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by 서린

아이야.



너희들에게 무슨 말을 할까 무슨 글을 먼저 남길까 생각을 했어.

어떠한 말보다 어떠한 글보다도 수도 없이 더 많이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서 사랑의 메시지를 가장 먼저 전해.


너무 위대하고 아름다운 말이지...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3년 전쯤이었을 거야.

둘째 네가 태어나고 돌이 지날 무렵이었을까.

삶의 유한함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했어.



너희가 너무 어린데 내가 없다면 어떨까 생각을 해보니 엄마의 사랑을 어떻게든 더 많이 전하고 남겨야겠다 싶었지. 너희들 각자 메일 계정을 만들어서 글을 가끔 보내기 시작했어. 걸어가다 문득 또 생각이 날 땐 사랑한다고 녹음해서 그날의 생각을 떠올리며 메시지도 남기고는 했지.



기록을 남길 당시엔 미국이었는데 그때 우리 도심에 살았거든.

중심가로 가려면 20-30분 정도 걸어 다녀야 했어.



볼 일을 보러 나가거나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Walnut street, Chestnut street, Pine street, 18번 가 20번 가 골목골목을 걷는 동안 너희가 생각날 때 엄마는 엄마의 생각과 사랑을 메모에 담거나 녹음했단다.



사랑을 더 많이 표현하고 전해주자 다짐했는데 문득 지난 3년을 돌이켜보니 생각만큼 행동으로 표현을 더 못해줬나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네.



그런데 늘 이상이 높은 엄마라 지금의 나의 모습에 부족함을 느끼지 말고 충분함을 느끼자 다짐하거든. 엄마는 어쩌면 너희를 더 사랑하기 위해 지난 3년 간 엄마를 가장 깊이 사랑하는 데 몰두했던 것 같아.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그 마음이 더 넘쳐흘러 주변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말이야.




처음에는 사랑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했어.



서른네 살이 될 때까지는 사랑의 정의에 대해 깊이 있게 고찰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막연하게 감정과 결부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해.

두근거림, 심장이 터질듯한 느낌,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것 같은 느낌.. 그런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때의 생각은 알 수가 없네.



너희들을 낳고 나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어.


사랑이 뭘까? 사랑은 행동일까 말일까? 행동은 그럼 어디서 나오는 걸까? 여유? 행동이 심리적, 물리적 여유 없이 가능할까? 그렇게 바라본다면 사랑도 특권인가? 여유를 가진자의 특권? 기력이 더 많이 생기면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사랑한다 말해주고 더 많이 웃어주고 뽀뽀해 주고 그런 게 사랑일까? 그럼 그런 여유를 가지려면 물질이 먼저일까 마음이 먼저일까? 특권이라면 더 많이 더 널리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나갔지.





생각과 말은 사랑을 외치지만 너희 둘을 낳고 엄마의 삶은 조금 벅찼어.



너무 정신없는 외부 환경 안에서 엄마 스스로를 잃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 근데 막상 정신이 없었던 것은 엄마 마음이었지. 그러고는 문득 엄마는 오랫동안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어. 특히 부모님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나를 찾기 이전에 그들의 마음에 더 귀를 기울인 것 같아. 부모님이 행복한 게 좋았어. 그래서 순간순간 사랑과 인정, 행복의 감정을 나 자신이 아닌 상대방으로부터 얻어내고자 나를 위한 선택보다는 타인을 기준 삼아 살아온 게 아닐까 싶었지.




근데 돌이켜보니 엄마는 대단한 착각을 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어. 부모님은 엄마가 엄마를 버리고 당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라고 한게 아냐. 단지 방법을 몰랐던 것일 뿐이야. 그들이 택한 최선의 방식은 엄마를 믿고 기다려주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들이 무조건 나서서 돕고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자식들이 잘못될까봐 뒤처질까봐 두려워 온실 속에 엄마를 고이고이 보호해주셨지. 알고 보면 너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어려운 시대를 거쳐 살아왔기 때문에 '자아'를 찾고 '자아를 실현'한다는 것은 시대적으로 소수만 누릴 수 있는 매우 큰 특권이자 사치였을 수도 있어.



가난과 성공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았던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어쩔 수 없이 그 두려움을 우리에게 전해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 그 두려움을 마주하고 수용하고 받아들여 자신에게 통합하기도 전에 해결책을 찾아야 했어. 빨리빨리 해결책을 찾고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서 개선해 나가고.




