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을 믿지 마렴

by 서린

아이야.





엄마가 '진짜 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라고 했지?


사랑을 찾아 나서는 길.

진짜 나를 사랑하기 위한 방법.



이런 방법들이 아직은 하나도 정리되진 않았지만 떠오르는 대로 하나씩 말해볼까 해.

말하다 보면 엄마가 또 이 생각들을 좀 더 먼 걸음에서 바라볼 수 있겠지?




그 첫걸음은 말이야.



내 생각을 믿으면 안 돼.

그 말은 보이는 것을 믿으면 안 돼.

그런데 더 이상한 말인데

믿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확실히 믿어야 해.

믿어야 믿지 않을 수 있어.





믿어라.

믿지 말아라.

잔소리로 들린다면 사실 듣기 싫겠지?



그럼 이렇게 한 번 기억해 봐.


뭔가가 너무 좋아서 심장이 두근대서 "나 이거 너무 좋아!!"라고 확신이 들거나

뭔가가 너무 싫어서 심장이 쿵쾅대서 "나 이거 너무 싫어!!"라고 확신이 들 때


이럴 때.


잠깐만 그런 너를 바라봐.

그리고 질문을 던져봐.


내가 하는 이 생각이 진짜 맞을까?

하고 말이야.






자 네게 보이는 것을 믿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왜 진짜 너를 찾는 길인지 엄마 생각을 나열해 볼게.



너는 세상을 보고 느낄 거야.

그리고 보는 대로 생각할 거야.

그리고 너의 생각을 믿을 거야.

그리고 행동하겠지.



보고 - 생각하고 - 믿고 - 행동하고



네가 무언가를 본다면

즉 보고 맛보고 느껴보고 들어보고 맡아보고 등의 오감을 활용한 뒤에


생각하겠지?

좋다 혹은 나쁘다.

긍정 혹은 부정.


긍정 혹은 부정 둘 중 하나의 생각은 강화되어 믿음을 만들고


믿음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보고 - 생각하고 - 믿고 - 행동하고

이 네 단계가 계속 반복이 되면



믿음과 행동 사이에 강한 연결이 생겨.

믿음은 신념이 되고 그 신념은 다시 정체성으로 이어질 수 있어.

스스로에게 부여한 정체성이라는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되지.


그 신념과 정체성이 강할수록 세상을 너만의 시각으로,

왜곡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돼.



그런데 말이야!!!!!!


진짜 '너'는 네가 생각하고 믿고 있는 정체성이 아니거든.

그렇기 때문에 진짜 너를 찾으려면 믿지 말아야 해.




예를 들어볼게.



너희는 지금 둘 다 브로콜리를 매우 잘 먹는 편이야.

당연히 처음에는 너희들이 좋아하지 않았지.


처음 브로콜리를 접한 너는 뱉었어.

아주 어린 너는 '브로콜리는 맛없는 음식'이라고 생각했겠지?

브로콜리 = 부정적

이렇게 말이야.



그 뒤로 엄마가 몇 번 더 브로콜리를 줬는데 계속 맛이 없다고 느낀다면

생각이 믿음으로 바뀔 거야. "브로콜리는 정말이지 맛이 없는 음식이다."라고.


그 믿음이 계속 계속 강화되면 네가 스스로 정체성을 형성할 수도 있어.

"나는 브로콜리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면서 점점 더 브로콜리를 거부할 거야.


그런데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어. 처음엔 확신을 가지고 브로콜리를 준 것은 아니었지. 책에서 똑같은 음식을 최소 열다섯 번은 다르게 요리해서 주면 먹는다고 쓰여있었거든. 그냥 그 말을 믿고 시도했을 뿐이야. 너희들이 브로콜리를 접시에서 빼는 날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도 줘보고 저렇게도 줘보면서 계속 줬지.



그러던 어느 날 하루!


그날은 왜 그랬을까? 모르겠지만 너희들이 배고픈 날이었을까?

어떤 맛이든 받아들일 수 있었던 날이었을까?

브로콜리를 참으로 맛있게 먹더라.

그날 너는 느꼈겠지?


"에? 브로콜리 나쁘지 않네? 맛있는데?"

그 하루 너의 생각과 믿음이 바뀌었을 거야.


그렇게 너희는 새로운 생각과 믿음을 가졌겠지.

"브로콜리는 제법 맛있을 수도 있는 음식"이라고.


그 뒤로도 몇 번 더 시도해 보고 나쁘지 않은 긍정적 경험을 하고 나면

브로콜리와 함께 형성된 정체성에 대한 믿음이 변하지.


"나는 브로콜리를 싫어하는 아이"에서

"브로콜리를 잘 먹는 아이"라고 믿을 수도 있고 "나는 맛이 별로 없어도 건강에 좋은 브로콜리를 잘 먹는 아이"라고 믿을 수도 있고 "나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아이"라고 믿을 수도 있고.



이런 믿음은 너의 다음 행동을 변화시키게 돼.

