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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며 배우는 순간

by 유송

불안장애로 한참 힘들어하던 환자분이 있었습니다. 호흡이 자꾸 가빠지고, 가슴이 조여 오는 느낌 때문에 일상에서 작은 일에도 쉽게 긴장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진료실에서 차분히 말씀드렸습니다.
“불안할 때 흔히 가슴으로 숨을 몰아쉬게 되지요. 그런데 흉식 호흡은 폐의 윗부분만을 쓰기 때문에 호흡이 얕고 빠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균형이 더 깨져서 오히려 불안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불안이 올라오는 순간, 배를 부풀리며 천천히 들이마시는 복식 호흡을 연습해 보세요. 몸의 호흡이 깊어지면 마음도 차분해집니다.”


환자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 말을 따라 했습니다. 배가 오르내리는 것을 스스로 느끼며 숨을 쉬자, 얼굴이 조금씩 밝아졌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며 ‘이 방법이 분명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또 한 가지 덧붙였습니다.
“불안은 대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앞당겨 걱정할 때 생깁니다. 그래서 호흡을 고르게 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손끝의 감촉, 창밖의 하늘, 앉아 있는 의자의 느낌에 마음을 두어 보세요. 그 순간 불안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제게도 예기치 못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집안 문제로 마음이 갑자기 요동치고,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온몸을 덮쳐 왔습니다. 머릿속은 어지럽게 돌아가고, 가슴은 답답하게 조여 왔습니다. 그때 문득 진료실에서 환자분께 말씀드렸던 제 말이 떠올랐습니다.
“불안할 때는 복식 호흡을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곧바로 눈을 감고 배를 천천히 부풀리며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드럽게 내쉬며, 손바닥에 닿는 의자의 감촉과 창밖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에 마음을 두었습니다. 몇 번 호흡을 반복하자 가슴의 압박이 풀리듯 가벼워지고, 불안에 휘둘리던 마음도 한결 차분해졌습니다.


그제야 저는 알았습니다. 환자를 가르친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이 사실은 제게도 필요한 배움이었다는 것을요. 내가 건넨 말이, 결국 나 자신을 붙잡아 준 것입니다.


의사는 종종 가르치고 지도하는 사람으로만 여겨집니다. 그러나 저는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전했던 말이 어느새 제 마음을 지켜 주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가르치면서 배우고, 지도하면서도 다시 깨닫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료라는 길 위에서 얻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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