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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로 Nov 21. 2024

Show in the Mirror

#예술 #희생 #차별의_기준


현관에 들어선 안시온은 신발 벗는 것도 잊고 입을 떡 벌렸다. 정금실의 집은 클래식 음악과 인연이 없는 사람도 알 만큼 유명했지만 실제로 보는 느낌은 또 달랐다. 뒤축이 다 닳은 스니커즈를 놔두기가 황송할 정도였다.


‘아냐, 움츠러들지 말자.’


오늘 그는 정금실의 초대를 받아서 온 손님이었다.


“사크룸은 제가 맡아 드리겠습니다.”


시야 바깥에서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정금실의 매니저였다. 매니저보다는 정장 모델이 제격이었지만. 정금실 장학 재단에서 선정하는 ‘내일을 빛내는 젊은 음악가’에 시온이 뽑혔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도,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는 말에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것도 바로 그였다. 그래서일까. 첫 만남치고 서먹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시온은 자기 몸통만 한 사크룸 케이스를 조심스레 넘겼다.


사크룸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사크룸은 긴 역사가 무색할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베일에 가려진 악기니까. 유명한 합주곡에 쓰이는 것도, 누구나 취미로 도전할 만큼 연주법이 쉬운 것도 아니다.


“대표님은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괘, 괜찮습니다! 제가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오긴 했죠.”


좀 더 여유로워 보이는 대답도 있었을 텐데. 시온은 제 머리를 감싸 쥐고 싶었다. 당당하고 어른스러운 애티튜드가 몸에 배지 않은 시온에게 연주회 뒤풀이와 인터뷰는 특히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거울이, 많네요.”


시온은 응접실 벽면을 뒤덮은 거울로 화제를 돌렸다. 단순히 매무새를 체크하려고 걸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같이 명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앤티크한 분위기를 자랑했다.


“대표님의 취미십니다.”


거울에서 거울로 옮겨 가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어색했다. 좌우가 반대로 비치는 거울이었다. 사실 지금 이 모습이 남이 보는 나와 가장 가까울 테지만. 시온은 거울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갔다. 절반은 좌우 반전 거울인 것 같았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서로 다른 상(像)이 춤을 추듯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 광경을 보던 매니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무 장난스러웠나.’ 시온은 밧줄에 묶인 사람처럼 양손을 바지 옆 재봉선에 붙였다. 하지만 매니저의 시선이 향한 곳은 그의 오른손이었다.


“잠시 보여 주시겠어요.”


시온은 쭈뼛거리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아름답지만, 부끄러운 손이군요.”


차분한 말투 아래 숨은 적개심. 중지가 없는 오른손이 시온의 손바닥을 받쳐 들었다. 그제야 시온은 매니저를 처음 봤을 때 느낀 기시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는 정금실 밑에서 사크룸을 배우다가 젊은 나이에 은퇴한 알렉스 현이었다.


사크룸은 발현악기의 일종이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북(shuttle)을 움직이고 약지와 소지로 현을 짚어 음높이를 조절한다. 왼손은 엄지와 검지와 중지 세 손가락 끝에 의갑을 끼워 현을 뜯는다. 북의 움직임으로 여러 옥타브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어 신비로운 선율을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북을 움직이는 모습이 베 짜기와 비슷해 과거에는 잠사(蠶事)의 풍요를 기원하는 음악에 쓰였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발현악기인 기타와 다른 점이라고 하면 악기의 뼈대 역할을 하고 음색에 영향을 미치는 브레이스의 위치를 들 수 있다. 기타는 상판과 하판 안쪽 보이지 않는 곳을 가로지르지만 사크룸은 북과 현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자연히 연주자는 중지를 둘 곳이 없어진다.


