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송 Jun 15. 2021

복잡하지만 재미있는 유전자 이야기

이타이야나이,<유전자 사회> 독후감

 요즘 한의학을 대중적으로, 그리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기 위한 책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한약의 치료기전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생각을 해 보았는데 장기, 결합조직, 호르몬 등에 대해 생각하다 문득 유전자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우리는 뼈나 장기, 호르몬 등을 조절해 병을 치료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포 수준에서의 회복(재생)을 생각해보면 유전자가 오히려 치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한의학과 유전자에 대한 연구자료가 있는지 찾아보았는데 놀랍게도 있었습니다.


<健肺湯이 호흡기 뮤신의 생성 및 유전자 발현에 미치는 영향>

 이게 무슨 약이고 무슨 효과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한약이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감소시키는 경향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유전자의 on-off는 몸에서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논문에서 제시된 MUC5AC 유전자의 경우, off일 때 호흡기 증상이 좋아집니다. on일 경우에는 나빠지겠죠. 이런 유전자의 on-off를 한약치료 등을 통해 조절할 수 있다면 많은 질환이 해결되지 않을까요?


 <유전자 사회>는 전체적인 유전자와 그 집합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제가 알고 싶은 유전자 발현과 치료 효과에 대한 내용만 나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유전자의 생태를 알아서 나쁠 것은 없기 때문에 열심히 읽었고 좋은 내용을 많이 건졌습니다.


 <유전자 사회>에서 병의 치료와 관련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H-Ras라는 유전자의 특정 위치에서 T(티아민)가 G(구아닌)으로 바뀌기만 해도 세포들이 성장인자 없이 성장하는 일이 일어난다. = 이는 아기가 밥을 굶고도 성장할 수 있는 기형적인 상태가 됨을 의미합니다.
전유전체 연관연구(genome-wide association study, GWAS)를 해 보면 대부분 질병이 많은 수의 유전자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 수 있다. = 특정 질병이 단 하나나 두 개의 유전자 때문에 생겨나진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로는 질병에 강한 아버지의 유전자와 역시 질병에 강한 어머니의 유전자가 섞였는데 질병에 약한 유전자 조합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다형질 발현에 의해 한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관련이 없는 여러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모세혈관 확장성 운동실조증은 ATM유전자의 돌연변이로 발생하는데, 이 돌연변이가 있으면 신경계와 면역계에 영향을 끼치고 불임을 유발하며 암에 더 잘 걸리게 하고 혈관이 팽창되고 빛에 과민하게 된다. = 단 하나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단일 증상이 아니라 여러 부위에서 다양한 병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여기서 GWAS(한글로는 지와스라고 읽습니다)를 통해 인간 유전자 지도를 모두 해석하고 그에 따라 유전자의 on-off를 변화시키면 모든 질병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유전자 사회>에서도 우리는 아직 대장균 유전자의 1/3의 기능도 모르는 수준이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더 크고 복잡한 인간에게서는 당연히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 수준의 연구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호흡기의 뮤신에 문제가 생긴 환자에게 모두 MUC5AC 유전자를 off시키는 치료를 하면 되겠죠. 하지만 MUC5AC 유전자에는 뮤신과 관련된 것 말고도 우리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전립선이나 손톱, 심지어는 발뒤꿈치 각질과 관련된 기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의사는 호흡기를 치료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손톱이 빠져버린다든가 하는 불상사가 생길 가능성이 분명히 있겠죠. 그래서 아직 유전자를 통한 치료는 연구가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기적 유전자>를 감명 깊게 읽었고 리처드 도킨스의 이야기에 동의하는 한편, 우리가 단지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는 기계의 역할만은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물론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인간은 99.5%가 동일하고 겨우 0.5%만 다른 유전자 전달 기계지만 우리는 인간으로서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느껴야겠죠. 무척 복잡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 책이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심리학자가 39살에 기타를 배우며 느낀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