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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엄마 Mar 26. 2023

워킹맘의 연차 사용법

그 많은 연차가 마이너스가 되는 마법


아이를 낳기 전과 후 소소하게 달라진 것 중 하나는 내 연차 사용법이다. 아이가 있기 전는 당시 연차 수당도 나오지 않았던 회사에서 매 연말, 쓰지 못한 연차 개수를 세며 개탄하곤 했다.


그동안 회사의 복지도 향상돼 연차 수당 제도가 생겼지만, 나는 작년 4월 복직하여 12월이 채 끝나기도 전 연차 개수 -5개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9개월 동안 무려 여름휴가 5일 포함  총 22개의 연차를 쓴 것이다.




복직 전 한 가지 다짐을 했다. 회사에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이준이를 절대적 우선순위에 두겠다고.


남편의 회사보다는 우리 회사가 연차 사용이 자유로웠다. 게다가 남편은 다른 회사로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현 직장에서 7년째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연차를 쓰는 게 여러 모로 부담이 덜했다.


돌이 갓 지난 이준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다시 시작하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달라진 가계 사정과 회사에서의 자리 유지를 위해 복직을 해야만 했고, 양가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준이가 열이 난다고 연락이 올 때는 물론이고, 조금만 기침을 한다거나 콧물이 흐른다는 연락을 받으면 연차를 쓰거나 출근했다 해도 반차를 던지고는 이준이와 병원에 다녀와 가정보육을 했다. 맞벌이라 아이에게 신경을 안 쓴다 생각하고 이준이에게 조금이라도 덜 해줄까 봐 그랬고, 아직 이른 개월수에 어린이집에서 12시간을 보내야 하는 이준이가 안쓰러워 더 그랬다.


하루 정도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여유를 내어 연차를 내 시간으로 사용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아이가 아플 때 사용할 수 있는 연차가 하루 줄어드는 것이니 선뜻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아이만을 위한 연차를 쓰다 보내 체력도 함께 바닥이 났다. 몸에서 적신호가 계속 왔었는데, 복직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한 자릿수로 남은 연차를 아끼려고 안 쓰고 버티다 처음으로 나를 위한 연차를 썼다. 어린이집은 코로나가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 집단 면역이 형성되었을 것이고, 남편이 이직을 하여 출근 시간이 늦어져 웬만한 병원은 등원 전 남편 혼자 케어가 가능할 것이란 생각에 죄책감을 뒤로하고 어렵게 한 결심이었다.


오랜만에 느지막이 이준이를 등원시켰다. 그동안 간이 없다는 핑계로 가지 못했던 병원에 들러 약꾸러미를 한가득 안고 집에 도착다. 오늘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쉬리라 다짐했건만 이준이가 자는 방이 너무 더러운 것 같아 한참을 치우 닦았다. 


이불을 정리하며 이준이가 없으면 안 잔다며 꼬옥 안고 자던 자동차 장난감을 보고 빙그레.


바닥에 널브러진 이준이의 옷을 보며, 어젯밤 자기 전 옷을 갈아입기 싫다고 기저귓바람으로 거실을 뛰어다니던 이준이의 모습을 눈에 그린다.


한 숨 돌리며 점심을 먹고 내가 좋아하는 미드를 볼까 싶어 리모컨을 들면, 리모컨에 붙여진 '김이준' 이름이 찍힌 스티커에 또 이준이를 떠올린다.


늘 연차도 썼는데 저녁은 배달음식 말고 오랜만에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에, 맞벌이를 핑계로 제대로 해보지 않았던 요리를 미숙한 손놀림으로 분주하게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집안 청소와 저녁 준비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이준이를 데리고 올 시간. 연차를 고도 이준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는 죄책감에 평소보다 이준이를 데리러 조금 일찍 을 나선다.


"똑똑-, 이준이 엄마예요."


어린이집 문 앞에서 노크를 하고 이준이를 기다린다. 문이 열리자 엄마를 보고 활짝 웃는 이준이가 보인다.

 

"오늘은 엄마 안고 집에 가자."


13kg인 이준이를 번쩍 들어 올리자 이준이가 개구진 소리를 내며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다른 아이를 데리러 온 조부모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이를 보고 "아, 애기 좋아하는 것 좀 봐. 엄마가 좋지, 그럼." 하며 웃으신다.


이준이를 안고서 어린이집에 보낸 이후 처음으로 깜깜한 밤이 아닌 하늘 아래 집으로 돌아온다.


병원 투어에 청소, 저녁 준비만 하다 끝난 것 같은 느낌이지만 뿌듯함이 려온다.


나를 위해 사용한, 이준이로 가득 찬 첫 연차가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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