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 박사 집필 도서 '숙맥도 괜찮아 용기만 있다면'
모른다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은 질문도 잘 못 한다.
“그것도 몰라?”
혹시 이런 반응을 듣게 될까 봐, 우리는 질문을 삼킨다. 모르는 것을 감추는 일이 체면을 지키는 길이라 믿어왔기 때문이다.
예전에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가 한국에 와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강의하기가 참 쉽고 편하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학생들이 질문도 하지 않고, 토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 했던 강의를 그대로 다시 해도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고, 교수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기만 한다는 이야기였다.
질문은 단순한 말 한마디가 아니다. 질문은 아웃풋이다. 듣고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자기 생각을 밖으로 꺼내는 행위다. 그런데 우리는 인풋에는 익숙하면서도 아웃풋에는 서툴다. 듣고 정리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묻고 토론하는 과정이 뒤따르지 않으면 사고력과 창의력은 자라기 어렵다. 대학 강의든, 회사 일이든, 가정과 인간관계든 질문과 응답이 오가는 상호작용 속에서 질적인 변화가 생긴다.
문제는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면 될 일을, 괜히 아는 척하며 넘어가려는 심리다. 당장은 큰일이 안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넘어간 일은 반드시 나중에 발목을 잡는다. 꼭 알아야 할 순간에 모른 채로 선택을 하게 되면, 그 대가는 훨씬 커진다.
해외여행 중 겪은 일 하나를 떠올려보자. 가이드가 “2시 15분까지 이곳에 다시 모이십시오”라고 안내했는데, 한 부부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쇼핑백을 들고 태연하게 나타났지만, 알고 보니 말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이해가 안 됐다면 손짓 발짓으로라도 다시 물었어야 했다. 영어를 못하는 건 창피가 아니다. 모른 채 아는 척하는 것이 문제다.
사실 질문은 뛰어난 사교술이기도 하다. 사람은 남을 도와주고, 무언가를 설명해줄 때 은근한 기쁨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이건 어떻게 되는 건가요?” 하고 묻는 순간, 상대는 자기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느낌을 받는다. 질문은 상대에게 자기과시의 기회를 주는 배려이기도 하다. 그러니 모른다고 묻는 일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시원찮을수록 자존심이 세다는 말이 있다. 하찮은 일에도 ‘위신’과 ‘자존심’을 들먹이는 사람일수록 정작 행동에는 소극적이다. 실패할까 봐, 체면이 손상될까 봐 아예 나서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지나친 체면의식이 만들어낸 소극성이다. 모르면 묻지 못하고, 확신이 없으면 발을 빼는 태도. 결국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한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묻는 사람은 약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한계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다. 진짜 체면은 아는 척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려는 태도에서 만들어진다. 질문할 줄 아는 사회는 성장하고, 질문이 사라진 사회는 정체된다.
이제는 조금 달라져야 한다.
모르면 물어라.
그 한마디가 개인을 살리고, 조직을 살리고, 사회를 살린다.
살아보니, 묻는 사람은 결국 앞으로 나아가고, 묻지 않는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