아직 몸도 마음도 준비가 안 됐는데 벌써 엄마가 된다니, 내가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자격이 있을까 하면서 나 자신을 믿지 못했던 거죠. 그때 나이는 서른이었지만 한 아이를 책임지기에는 너무 서툴고 미성숙할 것이 불 보듯 뻔했거든요. 외로움과 방황의 시간은 임신 기간 내내 계속되었고 아무리 출산ㆍ양육서를 읽어도 불안과의 사투 속에 저는 스스로 고립되고 있는 것 같았어요.
태아가 뱃속에서 커나가도 진정한 기쁨을 느끼기보다는 양육에 대한 의무감이, 불어오는 배처럼 팽만해져감을 느꼈어요. 만삭이 되어서 배가 땅으로 꺼져가는 느낌을 받았을 때는 아이를 어떻게 낳을 것인가 지나친 고민에 휩싸였어요. 자연분만이 아이와 산모 모두에게 좋다고 했지만 너무 두려웠거든요. 그냥 제왕절개 수술을 받으면 아무런 고통도 없을 텐데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는 모두 자연분만만 권하시니 생각지도 못한 강박관념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어요.
서울대에서 발행한 <교육학 용어사전>에 의하면 완벽주의(perfectionism)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함으로써 자신에게 돌아올지도 모르는 비난이나 비평을 면하려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말한다.
아마 이때부터 저의 완벽주의는 풀가동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아이를 완벽하게 키우고자 하는 목표가 제 인생 최고의 가치가 되었죠. 완벽하게 아이를 키움으로써 나 자신에게 돌아올 비난이나 비평을 면하려고 한 거예요. 완벽주의에 대한 정의가 어찌나 저에게 잘 맞아떨어지는지. 어려서부터 비난과 비평을 듣는 일이 많았던 저에게는 아마 그것을 막는 일이, 그것을 모면하는 것이 세상 중요했던 거였어요. 아이를 완벽하게 제대로 키워서 어떤 비난도 듣지 말자, 자격 없는 엄마가 되지 말자고 누누이 뇌리에 새겨두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고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일 뿐이었잖아요? 그러니 처음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당연스레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넓은 마음으로 수용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지요. 친정 엄마가 입버릇처럼 얘기하듯, ‘애가 애를 키운다.’는 말이 그저 나를 두고 만들어진 말인 것만 같아 죄책감이 심장을 짓누르고 아이한테는 미안하다는 생각만 커졌어요. 왜냐? 저는 정말 실수투성이 소심쟁이에 못난이 엄마였거든요.
아이를 낳기 전 의사 선생님은 제 골반의 크기에 비해 아이의 머리가 약간 크다는 소견을 내놓으시면서도 자연분만을 권하셨어요. 그때 그 산부인과 내의 분위기가 자연분만율 최고치를 겨냥한 것으로 보였는데 그 선생님도 상부의 지시를 안 따를 수 없었던 것도 같아요. 결국 아이의 머리가 큼에도 불구하고 저는 자연분만을 위해 예정일보다 며칠을 당겨서 병원에 갔고 유도분만을 하게 되었어요.
가진통이라는 것이 시작되고 배가 막 아파왔지만 아이는 꿈쩍도 안 했고 유도분만만으로 8시간이 넘어갔어요. 옆에 와 계셨던 친정엄마는 힘들어하는 저에게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를 낳으려면 머리 위에서 별이 뱅뱅 돌아가야 한다. 아이가 나오려면 아직도 멀었다. 24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틀 걸리는 사람도 있다.’면서 힘을 주려는 것인지 협박을 하려는 것인지 모를 그런 말을 내뱉으셨죠. 저는 가진통이 이렇게 아픈데 진짜 진통을 어떻게 참겠냐는 두려움에 의사 선생님을 불러달라고 부탁했어요. 제발 수술을 받게 해달라구요. 어머니나 엄마의 말씀대로 저도 자연분만을 하고는 싶었어요. 하지만 너무 무섭고 두려웠던 걸요. 그 마음을 누가 알아주겠어요. 한 걸음에 달려오신 염재호 원장님도 제왕절개에 무슨 철천지 원수를 맺으셨는지 재차 자연분만을 권하셨고 저는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어요. 수술이 무슨 악한 짓이나 되는 것인 양, 모두가 만류하는 악행을 내가 저지르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너무 죄스러웠고 뱃속에서 유도분만제 때문에 힘들어할 아이한테 너무 미안해서 엉엉 울었어요. 그때가 30세, 지금보다 16살이나 어린 저의 불쌍한 모습이네요.
