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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Dec 23. 2021

죽음과 밀림을 섞으면 오라시오 키로가의 소설이 된다

오라시오 키로가, <오렌지주를 증류하는 사람들> 독후감

 오라시오 키로가는 나와 인생관이 매우 비슷한 것 같다. 내 단편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죽는 일이 많은데, 그의 단편도 죽음 투성이다. 주인공이 더워서, 뱀에 물려서, 병에 걸려서, 총에 맞아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픽픽 쓰러진다. 사실 모든 생의 귀결은 곧 죽음이 아니겠는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불현듯 찾아온 죽음 앞에서 쓰러져 가는 인간의 모습은 불쌍하거나 슬픈 것이 아니라 당연하고 보편적인 것이다. 

 다만 오라시오 키로가는 미시오네스 지방의 밀림에 살았기 때문에 소설에도 그런 내용이 많이 반영되는데(온갖 종류의 독사와 새가 많이 등장하며 늘 밀림 아니면 사막이 나온다) 이 지역의 자연환경은 한국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낯섦과 신기함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열네 시간 동안이나 이글거리는 태양은 하늘을 푸른 용광로로 만들었고

찌는 듯한 한낮의 백색 하늘 아래 끈질기게 불어오는 북풍은

현무암과 붉은 사암, 그 모두가 빛을 반사하고 있었고

습한 대기와 처절한 고통으로 가득한 숲 속을 전진하는 것은

아이들의 작은 손톱으로는 모래벼룩을 더듬어 잡을 방법이 없었으므로 

밀짚의 수염 같은 이파리들이 강 연안에 닿아 수북 해지는 걸 보던

 달품팔이나 외팔이 등 힘겨운 삶의 쳇바퀴를 굴리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기 때문에 당시 미시오네스를 포함한 남미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이렇게 말하면 완전히 리얼리즘 문학이 아닌가 싶겠지만, 주인공으로 의인화한 동물을 등장시키는 경우도 허다해 리얼리즘으로 분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남미 문학하면 사실 <백 년 동안의 고독>이 가장 유명하고 나 또한 좋아하지만, 이 작가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에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책의 맨 뒤에 보면 작가의 삶이 어땠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부분을 읽고 나면 왜 이렇게 모든 이야기가 죽음과 밀림으로 이루어졌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수많은 죽음을 겪었고 밀림에 반해 그 안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을 그대로 소설 속에 투영한 작가, 그것이 오라시오 키로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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