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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고비 대신 운동복을 사줬다

by 여서

참 고약한 병에 걸렸다.

먹어서 살 쪄도 억울한데, 뭐 쫄쫄 굶어도 살이 찐다. 하루에 한 끼, 그것도 소량을 먹었는데 매일 몸이 불어나고 있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 호르몬 문제란다.


"20kg 찌신 분들도 많아요. 이 정도는 양반이에요."

의사의 말이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임신 때보다도 더 불어난 몸에 나는 그저 당황스럽기만 하다.


인바디 기계가 팩트로 내가 '비만'이라고 알려줬다.

몸무게가 급증한 것은 물론 체지방률, 복부비만, 근감소 모든 것이 다 안 좋다.

'눈바디'로 알고 있었지만 종이로 확인사실 당하니 또 한 번 충격이었다.


어쩌면 인바디 수치보다 눈바디가 나를 더 좌절스럽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옷장을 열 때마다 한숨부터 나온다.

예전 옷이 안 맞는다. 억지로 입어도 전과 확연히 다르다.

호르몬으로 인해 묘하게 달라진 내 몸, 사람들은 비슷하다고 해도 나는 안다. 태가 다르다는 것을.


44반~55 사이즈를 유지했던 나인데, 늘 말랐다는 소리를 듣고 임신 때도 딱히 옷을 사지 않았는데 이제는 제일 큰 사이즈(XXL) 옷을 검색하고 있다. 미팅이 잦은 직업이라, 최대한 헐렁한 옷을 입기 위함이다. 가리기 위해 사는 옷. 소위 현타가 오는 날들이 지속됐다.



그러다 내과에서 인바디 검사를 보더니, 혹시 '위고비'생각이 있으면 처방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한달에 몇 키로를 신속히 빼주는 마법의 약.

사실, 혹했다.


늘 즉각적인 해결을 원하는 나의 급한 성격과 맞아 떨어졌다.

빨리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서 이 기분 나쁜 '인생 최대 몸무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몇 주를 고민하던 나는

결국, 이렇게 하기로 했다.


위고비 대신,

그 만큼의 예쁜 운동복을 사주는 것으로 나를 달래기로.


오래 걸리더라도, 그냥 건강한 나를 장기적으로 만들어가보기로.


가을날의 여의도 한강공원. 2번 출구 '러너스 스테이션'에서 나왔다.

당장 잦은 출장과 외근, 무기력증으로 홀딩해두었던 헬스장을 풀고, 6개월을 더 등록했다. 근력운동 위주의 피티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큰 맘 먹고 새로 산, 예쁜 운동복을 입고.


"그 병에는 유산소보다 결국 근력운동이 필수예요!"라고 친절하게 추천해준 챗GPT의 말을 떠올리며,

요즘 매일 1시간 반씩 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은 내 오랜 루틴이지만, 이제는 살기 위해 더욱 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것도 장기적으로.

근력은 나의 무기력과 우울함과 박탈감을 치료해줄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이렇게 나에게 잘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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