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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로 Aug 28. 2019

안녕하세요, 헬린이입니다

서른 살의 첫 웨이트 트레이닝

수영은 몹시도 흥미로운 운동이었다. 비교 대상이라고 해 봐야 필라테스와 홈트레이닝이 고작이지만.


처음에는 귀에 물이 들어가 먹먹해지는 것도, 샤워장에 빈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한 달이 지난 뒤에는 수영복으로 막 갈아입고 수면에 발끝을 담글 때면 물과 좀 더 친해질 거라는 기대감에 가슴이 뛰었다.


수업 요일을 바꾸면서 다른 강사님에게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 새로운 강사님은 내가 발을 차는 걸 보고 혀를 쯧 찼다. ‘배운 거 맞냐’는 말에 낙담한 것도 사실이지만, 하루 아침에 ‘수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기초를 탄탄히 다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강사님의 수업 방식에 적응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문자가 날아 들었다.



주변에서는 ‘안전사고’의 자세한 내용을 궁금해 했지만, 돌아올 대답이 무서워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론 환불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추가. 다행히 따로 연락이 와서 환불 처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운동이 지워졌다. 빈약한 리스트. 눈길은 자꾸 ‘피트니스’라는 단어로 향했다. ‘피트니스’라는 선택지를 들이밀 때마다 주변에서는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날 말렸다. ‘지루하기 짝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납득은 갔다. 피트니스, 즉 웨이트 트레이닝은 취미로 성립 가능하며 SNS에 사진을 올렸을 때 좋아요를 많이 받을 만한 운동을 위한 ‘밑거름’ 정도라 생각했으니까. 웨이트 트레이닝을 순수하게 즐긴다는 것이 잘 상상이 가지 않기도 했고.


그런데 피트니스를 등록하기 전 관련 유튜브 채널을 둘러보니, 그곳에는 상상 이상으로 심오한 세계가 도사리고 있었다. 중량과 횟수, 세트 등 성과가 숫자로 표현되는 세계라니. 이 얼마나 직관적인가.




여기에 올리브 색스의 <온 더 무브>와 류은숙의 <아무튼, 피트니스>가 내 등을 떠밀었다.


올리브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편두통>, <뮤지코필리아>를 재미있게 읽은 만큼 자서전인 <온 더 무브>를 집어 든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온 더 무브>는 신경학의 거장인 올리버 색스에 대한 거리감을 단번에 좁혀줬다. 그는 모터사이클을 타며 스피드를 즐길 줄 알았고, 벤치 프레스의 중량을 늘리는 것에서 희열을 느꼈다. 다른 저서에서는 조금도 드러나지 않아 색다른 면모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웨이트 트레이닝은 ‘이런 게 있었군, 하지만 나와는 다른 세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아무튼, 피트니스>를 읽고 ‘건강 관리를 위해 고려해 볼 만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되었다.


<아무튼, 피트니스>의 저자인 류은숙 작가는 ‘운동이라고는 인권운동밖에 몰랐’지만 건강 검진에서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 들고 피트니스 센터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책 초반에서 저자는 피트니스 센터에 대해 불신과 두려움을 보이는데, 특히 아래 구절이 너무도 공감되었다.


친구들 덕에 나는 주 3회 체육관에 가긴 갔다. 그러나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가면 트레드밀에서 45분 정도 걷다가 왔다. 시속 3.5킬로미터, 나는 트레드밀에 올라탄 거대한 달팽이 한 마리였다. (‘나는 살기로 했다’ 中)


집 근처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1년 이용권을 끊고, 실내용 운동화를 사는 내내 ‘이 거금이 수포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맴돌았다. 웨이트 트레이닝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트레드밀이라도 타다 오지 뭐,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개인 운동복은 사지 않았다. 말하자면 마지막 퇴로였다.




첫 번째 날. 헬린이, 아니 ‘헬난아기’의 눈에 펼쳐진 것은 내 허벅지 만한 아령을 번쩍번쩍 드는 사람들과 공작기계 공장을 방불케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 존이었다. 창가에 나란히 늘어선 트레드밀이 그나마 내 심신을 안정시켰다.


트레이너와 일정이 맞지 않아 오리엔테이션(인바디 측정,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 사용법 설명)은 받지 못했다. 탈의실 이용 방법과 트레드밀, 스텝퍼 사용법만 전달 받아 그날은 트레드밀만 30분을 탔다. 트레드밀도 난생 처음 타는 거라 3km/h로 놓고 탔는데, 걸음도 빠른 애가 3km/h가 뭐냐고 K군에게 비웃음을 샀다. (그나마도 뒤로 넘어질까봐 손잡이를 잡고 탔다)


멍한 상태로 귀가한 나는 곧바로 유튜브를 뒤져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 사용법을 익혔다. 랫 풀 다운이니 체스트 프레스니 이름은 또 왜 그리 어려운지. 자극점을 유심히 살펴보던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이키 트레이닝’ 어플로 홈트레이닝을 꽤 오래 했는데, 어플 속 맨손운동 중 기구운동과 매칭되는 것이 제법 있었다.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는 사실 맨손운동의 동작을 좀 더 쉽게,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쌀알 만큼의 자신감을 더한 나는 다시 한 번 피트니스 센터의 문을 열어 젖혔다. 꼴에 두 번째랍시고 이번에는 트레드밀을 달리며 (여유로운 척) TV도 봤다. 문제는 정해둔 15분이 지난 뒤였다.


아령을 들고 레터럴 레이즈를 할 생각이었는데, 프리 웨이트 존은 이미 점령당해 있었다. (양해를 구하면 문제 없겠지만 그게 가능하면 헬난아기가 아니지)


방황하던 내 시선에 들어온 것이 체스트 프레스였다. 다행히 영상에서 본 것과 다르지 않은 기구였다. 영상에서 본 기억을 떠올리며 쇠 막대를 뽑아 맨 위에 있는 추에 꽂았다.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에 열쇠를 꽂아 넣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어설프게 체스트 프레스와 레그 레이즈를 하고 자석에 끌리듯 다시 트레드밀을 탔다.


이용권을 끊고, 세면도구와 운동화를 챙겨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심장이 터질 듯 긴장되었지만 막상 기구를 하나씩 건드려 보니 벌벌 떨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트레드밀을 타다 넘어지는 일도, 웨이트 트레이닝 머신에 깔리는 일도, 어설프게 머신을 사용하는 동안 ‘헬스장 고인물’이 흰눈을 뜨고 내 운동이 끝나길 기다리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건 내가 사람이 적은 시간대에 가기 때문일 것이다)


프리 웨이트, 고중량 등 여러 목표가 어렴풋이 떠오르지만, 아직 ‘헬린이’니까 당분간은 기구 사용법을 하나씩 알아 나가고 유산소 운동으로 기초 체력을 다지는 것에 의의를 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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