그렇게 해서 현상을 '문제'로 바라보고 해결책과 개선에만 집중했던 그들은 대단한 성장을 일구어 냈어. 빠른 경제성장의 이면엔 놀라운 해결방안과 엄청난 불안이 깔려있었지. 그런데 이제 시대가 변했어. 그들만큼 큰 두려움과 불안을 가지고 살 필요가 없는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엄마는 윗 세대로부터 전달받아 온 문제해결방식에 너무나도 익숙해졌어. 엄마 자신의 불안 감정을 마주한 적도 없이 마냥 긍정의 이성을 가동하며 문제를 해결하며 살았던 것 같아. 그래서 말이야 엄마는 너희들을 낳기 전까지 엄마는 늘 밝고 긍정적인 줄만 알았어! 두려움과 불안은 뭔지도 잘 모르고 그냥 '에잇 괜찮아.' '이 정도쯤이야.' '할 수 있어.' '하면 되지.' '그냥 하는 거야' 이런 마음으로 많은 성공 경험을 쌓았지.




그런데 그렇게 엄마가 오랜 시간 동안 엄마 안에 외면했던 두려움과 불안이 결국 엄마에게 제대로 찾아왔어.



'이 봐. 날 좀 돌보라고. 외면하지 말고 돌봐야 할 때야. 이성의 힘. 긍정의 힘으로 덮고 누르지 마. 나의 존재도 인정해 주란 말이야.'라고 외치면서 말이야.



엄마가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탓에 상처가 곪는 지경에 이르렀지. 감사하게도 항상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기댈 곳이 있었던 엄마는 더 이른 나이에 마주했어야 할 다양한 감정들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너희들을 낳고 나서야 마주하게 된 거야. 감정들을 마주한 엄마는 힘들었지만 너무 감사한 것은 이제서라도 제대로 돌보기 시작하니 얼마나 다행이야. 너희들이 이렇게 어릴 때 마주해서. 그래서 더 엄마로서 중심을 잡고 너희를 키울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정말이지 얼마나 다행이야.



더 이상 세상에 휩쓸리거나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생기기 시작했거든. 아예 흔들리지 않는 꼿꼿함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야. 이런 흔들림 저런 흔들림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단단한 무게중심을 이제라도 가지려고 노력하니 하늘이 주신 기회에 얼마나 감사할까. 너희들의 앞날에 이렇게도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데 말이야.




어렵다고 생각했던 길도


결국


엄마를 더 엄마답게

엄마 자신을 찾으라고

엄마를 살린 길이더라.




근데 서른일곱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랑의 정의에 처음으로 눈을 떴네 ^^



스캇 펙이라는 학자가 이렇게 말해.

엄마가 가장 와닿는 정의야. 아직은 엄마 스스로 '사랑'을 정의 내리기엔 경험이 짧아 다른 사람의 정의로 대신할게.



'자기 자신이나 또는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



엄마는 이 의지가 정말 강하더라.

양가 부모님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너희들의 아빠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리고 너희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엄마 자신을 확대시켜나가고 싶어.



그 길이 조금 힘들긴 한 것 같아.

힘들어서 어쩌면 '나답지' 못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게 엄마다운 인생이더라.


엄마가 느끼고 받아온 수많은 사랑의 힘으로 엄마라는 울타리 안에서 머물지 않고 엄마 답지 않은 모습을 바라보며 점점 더 성장해 나가고 확장해 나가고 발전시켜 나가려는 그런 의지.



그게 엄마가 행하는 사랑의 방식이야.


부모님을 위해서

너희들의 아빠를 위해서

너희들을 위해서


아니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나 자신을 위해 나를 확장시키려고 해.


진짜 사랑을 위해서 말이야.


엄마가 엄마 스스로를 괴롭히고 살았고, 부모님이 엄마를 괴롭힌다고도 생각했어. 아빠와의 갈등도 있었고. 너희를 키우는 것도 벅찼지. 근데 그 모든 과정은 엄마를 성장시키는 일이었어.



그리고 엄마는 깨달았다?



엄마는 힘든 길을 택하는 사람이라고.

엄마는 엄마 스스로를 엄마 주변 모두를 더 깊게 더 많이 더 널리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으니깐.





개미만 봐도 심장이 콩닥거리는 엄마가 너희를 낳고 더 강인해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니. 우리 미국에서 살 던 집에서 쥐가 나왔는데 엄마는 그때 느꼈던 공포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단다. 바퀴벌레가 나와도 늘 누군가의 등 뒤로 숨었지. 둘째 너를 임신 중이었는데 그 공포심이 얼마나 전해졌는지... 너는 아주 어린 아기 때부터 다양한 생명체를 보며 긴장했어. 두려워했고.



그런데 엄마는 두려움을 억지로 이기는 방식이 아닌 사랑의 방식을 택하려고 해.

나는 개미보다 강하다!!!! 쥐보다 강하다!!!!! 식의 정신 승리가 아닌 그들을 소중한 생명으로 바라보려고 이제부터 노력해.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어려울 땐 혹은 새로운 시도나 도전이 두려울 때 '난 할 수 있다!!!!' '두렵지 않다!!!!'를 그간 속으로 외쳤어. 그것보단 이제 두려움에 취약한 것이 당연한 엄마 자신을 사랑하려고 해.



