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성 : 시의 기억 @갤러리 508
인공지능 AI와 인간 예술가가 함께 빚은 조각시
기억색과 조각시로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고, 시적 언어를 인공지능이 해석해 작품을 구현하도록 새로운 창작 방식을 시도.
전시 기간 : Oct 7 - Nov 25, 2023 @ 갤러리 508
도서
<특이점이 온다> 레이 커즈와일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 리처드 왓슨
음악
Singularity_뷔 (of BTS)
그대라는 시_태연 (호텔델루나 OST)
Poetic Beauty 재현 (of NCT) 영상
인공지능 즉 AI 기술은 이미 문화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실제 작품을 걸지 않고도 예술 공간이 된다. 미디어 아트는 체험도 할 수 있고 작품들을 살아 움직이게 할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다. AI가 직접 작품을 그린다. 저작권이나 사용권 등의 문제가 아직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다양한 툴과 기술의 발전은 두세 걸음씩 앞서가고 있다.
우선 우리가 도구를 만들면,
다음엔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
마셜 맥루언
챗GPT로 떠들썩할 때만 해도, 문학은 아직 멀었다는 인식이 있었다. 정보성 글은 쓸 수 있어도, 인간의 감정까지 파고드는 글은 인간만이 할 수 있을테니까. AI가 동화책도 쓰고 소설도 쓴다지만,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까지 쓴다면? 물론 시처럼 쓰는 건 가능하다. 일정한 패턴으로 학습을 시킨다면 말이다. 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도록 인간의 섬세한 감정까지 표현할 수 있다면, 인공지능은 특이점(singularity) 이 올지도 모른다. 함축적인 시적 언어들마저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된다면.
++ 특이점 (Singularity)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점.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
이 책을 통해 내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정보 기반 기술들은 수십 년 내에 인간의 모든 지식과 기량을 망라하고 궁극적으로 인간 두뇌의 패턴 인식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 감정 및 도덕적 지능에까지도 이르게 될 것이다.
<특이점이 온다> 레이 커즈와일 p25
송은 갤러리('파노라마'는 전시 종료)의 전시를 보고 오던 날, 근처에 위치한 갤러리 508에 잠시 들렀다. 인공 지능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기사를 보고 솔깃했다. 게다가 제목이 '시의 기억'이라니. 꿈이 현실이 되는 것인가, AI의 예술이 실현되는 것인가. 궁금했다.
이 전시는 기억색과 조각시라는 작가의 내면적 사고로써 시적 언어를 인공지능이 어떻게 해석하고 그에 걸맞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협업의 창작물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 삶에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예술창작에 도입할 때 어떻게 작용하고 또 활용될 수 있는가에 관한 실험적 작업이다. _갤러리 508 작품 소개 중에서
다소 실험적인 시도이긴 하지만, 창작자로서의 AI와 콜라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셈이다. 큐레이터 분의 설명에 따르면, 동대문 DDP를 비롯한 많은 미디어 아트 작업을 해온 작가는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작업을 프린트하고 거기에 다시 채색작업을 하는 방식으로 시를 표현했다고 한다. 직접 시도 쓰셨지만 그건 공개하지 않고, 그것을 이미지로 구현한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프린트할 때마다 똑같은 작업물이 나오는 것이 아닌, 랜덤하게 나오더라는 것.
생각해 보면 그동안 디지털 기술이 '복제'라는 점 때문에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랜덤'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현상이 발생한다면 예술적 가치를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조각시는 작가가 지은 시를 AI가 이미지화하고 여기에 채색을 더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은 타인의 기억을 나의 기억으로 만드는 과정이자 생명을 잃은 기억을 살아 있는 기억으로 소생시키는 의식이기도 하다. 작가는 수많은 데이터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AI와의 공동작업 과정에서의 다양한 관계 설정을 통해 이에 대한 질문을 구체화 한다. 이는 개인의 데이터, 즉 나의 기억의 주인은 과연 나 자신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 온다._갤러리 508 작품 소개 중에서
최근 인공지능에 관해 리처드 왓슨의 <인공지능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를 리뷰하면서 기술 발전에 대한 우려와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살고, 사랑하고 생각할 것인지를 생각해 봤다. 더불어 어차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헌데, 문화 예술 영역에서 이토록 자연스럽게 AI와 공존할 수 있다니. 더이상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표현하는 언어가 확장된 셈이 아닌가.
AI가 구현해낸 디테일 수준! 허락을 해주셔서 초근접 촬영을 해봤다. 작은 공간이지만, 전시가 매우 흥미로웠다. 아직은 예술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알 수 없지만, 새로운 활로일 수도 있다.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이 변화해 가지만, 여전히 재평가되는 시기도 여러 번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 AI와의 협업은 분명 의미가 있고, 미래를 향한 좋은 시도가 아닐까 한다.
특이점을 이해하게 되면
지나간 과거의 의미와 미래에 다가올 것들에 대한
시각이 바뀐다.
특이점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보편적 삶이나 개인의 개별적 삶에 대한 인생관이
본질적으로 바뀐다.
<특이점이 온다> 레이 커즈와일 P24
시와 관련한 선곡을 하려다가 이 영상의 색감이나 분위기가 좋아서 올려본다. 조각미남 아니, 조각시 같은 영상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로 만든 영상에서 느껴지는 아날로적인 따스함, 시를 읊조리는 순간들이 몽환적이면서도 은은하게 시각과 청각을 함축하고 있다.
작가 박제성은 서울대학교 미대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의 왕립미술학교(RCA)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과 런던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고, 사치 갤러리와 코리안 아이, SeMA 미디어시티 비엔날레, Arts Electronica 전시에 참여하면서 미디어 예술가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2010년 중앙미술대전 대상, 2016년 VH 어워드 그랑프리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조소과 교수로 재직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_갤러리 508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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