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냐 잘코프스키, <검은 파도 눈부신 태양> 독후감
이 책은 한 스위스인이 우울증에 걸리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고,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35살의 스위스 여자가 우울증에 걸린 이야기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충분히 존재의 가치가 있다. 우울증에 관한 '사실'보다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감정'을 진솔하게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이라고 하면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중증의 정신병으로 여길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게 뭔지도 모를 것이며, 어떤 사람은 우울감과 우울증이 같은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엄밀히 말해 우울증은 병이며, 단순히 기분이 우울한 상태인 우울감과는 다른 것이며, 혼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이겨낼 수 있는 가벼운 것이 아니다.
필자의 어머니는 최근 몇 년간 우울증을 호소한 적이 있다. 그것이 단순한 우울감이냐, 우울증이냐 하는 전문적인 구분을 받은 적은 없지만 한의사인 필자의 시각에서 6개월 이상, 꾸준하게, 중등도 이상의 우울감을 호소하는 어머니의 병명은 우울증이라고 할 만했다.
그것은 정말 굉장한 병이었다. 평생을 씩씩하게 살아온, 활기찬 분이 그렇게 우울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심지어는 엄지손가락만 한 담석이 여러 개 생겨 옆구리에 기절할 듯한 통증을 느낄 때도 '자살'이나 '죽음' 따위를 언급하지는 않았던 분이셨음에도 우울증 앞에서는 단숨에 생의 의지를 내려놓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주변에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있다면 내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한 말에 대해서도 공감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건지 조금도 모르겠다고 솔직히 이야기했다. 자기가 사는 세상에는 우울증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도 했다.
사실이다. 우울증을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우울증 환자의 기분을 이해할 수 없다. 매 순간마다 주변을 의심하고, 자신이 무언가 잘못을 했을 거라 생각하며, 그로 인해 자신이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좌절하는 그들의 기분을 말이다. 필자 역시 <검은 파도>를 통해 우울증 환자가 이런 기분이구나 하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을 뿐, 여전히 필자의 어머니와 저자를 포함한 우울증 환자의 실제 기분에 대해서 이론적인 것 외에는 알지 못한다. 사람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자기 마음도 알기 어려운데 남의 마음을 알기란 요원한 일이다.
어쨌거나, 최초에 직장 상사의 오랜 괴롭힘으로 인해 번아웃 증후군을 진단받았던 저자는 종래 우울증을 진단받게 되고, 그로 인해 알코올 중독에도 빠지며, 자살을 생각하며 얼마 간의 약을 삼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병을 이겨내겠다는 의지는 마음 깊은 곳에 두고 있었는데, 끝내 병원을 찾아간 그녀에게 의사가 이렇게 말한다.
잘코프스키 씨, 잘 들으세요. 이걸 혼자서 극복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혼자서는 안 돼요. 아무리 노력해도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다행스러운 이야기 두 가지를 전하고 싶다. 하나는 필자의 어머니가 최근 우울증을 많이 극복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자꾸만 무엇을 까먹고,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고, 죽고 싶은 생각만 든다고 하시더니 요즘은 전혀 그런 소리를 하지 않으신다. 또 하나는 저자가 우울증을 많이 극복한 것으로 책의 결말이 난다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엔 두 사람이 우울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한 것이 있었다. 많은 것을 내려놓는 것. 어떠한 성취보다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것. 결국 그러고 보면 우울증은 너무나 이루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지친 뇌가 '이제 그만 쉬자'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