'괜찮아.'

'당연히 그럴 수 있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줄게.'

'준비되면 한 번 해보자. 못해도 돼. 시도해 보는 게 어디야.'

'너는 있는 그대로 이미 충분해.'


이런 말들로 말이야.

그리고 그런 말들로 너희를 키우고 싶네.




작년까지만 해도 길거리의 비둘기를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봤어. 병원체를 지닐지도 모르는 더러운 동물이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이젠 소중한 생명으로 바라보려고 해. 완전하다 말할 수 없지만 엄만 베란다에 비둘기들이 놀러 와도 이제 그냥 아무렇지도 않아!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바깥 베란다에서 퍼드덕 거리는 소리에 놀라 심장이 쿵쾅쿵쾅 거렸는데 말이야.




기쁘고 경이로운 이야기 하나 해줄까?


오늘 아침엔 비둘기가 베란다 인조잔디 위에 알을 낳고 갔단다!!



엄마가 너희들을 불러 이것 좀 봐!! 하고 우리 신기하고 경이로운 눈으로 비둘기 알 구경했지?

그리고 순간 비둘기가 다가오자 우리가 있으면 비둘기가 자신의 알이 공격당한다고 느낄까 봐 스트레스 주지 말자고 우리 방으로 다시 들어왔지. 그리고 그때 할아버지가 동일하게 비둘기를 지켜주려고 너희를 재빨리 방 안으로 들여보냈어. 엄마는 할아버지 행동과 엄마의 마음이 동시에 일치하는 것을 보면서 부모님께 생명의 소중함과 사랑에 대해 이토록 많이 가르침 받았구나 싶어 정말 흐뭇했단다.




누군가 그러더라 비둘기가 알을 낳으면 주위가 더 지저분해지고 다른 비둘기까지 모이게 되고 더 곤란해진다고. 그래서 빨리 알을 치워야 한대.



엄마는 그 말도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또 불안이 찾아온 것 있지.

방 안에 비둘기가 들어오는 상상을 하니 끔찍하더라. 아직은 자신이 없어.



근데 말이야.


엄마는 이제 남들이 하는 목소리에 불안해지기 전에 선택을 하려고 해.

최초의 감정은 선택할 수 없어도 감정을 지속시킬지 말지는 엄마가 선택할 수 있거든.




예전에 엄마라면 불안에 떨다가 어떻게 해야 하나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다녔을 거야. 일단 혼자 선택을 할 줄 모르니 할머니, 할아버지나 너희 아빠 언니 친구들에게 바로 소식을 전하고 인터넷을 검색했겠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나 이것은 무슨 사태인가 하고 말이야!!!



그런데 엄마는 이제 스스로 판단력이 생겼단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내 감정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힘이지. 이런 고민쯤은 엄마 방식으로 처리할 일인거지.



생명은 여전히 엄마에게 소중해.

알이 부화할 때까진 지켜보려고 해. 어떻게든 비둘기를 도와주고도 싶지만 그 어떠한 도움보다도 가장 큰 도움은 비둘기를 믿는 것 같아. 알아서 잘 알을 품고 부화를 시키겠지 싶은 마음 말이야.



그냥 지나치게 관심 두거나 방해하지 말고 믿고 지켜보자 싶어.

너희들 기억 속에서 사라질 하나의 해프닝이겠지만 이 안에서 너희에게 생명의 소중함도 가르치고 만일을 위한 대비도 가르칠 거야.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 받아들임과 내보내기, 들숨과 날숨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나 순서가 있어. 자연은 항상 생명, 탄생,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것이 먼저고 그 뒤에 소멸을 하는 것 같아. 생성이 곧 소멸이기도 하지만. 이 가볍고도 어려운 말이 이해되기까지 엄마는 오랜 시간이 걸렸단다.




만일 사태가 발생한다면 상황을 지켜보다 행동을 취할 거야. 이웃까지 피해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여기까지가 엄마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더라. 그냥 일단은 좀 지켜볼 거야. 그때까진 아무 생각도 아무 불안도 갖지 말기로 결정했어. 그때까지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너희와 매일같이 기쁨을 나누기. 하지만 최악의 가능성은 염두에 두기. 생명에 기뻐하기. 모순적인 이 두 감정을 함께 받아들이기. 그게 엄마의 몫이다.



이렇게 도심 속 한복판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 있는 곳에 생명이 잉태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 일이니!! 두렵기도 하지만 말이야.





엄마는 이제부터는 엄마를 진짜 사랑할 자신이 있어.

