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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Sep 21. 2016

스페인 라만차 지방의 레전드 <돈 키호테>를 읽다

미겔 세르반테스, <라만차의 비범한 이달고 돈키호테> 독후감

얼마 전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중 장거리 이동시에 주로 책을 읽는 나는 이번 여행에서는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고민했다. 스페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스페인 소설'을 가장 먼저 검색했다. 이런저런 소설들이 나왔지만 잘 아는 게 없었다. 그때 눈에 확 들어오는 이름이 있었다. '돈 키호테.' 어찌 이걸 고르지 않고 넘어갈 수 있으랴? 그렇게 나는 <라만차의 비범한 이달고 돈키호테(이하 <돈 키호테>)'를 사서 스페인으로 가게 되었다.


톨레도 거리에 있는 산초와 돈 키호테 인형

혹시 나이가 들어서 <돈 키호테>를 다시 읽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돈 키호테>를 어릴 때 동화책으로만 읽었는가?

나는 사실 <돈 키호테>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정확한 기억도 없었다. 그저 돈 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창을 들고 돌진한 바보이며, 산초가 그의 시종이라는 정도만 기억에 있는데 그게 책을 읽고 남은 기억인지 하도 주변에서 떠들어대서 남은 기억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돈 키호테>를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고 오직 새롭고 흥미롭다는 감정만 있었다. 특히나 이런 구절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창을 번쩍 들어 마부의 머리를 있는 힘껏 내려쳤다. … 두 번째 마부의 머리는 아주 산산조각이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네 동강이가 난 것을 보니 세 번 이상을 내리쳤던 모양이다.

이 부분은 돈 키호테가 자신을 업수이 여긴 마부들을 응징하는 대목인데, 총 52장의 <돈 키호테> 중 고작 3장에 해당하는 도입부다. 돈 키호테가 그저 과대망상증에 걸린 허풍쟁이 정도라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그의 흉포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 죄 없는 마부의 머리를 쪼개 버리다니!


하지만 소설을 점차 읽다 보면 이 정도 행위는 별로 기이한 축에도 들지 않는다는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주막을 성으로 생각하고, 주막 주인을 성주로 생각해 기사 임명을 받으며, 지나가는 이발사를 공격해 그의 대야를 뺏어 투구로 사용하는 등 그의 기행은 정말이지 끝이 없다.


그런데 미겔 세르반테스는 이런 소설을 왜 쓴 걸까? 비록 돈 키호테라는 완벽하게 이상한 인물과 그를 따르는 역시나 이상한 인물 산초를 만들어 내기는 했지만 이 소설이 왜 스페인 최고의 역작이 되고 사람들은 즐겨 읽게 되었을까?

아마 그것은 실제로 편력기사(돈 키호테처럼 세상을 유랑하며 모험하는 기사들을 일컫는 것으로 보임)의 이야기가 유행하고, 이야기를 진짜라고 믿은 얼치기들이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폐단을 지적(실제 당시 출판된 이야기들을 이름 그대로 언급하며 비판하는 대목이 있다)하고 돈 키호테처럼 헛된 망상에 빠지지 말 것을 경고한 세르반테스, 그런 의미에서 <돈 키호테>는 사회 풍자 소설이자 계몽 소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마냥 권해질 만한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편력기사의 시대도 아니거니와, 우리가 사는 곳이 돈 키호테가 그랬듯 말 타고 돌아다닐 만한 라 만차 지방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헛된 망상에 빠지지 말 것을 권하는 세르반테스의 진실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읽어보아도 좋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돈 키호테가 걸었던 라 만차 지방을 여행하는 중이라면 훨씬 특별한 감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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