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둘 때 대책은 없었지만 자신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자신감이라는 건 작동이 될 가능성이 희박한 희망회로였을 뿐이었다.
첫 소설을 팔아서 지중해에 섬을 사겠다는 말은 (당연히) 농담이었지만, 그래도 1년에 한 권 정도 내다보면 시원찮은 밥벌이 정도는 하지 않겠냐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일단 1년에 장편 한 권을 쓴다는 건 (내 능력을 생각할 때) 거의 불가능했다. 게다가 무명작가가 소설로 밥을 먹겠다는 생각은 망상에 불과했다.
언젠간 만난 선배(?) 소설가가 이렇게 말했다.
“소설가는 정말 재미있는 직업이지요. 조건이 있어요. 소설로 밥을 먹겠다는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요.”
최악의 경우 1~2년 벌어 놓은 돈 까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말이야 느그 서장하고 어 직장생활을 23년을 했어. 워커홀릭은 아니지만 나름 (언제나는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열심히 일을 했고, 주식이나 도박으로 돈을 까먹지도 않았잖아. 집도 하나 샀고 지금까지 연금도 넣었지. 그래. 나도 사우나도 가도 어 돈을 쓸 자격이 있고 권리가 있단 말이지.”
물론 처음에는 까먹을 돈이 있다. 당분간 돈을 벌지 않아도 살 수는 있었다. 문제는 노후가 점점 불안해진다는 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스스로 돕기는커녕 전혀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나에게 뜻밖의 해결책이 찾아왔다. 그래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말은 믿는다.
하늘이 무너진 건 아니지만 꽤 짭짤한 구멍이 하나 생겼는데 그건 암이었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으면 받지 않았을 건강검진에서 암이 발견됐다. 수술까지 받았지만 아주 초기에 불과했다. 항암치료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의사는 말했다. (수술 뒤 1년 만에 진료를 보러 갔더니 괜찮다고 한다.)
수술 뒤에 운동도 열심히 하고, 살도 빠지고, 결정적으로 보험금이 나왔다. (세상에.) 거의 1년 연봉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그리하야. 특별한 죄책감 없이 1년을 먹고 놀았다. 첫 소설 <삼성동 하우스>에서도 지금도 돈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액수를 밝히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하다. (사실 야박하다.)
그렇게 이제 1년이 넘었다. 시간은 1년 연봉을 써버리는 속도만큼이나 빠르다.
이제 솟아날 구멍이 따로 생길 여지가 없다. 다른 암에 걸릴 수는 없지 않나. 그래도 혹시나 알아봤더니 이제 다른 암에 걸려도 진단 보험금은 없다고 한다. 암 말고 다른 질환은 가능한데... 그건 좀 그렇다.
방법은 하나다. 소설을 써야 하고, 그걸로 돈을 벌어야 한다.
다행히 쓸 거리가 생겼고, 쓸 기회를 얻었다. 그러면? 써야지. 열심히. 딴생각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