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데,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지 몰랐다.
이렇게 수많은 고민과 걱정을 매 순간 마주해야 하는지도. 해사한 웃음과 당연한 일상을 지켜주기 위해
얼마큼의 노동이 필요한지, 키우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큰 노동은 '잠 줄이기'다.
신생아 때부터 잠이 없는 아이 덕분에 나는 늘 새벽 1~2시에 자야 한다. 아침형 인간인 내가 올빼미형으로 바뀐 것이니 엄청난 변화가 틀림없다. 결국 오전에 가장 생산성이 좋았던 나는 4년째 만성피로에 젖어 있다.
'일찍 재우면 되지 않냐'고들 한다. 우리 아이 기질을 모르시는 말씀이다. 아침부터 등산을 가고, 워터파크에서 하루 종일 놀아도 낮잠 없이 밤 12시까지 버틴다. 상상도 못한 체력이다.
8시부터 재우러 들어가도 결과는 같다. 깜깜한 방에서 1시간 반은 기본, 2시간은 보통, 3시간도 꽤 된다.
침실을 나가겠다는 아이를 달래 차분한 대화도 해보고, 자장가도 불러보고, 자는 척도 해본다.
하지만 같이 옆에서 스르륵 잠드는 류(?)의 아이가 아니다. 오히려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엄마! 잠이 너무 안 와요! 일어나요!!"
상담센터 왈, '원래 이런 기질'이란다.
잠은 없고, 에너지는 많은.
심지어 매일 새벽에 깨서 30분을 우는 야경증도,
"그냥 그런 아이들이 있어요"라고 하셨다.
내 아이니까 받아들이라는 말.
내가 아는 누군가는 일 하고 돌아오면, 아이가 금방 자버려 볼 시간이 너무 없다고, 하루하루 아쉽다고 했다. 솔직히 공감하기 어려웠다.
나는 하원하면서부터 5~6시간은 족히 전념하기 때문이다. 퇴근 후 입 짧은 아이 여러 번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하다 보면 새벽 2시에 침대에 누운 나는 늘 너덜너덜하다.
그.런.데
이렇게 내 일상을 갈아내고, 나의 휴식시간을 아이에게 올인하는 데도, 나는 자꾸 부족한 엄마 같다.
매일매일 버티기만 하고 엄청 해주는 건 없는.
고작 자기 애 하나 키우면서 육아가 힘든 나도 밉다.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무언가 잘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져들 때도 있다.
....
이런 나를 위한 구체적인 루틴 하나가 있다.
매일 오전 일어나서 나를 다잡아주는 문장 하나를 억지로라도 쓰는 것. 주제는 '내 역할 칭찬하기'다.
사소하더라도 내가 누군가에게 한 역할에 대해 인정해주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지금 좋은 엄마임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나는 ~를 해준 좋은 엄마다.
오글거려서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무너질 때가 많기에 기계적으로라도 해준다.
오늘 아침 나는 이 문장을 적었다.
나는 ㅇㅇ이의 청결을 신경 쓰는 좋은 엄마다.
이 문장을 찾아내 적으면서 어제 최선을 다해 고군분투했던 내가 떠올랐다. 피곤해 지쳤는데도 거품목욕을 시키고, 노래를 불러주고, 뭔가 먹을 때마다 양치를 시켰던 나.
적고 나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하루하루 소모되기만 하던, 당연시 되던 찰나들을 인정해 주니, 당시 느꼈던 감정들마저 감싸주는 느낌이 들었다. 나름 노력했고, 잘 했다고. 나는 내 역할을 다 했다고. 이것은 남이 인정해 주는 것보다 훨씬 값진 것이었다.
이 역할 칭찬은, 꼭 부모가 아니어도 괜찮다.
좋은 딸과 아들이라도,
배우자라도,
고양이 집사라도,
모두 가능하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하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사실 그대로, 많은 것을 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너무 당연시하면
지친 몸과 마음은 알아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그러다가 아예 역할을 놔버릴 수도 있다.
채찍질 말고, 한 줄씩 적으며 하루하루 인정해 주자.
역할을 인정해준 만큼, 더 활기차고 타인에게 친절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