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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Mar 07. 2017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 작가의 소설

나카지마 아쓰시, <산월기> 독후감

산월기는 나카지마 아쓰시가 쓴 12편의 단편 소설을 모아 놓은 책이다. 나카지마 아쓰시는 1909년에 태어나 유년 시절을 식민지 조선(경성)에서 보낸 일본 작가이며, 일본에서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이 유사하다고 하여 제2의 아쿠타가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책에 실린 소설 중 아홉 편은 중국의 고담이고(1장), 세 편은 식민지 조선의 풍경에 관한 것으로(2장) 2장을 통해서는 일본인의 눈으로 바라본 당시 조선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12편의 이야기 중 어느 편이 가장 재미있느냐 하는 것은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12편 모두가 정답이 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흉노에 잡혀간 한나라 장수의 이야기를 다룬 <이릉>이 가장 재미있었다. 적군에 잡혀가기 전 싸우는 과정도 꽤나 흥미진진하지만 잡혀간 후 조국에 대한 충성과 현재의 안락한 생활 사이에서 갈등하며 조금씩 변해가는 이릉의 심리를 상상해 보는 것이 특히 재미있었다.


하지만 12편을 보는 내내 계속해서 '이 문장만큼은 잊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한 문장은 단편 <산월기>에 있는 것이었다.

내가 옥구슬이 아닐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애써 각고하여 닦으려 하지 않았고, 또 내가 옥구슬임을 반쯤 믿는 까닭에 그저 줄줄이 늘어선 기왓장들 같은 평범한 속인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이는 <산월기>의 주인공인 이징이 하는 말인데, 뛰어난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자신의 소심한 자존심거만한 수치심을 다스리지 못하여 결국 호랑이가 되고만 것을 후회할 때의 이야기다. 이것이 마치 뛰어난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혹시 내가 소설가로서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매일 문장을 갈고닦지도 않고 주변에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당당히 드러내지도 못하면서, 그런 한편으로는 내가 또 마냥 재능이 없지만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나의 부끄러운 마음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말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태도는 별로 변한 것이 없어서 책을 읽기 전이나 읽은 후나 비슷하지만, 그래도 저 문장을 항상 교훈 삼아 마음에 새기고 있는다면 이징처럼 호랑이가 되어 사람을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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