중세 시대 광적인 연주자들은 자신의 중지를 자르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보다 못한 악기 제작자들이 나서서 개량에 개량을 거듭했지만 다섯 손가락으로 치는 사크룸은 사람들의 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중지를 자른 연주자들은 신들린 듯한 연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1950년대에는 왼손잡이용 사크룸이 나오기도 했다. 어차피 자를 거라면 왼손을 자르라는 것이다. 하지만 왼손잡이용 사크룸 역시 몇 년 지나지 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시온은 손가락을 희생하지 않고도 국제적인 콩쿠르에서 연이어 수상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연 개척자’라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중지를 자르고도 은퇴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알렉스 현의 입장에서는 시온이 가증스러울 만도 했다.


“다들 당신에게 속고 있어요. 어찌저찌 잘 버티고 있지만 곧 드러날 겁니다. 당신의 연주가 얼마나 얄팍하고 하잘것없는지.”


시온은 손바닥에서 통증을 느꼈다.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는 바람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라고 해서 모르지 않았다. 연주회 뒤풀이에 참석하면 자신의 오른손으로 쏠리는 시선들. 귓가에 닿을락 말락 하는 수군거림.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잘못 들었다고요? 질투도 그 정도면….”


뭐라고 말하려던 시온이 입을 다물었다. 알렉스 현의 속눈썹 아래에서 일렁거리는 증오의 불꽃은 더 깊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시온은 입시를 준비하면서 읽었던 정금실의 자서전이 떠올랐다. 정금실은 열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사크룸의 음색에 매료되어 집에 있던 작두로 자신의 중지를 잘랐다. 사크룸을 내려놓은 세계에서 어떤 차별과 편견을 마주할지는 상상도 못 하고.


“…들어오세요.”


집무실 문 너머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렉스 현은 조금 전까지 언쟁을 벌이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가벼운 몸놀림으로 집무실 문을 열었다.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 정장을 차려입은 정금실이 마호가니 책상 앞에 서서 두 사람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안시온이라고 합니다.”

“정금실이에요. 그건, 제 앨범인가요?”

“아, 맞습니다! 사인을 받고 싶어서….”


시온은 ‘프릭쇼’라고 적힌 앨범을 만지작거렸다. ‘프릭쇼’는 연주곡 앨범으로는 이례적으로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모두 사로잡으며 사크룸이라는 악기를 알렸다. 오랜만에 보는 실물 앨범이 반가운지 정금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하얀 레이스 장갑으로 감싼 손이 CD를 받아 들었다.


정금실은 손의 감각을 중시해 얇은 장갑을 끼고 생활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시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난 뒤로는 과장 조금 보태서 악보집보다 무거운 물건은 들지 않다시피 했다.


“응접실에서는 알렉스 군이 무례하게 굴었지요.”


한 발짝 뒤에 서 있던 알렉스 현이 벌레 씹은 얼굴을 슬그머니 돌렸다.


“저는 괜찮습….”

“괜찮을 필요 없어요. 제 생각도 다르지 않으니까.”


시온의 얼굴이 굳어졌다.


“음악에는 답이랄 게 없으니까요. 시온 군이나 나나 음악 하는 사람인 이상 매일 누군가를 속이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죠.”


정금실의 말을 곱씹던 시온이 겨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정금실은 알렉스 현이 들고 있던 사크룸 케이스를 가리켰다.


“한 번 연주해 볼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이런 일이 오리라고 예상했다. 우상이자 선배이자 후원자에게 자신의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는 기회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정금실의 평가를 듣고 싶다는 바람에 어떤 곡을 연주할지도 미리 생각해 왔다. 하지만 정금실은 손가락을 푸는 그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의중을 파악한 알렉스 현이 케이스에서 사크룸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좋네요. 조율도 잘 되어 있고.”


정금실은 장갑을 벗었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북을 쥐고 약지와 소지를 현 위에 얹었다. 중지는 브레이스를 따라 어설프게 붙어 있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상아로 만든 의갑을 두 개 꺼내 왼손 엄지와 검지에 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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