만약 네가 너를 "브로콜리를 싫어하는 아이"라고 정체성을 강화시키고 다시는 브로콜리를 잘 안 먹는다면 앞으로도 거의 시도할 일이 없어지겠지. 브로콜리를 마주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정체성은 강화될 테니 말이야.





엄마는 엄마 삶의 신념을 단단히 세우고 무너뜨리고 세우고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도전을 좋아하게 되었어.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판단하지 않는다."는 신념도 유지해 왔고.

그래도 엄마는 여전히 미숙하기에 빠른 판단, 섣부른 판단도 끊임없이 자연스레 일어나지.

또 시간과 에너지, 자원이 무한하지 않아 모든 것을 또 직접 다 해볼 수는 없더라^^



한계에 부딪히면 때로는 너무나도 힘든 순간 다 포기하고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어.

근데 그걸 좀만 참고 넘어서잖아? 세상에 말도 안 될 정도로 그 경험이 좋아지는 거야.

그 경험 안에서 엄마의 시야가 넓어지는 새로운 경험을 했거든.



엄마의 사고와 한계를 확장해 나가면서

오랜 시간 엄마가 가졌던 모순을 이제야 조금씩 수용할 수 있게 되었어.

그 과정 속에서 진짜 '나'를 찾을 수도 있겠다. '나'를 사랑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고.



진짜 '나'는 결국 나를 세우고 무너뜨리는 과정의 무한반복이며 그 끝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투명함이 아닐까 짐작하는데... 아직은 그 먼 곳엔 다다르지 못해서 아는 바가 여기까지네...




그러니 네가 최초로 가진 생각들 믿음들을 강화시키는 것도 좋지만 반대의 시도도 해봐.

그런 시도가 삶의 반복되다 보면 너는 점점 투명해질 것이야.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이 없어지지.

좋은 것들은 어느덧 좋아지지 않을 수 있고

싫었던 것들은 어느새 좋아질 수도 있어.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어느덧 잘하게 되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어느덧 부족한 면이 되어가고

강점이 약점이 되고 약점이 강점이 되고

해야 할 것이 하고 싶은 게 되고 하고 싶은 게 해야 할 것들이 되고

소망이 사명이 되고 사명이 소망이 되고

자꾸 그렇게 계속 서로 상반되는 것들을 계속 시도해 나가면

믿음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 같아.




그렇게 무너진 경계 뒤에 진짜 '네'가 있어.






만약 네게도 뭔가 두려운 상황, 힘든 상황이 닥친다면

상황에만 집중하기 전에 '너'라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믿음을 형성해 왔는지 꼭 너 자신을 먼저 들여다봐.


위에서 말한 대로


내가 하는 이 생각이 진짜 맞을까?

하고 말이야.




나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이 상황을 힘겹게 바라보고 있지?

내가 바라보는 이것은 내 믿음과 다져진 신념으로 바라보는 것일 텐데 나의 믿음과 신념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인가? 왜 그런 믿음을 가졌지?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질문해 봐.




꼭 질문을 던졌으면 좋겠다.


상황을 탐구하기에 앞서 이 상황을 마주한 너를 탐구해 봐.



이걸 계속하다 보면 부정적인 경험에서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경험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 같아.

좋은 것에 대한 믿음을 굳이 깰 필요가 있을까라고 질문할 수도 있겠지만

네가 좋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믿음과 나쁘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믿음은 본질적으로 같은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어.



너는 더 이상 네가 잘하는 것들로 좋아하는 것들로 너를 대변하지 않게 되지.

너는 그저 너니까.




그때가 되면 평안하고 고요해 질거라 믿어.

좋아서 심장이 두근대는 너 스스로를 바라보며 흐뭇해하고

싫어서 심장이 쿵쾅대는 너 스스로를 바라보며 연민의 눈빛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모르겠으면

생각 속에서 헤매지 말고 손으로 적어봐.


에너지를 주위에 전달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행동이지만

시간을 내서 너 혼자 하나씩 차근차근 적어나가 봐.



뭐가 잘못되었지? 누가 잘못했지? 혹은 뭐가 좋았지? 누구 때문에 좋았지?

말고

나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상황이 힘들거나 좋았지? 하고 말이야.







믿음이 고착되면 행동을 바꾸기가 힘들어.

행동을 바꾸려면 자꾸 너의 생각을 의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해.


왜 바꾸기 싫은 행동을 바꿔야 하냐고?

굳이?



그게 진짜 나를 사랑하는 길이라는 것을 엄마가 어렴풋이 알게 되었으니깐 말이야.

진짜 나는 고요 속에 있는 것 같은데

엄마도 갈 길이 구만리라 그냥 아는 만큼만 말해 본다.



원래 뭣도 모르면서 엄마처럼 말이 많은 사람을 조심해야 해.

모르니깐 떠드는 거거든.





진짜 아는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고요할 거야.









오늘은 엄마도 잘 모르는 어려운 말을 해서인지 머리가 아프다.

고요 속으로 그만 들어갈게.




오늘도 우주 멀리까지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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