수술을 마치고 몽롱한 의식으로 간호사 선생님이 보여주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어요. 간호사 선생님은 아이가 제 젖을 빨 수 있도록 제 가슴 위에다 아이를 올려놓았지만 마취가 덜 풀린 내 젖가슴은 그마저도 느낄 수가 없었죠. 그렇게 저는 죄책감 속에서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고 극한의 통증에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유도분만부터 수술 결정의 시간까지의 그 험난했던 시간과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떠올리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너무 무겁고 우울해서 억억 거리면서 이마를 짚고 몇 차례나 울었어요. 두통이 심해졌고 우울증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 증상은 산후 조리원에 입소한 이후에 더 커졌어요. 정서가 안정되지 않아서인지 모유도 돌지 않았고 유축기로 아무리 짜도 40~80ml밖에 모이지 않았죠. 초유, 모유가 중요하다던데 아이한테 이것도 못 먹이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두통과 저혈압 증세가 심해져서 결국은 서울대학교 응급실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한 건가 하는 조바심에, 아이를 혼자 산후조리원에 내버려 두고 병원에 와있다는 자책에, 이렇게 부족한 엄마가 아이를 어떻게 키우나 하는 불안 심리까지, 약해빠진 마음은 완벽주의에 철저히 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완벽주의가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가에 대해서는 아이를 10년 정도 키우면서 저절로 깨달아지긴 했어요.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완벽주의는 오히려 나를 KO 시키고 외롭게 하고 나아가 내 자식까지 그렇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완벽주의 엄마에게 키워진 아이는 자기를 인정하지 못하고 남의 눈치부터 살피게 된다는 것을요. 아마 저도 어렸을 적부터 우리 친정엄마의 완벽주의에 눌려서 남의 눈치를 먼저 살피는 아이로 자랐던 것 같아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컸기 때문에 더 눈치를 살폈고 인정받을 때까지 발발거리는 강아지처럼 인정을 갈구했어요. 30대가 넘어서도 여전히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날 알게 되었습니다.
친정 엄마네서 엄마와 고모와 얘기하던 중이었어요. 그때 저는 30대 초반이었던 것 같아요. 고모가 그러더라구요.
“혜정아, 너는 시집을 가고 애를 낳았는데도 왜 그렇게 엄마, 엄마 해~? 넌 이미 가정을 꾸리고 독립을 한 건데 아직도 독립을 못한 것 같아. 너는 니 인생을 살고 엄마는 엄마 인생을 살면 되는데 맨날 엄마한테 그렇게 인정을 받으려고 그래~.”
“내가?”
저는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정서적으로 많이 가까웠던 고모가 나한테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인정받으려고 한다고? 참나~ 순간 자존심이 상했어요. 뭐라고 대꾸해야 될지도 몰랐고 그냥 멍하게 한참을 있었더랬죠. 결국 그 대화는 저를 깊은 심연으로 데려다주었고 나에게 인정 욕구가 해소되지 않아서 여전히 30대 초반인데도 인정을 목말라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저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기를 원했던 것 같아요.
와~ 이렇게 힘든 일을 혜정이 니가 해내고 있구나!! 그것도 아무에게도 도움도 안 받고 혼자만의 힘으로 그 어려운 양!육!이라는 걸 해내고 있다니,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이런 칭찬을 듣고 싶었던 거예요.
하지만 아무도 저를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고 그런 제 모습을 저조차 인정해 주지 못하고 바람 불면 퐁퐁 터지는 비눗방울처럼 제 인정 욕구도 공중에서 퐁퐁 터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인정을 받으려는 욕심도 한편으로 보면 그 기저에는 강박이 있고 완벽주의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어요. 인정 욕구, 강박, 완벽주의 모두 다 공통적으로 타인을 의식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타인에게 기준이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서서히 그것에서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그게 현실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요.
하지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그저 나의 내면, 우리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정말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변하게 되었죠. 모든 것들이 철저히 규정된 틀 안에 있어야 안정적이라는 생각을 버리고“그래도 괜찮아. 좀 못하면 어때. 누구나 부족한 거야. 완벽한 사람은 없어.”라고 나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은 새로 태어나는 일과도 같았습니다.
친정 엄마는 아직도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저는 변했거든요. 아직도 엄마는 저에게 이건 이래야지, 저건 저래야 하고! 하면서 잔소리를 늘어놓으시지만 저는 예전같이 고분고분하게 듣지 않아요. 이제는 당당하게 얘기하죠. “엄마, 엄마의 방식이 모두 옳은 건 아니야. 각자의 생각은 다 다른 거고 다 다르게 사는 거지. 엄마의 생각을 강요하지는 마~.”하고 말이죠.
저는 이제라도 엄마가 좀 더 자유로운 사고방식으로 사셨음 좋겠어요.
사람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천연의 모습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 아이들도 뭔가를 강요받지 않고 자기들 그대로의, 총천연색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받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정말 세상 두려울 게 없을 것 같아요.
만약 어머니나 친정 엄마가 어떤 조건도 따지지 않고 저를 응원하고 격려해 주셨다면 완벽주의 양육관에서 조금은 비껴갈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 자아를 갖기 이전부터
부모에게 인정받으려는 어떤 노력 없이도
부모에게 인정을 받으며 살아왔다면
그는 평생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ㅡ 김혜정의 생각
어떤 가치관을 가질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개인의 몫인 것처럼 어떤 양육관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 역시 개인의 몫입니다. 선택은 자유겠지만 부디 이것만은 피해 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