당연히 아직 완전하진 못하지 이제 막 깨닫기 시작했고 출발이니깐.

어려운 길이 될 거야.




근데 확실한 믿음이 생겼어.

그곳에 갈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

동시에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내가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면 되겠다는 믿음.

그리고 때론 자신감이 때론 불안함이 서로 번갈아 찾아올 테고 거기에 너무 빠져들지 않겠다는 믿음.




너희도 너희 자신을 찾는 여정을 떠나기를 꼭 바란다.

그렇게 너희를 진짜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출발하기를 바라.




너희를 키우는 것은 엄마가 아닌 삶이야.

삶이 너희에게 너희를 찾는 법을 알려줄 거야.

엄마는 힘들 때마다 옆에 있을 거고 믿어주고 지지해 줄 거야.



엄마가 옆에 없더라도 엄마가 이렇게 적어 놓은 몇 마디가 도움이 되었으면 해.


아참. 엄마의 말은 엄마에게서 나온 것들 아닌 것 당연히 알지?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위해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전해놓은 말들이야. 햇살과 풀잎 나무와 새들을 포함한 대자연이 전해주는 이야기고. 엄마의 부모님으로부터 조부모님으로부터 아빠로부터 주변에서 받은 모든 사랑으로부터 나온 말이고. 너희들의 역할은 귀를 기울여 세상 모든 사람들, 자연, 사물, 현상의 소리를 찾아 듣고 사랑을 느끼기만 하면 돼.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사실 조심스럽기도 해.

엄마의 말을 전달하려고 할수록 이 말들은 너희에게서 멀어질 테니깐.



글로 담아두면 일상에서는 그래도 엄마가 너희에게 훨씬 말을 덜할 수 있겠지?


그냥 엄마는 엄마를 사랑하는 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행동으로 보여줄게.

너희들이 스스로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가 되면 엄마의 말들을 각자 알아서 찾으면 될 테야. 글로 남김으로써 직접 개입하지 않으려는 엄마의 또 다른 노력이다. 사랑으로 너희를 기다려주기.



자신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 상태조차 너무나도 온전하고 아름다운 거 잊지 말아라.

항상 사랑으로 바라봐주고 믿어주도록 노력할게.

그리고 언젠가는 너희가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무한한 믿음으로 기다려줄게.

이건 엄마가 엄마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




엄마는 너희들을 사랑한다. 너희는 존재만으로 고귀하고 온전해. 자신을 찾았다고 해서 찾지 못했다고 해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절대 아니야. 엄마는 엄마를 사랑하기 위해 엄마가 걸어오고 택한 방식을 나누는 것뿐이고. 사랑에는 수만 가지의 길이 있겠지. 너희가 마음에 드는 길을 택하고 따라라. 그리고 사랑해. 자신을 사랑하고 믿고 소망해라.




우리는 그저 삶이 주어진 때 주어진 삶을 사는 거야.

그리고 감사해하면 돼. 주어진 삶에.



지금은 엄마가 언어로 사랑을 표현하지만 엄마의 사랑이 보이지 않는 곳에 계속 떠돌아다닐 거야. 공기와 공간 보이지 않는 모든 곳에 떠다닐 거야. 엄마는 햇빛으로 나무로 비바람으로 너희들 옆에 계속 있을 거다.




엄마 선생님이 들려주신 말인데 "맑은 하늘은 늘 그 자리에 있어. 구름에 가려졌다고 해서 맑은 하늘이 없어지는 게 아니야 구름 뒤엔 언제나 맑은 하늘이 있거든"



너희 자신 안에 맑은 하늘을 찾을 거라 믿고 사랑하기를.

그게 엄마가 해줄 말의 전부야.



구름은 걷어들일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맑은 하늘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존재야.

구름이 하얗다 어둡다 하는 것도 모두 우리의 판단이고.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은 없어.

구름은 그냥 그저 구름이야

맑고 투명한 눈을 항상 지니길 바라.

경이로운 눈으로 구름 그저 온전히 대하기를.




엄마도 갈길이 아직 멀어!


하지만 엄마의 희망과 소망이 너희에게 닿기를.

엄마 안에 닿기를.

그 소망 안에 믿음과 사랑이 늘 함께한다는 것을.




위에 적은 모든 이야기도 실은 전부 부질없음을.



사랑해.


이 한 마디에 위대한 우주의 영혼이 담겨있음을 전해.






엄마는 오늘도 샤워부스 유리에 서린 습기에 하트를 열개나 그려주고 손 잡고 걸어갈 때마다 너희들에게 사랑한다 말해 주고 안아주고 뽀뽀해 줄 거야. 잘못을 했으면 혼도 내고 무서운 표정도 짓고 너희 마음도 헤아려주고 서운함도 받아주고. 지금으로선 그게 엄마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해.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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